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 신호를 파악하라
사람은 언제 무너질까?
누가 들어도 깜짝 놀랄 만한 사건이 벌어졌을 때? 물론 그럴 수 있다.
그러나 많은 경우, 무너짐은 조용히 서서히 진행된다. 발밑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는 걸 깨달을 때는 이미 추락 중일 확률 이백 퍼센트. 몸이 박살 나기 전에 알아차리면 다행이다. 떨어지는 중에 뭐라도 붙잡을 수 있고, 하다못해 손상을 최소화할 자세라도 만들 수 있을 테니까.
피로를 네이버 사전에서 검색하면 두 가지 뜻이 나온다.
1. 과로로 정신이나 몸이 지쳐 힘듦. 또는 그런 상태.
2. 고체 재료가 작은 힘을 반복하여 받아 틈, 균열이 생기고 마침내 파괴되는 현상.
1번이야 우리가 흔히 아는 의미이지만, 2번이 새로웠다. 사람을 대상으로 한 정의는 아니지만, 사람도 다르지 않겠다 싶었다. 낙숫물이 댓돌을 뚫듯(물론 이 말은 작지만 꾸준한 노력을 강조하는 긍정적인 의미지만), 개별적이고 사소한 스트레스가 안온한 일상을 침범하고 마침내 파괴한다.
일주일 가까이 피로가 풀리지 않은 채 조용히 쌓이고만 있다. 다행은, 지금의 내가 이성적이기 어려운 상태임을 인지하고, 판단을 유보하고 있다는 점이다. 불행은, 피로가 기하급수적으로 누적되고 있다는 것. 착실히 피로를 해소하려고 노력한들 격차는 하루가 다르게 커질 뿐이다. 차곡차곡 쌓인 피로는 기어코 자기혐오를 불러왔다. 오랜만의 만남이다.
소리에 예민해진다.
사람들과 말 섞는 게 귀찮다.
생각이 정리되지 않는다.
일의 우선순위를 고려하지 못한다.
별거 아닌 일에도 화가 난다. 요즘말로 하자면, 시도 때도 없이 긁힌다.
배부르고 속이 불편해도, 자꾸 먹을 걸 찾는다.
드러눕고 싶은데 막상 쉴 수 있는 상황에서는 딴짓(주로 스마트폰으로 의미 없는 검색)을 한다.
일상 속 모습이 이렇다면 '지금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세요' 따위 '개나 줘 버려'가 된다. 테이크아웃 컵에 빨대조차 한 번에 꽂히지 않고 애를 먹이는 순간, 온 세상이 적으로 돌변한다. 지금의 나에게 다정하기란, 고문이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울증을 겪으며 늘 품에 담고 사는 단어다. 외부의 상황이 어떠하건, 적어도 내 마음은 내가 지켜낼 수 있다는, 지켜내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인생은 고통의 연속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살아가기 위해서는 알아차림 이후가 중요하다. 힘듦에도 꾸역꾸역 한다? No No. 힘들면 힘들다고 말하고, 버티느라 애써온 나를 휙 풀어놓는다.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마음껏 게을러지라고 한다. 어차피 그렇게 풀어져봤자 며칠임을, 그 이후엔 다시 기운낼 수 있음을 알기에.
사실 불안하다. 이대로 다시 진창에 처박힐까 봐. 부적응자로 낙인찍힐까 봐. 외톨이가 될까 봐.
그러나 오래가려면 멈춤은 필수다. 눈앞의 조급함에 지지 말자.
애써 버틴 우리, 조금쯤 시간을 낭비해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