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단어] 죽음

발을 담가봐야 그 깊이를 알 수 있다

by 류하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게 참 신기해요."

얼마 전의 상담 때 상담선생님에게 건넨 말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죽음을 떠올리지 않은 날이 없었으니까.


대략 이 년쯤 전,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찾아간 정신과에서 당장 조치가 필요하다는 말을 들었다. 수군거림, 부끄러움, 죄책감을 다 뒤로한 채 도망치듯 휴직을 했다. 회사에 나가지 않음에도 상황은 쉬이 호전되지 않았다. 밤에는 여전히 잠을 이루지 못했고, 잠들면 회사와 회사 사람들이 등장하는 꿈을 꿨다. 악몽이었다. 남편과 아이가 나간 뒤, 불도 켜지 않은 채 침대에서만 머무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나마 두 사람이 있는 시간에는 사람 꼴을 하고 살았다. 몸을 일으켜 거실로 나오는 일조차 버겁게 느껴질 정도로 무기력한 날들이었다.


회사에서 벗어난다고 나아질 일이 아니었다. 무책임하게 도망쳤다고 비난할 거란 상상이 나를 갉아먹었다. 하루 종일 집에 있는데도 엉망인 집 상태와 저녁 식사 한 끼 제대로 못 챙기는 내 모습이 비참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지나가는 하루는 점점 더 나를 벼랑 끝으로 몰았다. 왜 살아야 하지? 내 존재가 오히려 주변 사람들을 더 힘들게 하고, 상황을 악화시키는 것 같았다.


길을 걸으면 교통사고가 나길 내심 바랐고, 인적 드문 골목을 지날 때는 이대로 범죄의 희생양이 돼도 괜찮겠다 싶었다.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조용히 거실에 나와 가위, 칼 따위에 한참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죽음이 참 쉽게 느껴졌던 시절이었다. 한 발 내딛으면 까마득하게 떨어질, 낭떠러지에 서 있는 매일이었다. 떨어지는 일 말고는 무엇도 불가능해 보였다.


그러나 삶은 얼마나 느리고 무심하며 친절한지. 꾸역꾸역 책을 읽고, 호응 없는 글을 쓰고, 도전하고 실패하고, 만나고 헤어지고... 그러는 사이 상처는 아물고 굳은살이 생겼다. 조금 의연해지고 유연해졌으며 뻔뻔해졌다.


그날로부터 2개월쯤 모자란 이 년이 지났다. 나는 여전히 소량의 약을 먹고 상담을 다니지만, 대화의 내용은 퍽 달라졌다. 가장 큰 변화는 스스로 전과 다름을 깨닫는 일이다. 여전히 내 삶은 문제로 가득하다. 잘못된 선택도 부지기수고. 그러나 더 이상 죽음으로 도망칠 생각은 하지 않는다. 해결할 수 있다는 걸 아니까. 어려운 순간을 이겨내 봤고, 엄청 큰 일이라 생각한 일이 사실은 별 거 아니라는 걸 겪었다. 세상은 생각보다 유연하고 허술하기까지 하다.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답은 여전히 모르겠다. 다만, 죽음을 또렷하게 직면하고 나니 삶에 꼭 거창한 의미가 필요한 건 아님을 느낀다. 죽음의 날이 올 때까지 나름의 행복으로 매일을 채워나갈 뿐이다. 어쩌면 그것이, 죽음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큰 선물인지도 모르겠다.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