이게 뭔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아가야 정말 다행이다. 네 목숨은 이제 너만의 것이 아니니 평생 봉사하는 마음으로 살길 바란다. 먼 곳에서 너의 삶을 응원하는 할아버지가."
응원은 개뿔.
한 치의 다름없이 노트에 이렇게 적었다. 그러니까 이 장면이 나올 즈음 나는 『유원』을 읽으며 꽤나 씩씩거리고 있었다. 부연 설명을 하자면, 실종되었다가 가족 품으로 돌아온 아이의 기사에 달린 댓글이다. 기적적으로 살아난 아이에게 네 목숨이 누구 것이며, 평생 봉사 운운이라니. 아...... 우리는 이런 걸 꼰대라고 부르기로 했어요(훈계질이라고 썼다가 너무 날것의 마음이라 지웠는데 꼰대로는 화가 풀리지 않아 기어코 다시 쓰고야 마는 똥고집).
지인이 꽤나 극찬했던 백온유 작가의 신작 소설집이 나왔다. 보통 같으면 그렇구나 했을 텐데 대대적인 홍보의 전면에 떡하니 실린 김연수 작가의 추천사에 흥미가 동했다. (그나저나 요즘 김연수 작가의 추천이 너무 여기저기 보여서 신뢰감이 살짝 흔들리고 있다.) 엄청 끌리진 않지만 궁금은 해서 장바구니에 넣었다 뺐다 하는 중, 도서관에 들른 날이었다. 서가 안쪽 자리에서 잠시 짐을 정리하다가 고개를 옆으로 돌렸는데 눈에 들어온 두 글자, 유원. 전에 한 번 빌렸다가 초반부만 좀 읽다 그냥 반납해 버린, 백온유 작가의 대표작이었다. 이것도 인연인가 보다 하고는 신청한 상호대차 책과 함께 빌려 왔다.
후우...... 나도 모르게 자꾸만 한숨이 새어 나온다. 초반부터 분노에 슬슬 불을 댕기더니 고구마 열댓 개 먹은 듯 답답함이 이어졌다. 한 번씩 명치끝이 아렸다. 삼분의 일쯤 남자 슬슬 걱정이 밀려왔다. 어떻게 끝나려나.
『유원』은 제13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이다. 어느 정도는 깔끔한 결말, 적당한 교훈을 기대하게 된다. 예상한 대로 주인공 원이는 알을 깨고 나오면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원 없이 미워하고 깔끔하게 인정한다. 선량한 주변인들의 도움으로 속박 없이 날아오르고 무사히 안착한다. 더도 덜도 없는 담백한 이야기.
왜인지 책을 덮자마자 김애란 작가의 『이중 하나는 거짓말』이 떠올랐다. 복잡한 현실을 촘촘하게 그려내 의미를 곱씹게 하는 책.『유원』은 다르다. 서사는 다소 느슨하지만 정서의 결은 오히려 또렷하다. 비슷한 대상의 성장 이야기를 담았지만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은 전혀 다른 두 책을 비교하다 보니 내 읽기 취향이 그려진다.
백온유 작가의 글은 좋았다. 특히 자신의 최선이 고작 이런 것뿐임에 좌절하는 주인공의 모습, '돌멩이를 이해하려는 노력도 무의미한 거고, 돌멩이가 내 감정을 이해해 주지 않을까 기대하는 것도 무의미한 일인 거야.'라는 문장, '행동의 의미가 도무지 이해가 안 되어서 오히려 백 가지로도 천 가지로도 해석될 수 있는 그런 인물'을 연기하고 싶다는 정현은 책을 덮고도 오래 마음을 떠다녔다.
결국 책 속 아이들은 어른들을 이해하지 않는다. 단지 받아들이고 나아간다. 모르면 모르는 대로, 부딪치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고. 그런 아이들을 보다 보니 나 또한 그러고 싶어진다. 이해가 아니라 그저 응원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굳이 고르자면 나는 백온유 작가보다는 김애란 작가의 글이 좋다. 복잡한 현실을 보여주지만 모범답안을 제시하지 않는 글에 더 끌린다. 생각이 한 발 더 나아간다. 그래서 에르노나 뒤라스의 글을 좋아하는구나. 날것의 언어로, 현실을 드러내기보다 독자마다 다른 세계를 경험케 하니까. 나는 작품을 통해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는 읽기를 하는 사람이구나. 결국 평가하고 논리를 다투는 글이 아닌, 나를 드러내는 글을 쓰게 되겠구나.
여전히 나는 내가 못하는-논리적으로 구조를 쌓고, 정리하고, 설득하는-것을 보며 스스로에게 화가 난다. 그러나 아스라이 빛이 보이는 듯도 싶다. 조금쯤은 내가 못하는 걸 받아들이고, 내가 할 수 있는 걸 찾아 나서는 느낌이랄까. 여전히 불안하지만 조심스레 또 한 발을 내딛는다. 못난 나를 견디면서. 더디겠지만 방향은 여기가 맞다는 확신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