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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랍 7. 희민의 서랍

by EON

저자 박희민


33세의 남자. 애니메이션 작가를 꿈꾸고 있다.

댄디하고 젠틀한 이미지의 그는 비록 직장을 구하지 못해 알바로 삶을 근근히 꾸려나가지만,

사람들에게 애니메이션으로 빛나는 메세지를 전하고 싶다는 소중한 꿈이 있어

얼굴은 늘 생기가 돌며 빛이나고 있다.

그가 애니메이션 완성을 위해 초고로 작성한 짧은 글들이 이 프로젝트 7번째 서랍에 실리게 되었다.



(1). 트럭


세명의 여학생이 중형 트럭의 겉모습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트럭은 화물칸 전체가 화려한 모양의 그림과 스티커들로 도배되어 있는, 누가 봐도 순간적으로 한눈에 들어오는 현란하고 독특한 느낌의 트럭이었다.

트럭을 한참 동안 뚫어지게 쳐다보던 첫 번째 여학생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음... 분명 저 트럭은 사람의 이목을 끌기 위해 일부러 저렇게 해놓은 걸 거야.

그래서 행사장 전용 트럭 아니면 , 코미디 연극이나 마술공연 홍보용 트럭인 거 같아.

분명 저 화물칸 안에는 그런 직종의 사람들이 타고 있을 거야."


그러자 두 번째 여학생이 고개를 살짝 저으며 말했다.


“내 생각은 달라. 어쩌면 저 무늬 모양과 스티커가 핵심일지도... 광고 문구나 이미지를 전문으로 제작해 주는 업체?

아마 저 화물칸 안에는 저런 화려한 모양 그림과 스티커들로 잔뜩 쌓여 있을 거야.”


이번엔 세 번째 여학생이 조용한 어투로 말했다.


“아니... 아마 저 트럭 화물칸 안에는 아무것도 없을 거야.”


“응? 왜???”


“그러게? 왜 그렇게 생각한 거야?”


세 번째 여학생은 두 친구의 질문에 트럭의 뒷문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저기 뒷문을 보고 알았어.”


“뒷문? 뒷문에 뭐가 있었는데?"


“문이 쇠 자물쇠로 꼭 잠겨 있었거든...

안이 비어있고 약할수록...

바깥문을 꼭 잠그기 마련이거든.”





(2). 어머니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는 소년이 있었다.

소년은 꿈속에서 무서운 괴물에게 늘 괴롭힘을 당하곤 하였다.

그는 자신의 마음이 연약해 그 괴물에게 시달린다 생각하고, 마음을 굳세게 먹었다.

그렇게 평상시와 다르게 잠을 청한 소년은 어김없이 그 괴물과 대면하게 되었다.

소년은 두렴 없이 그 괴물에게 달려들었고,

거센 용기에 놀라 도망치던 괴물은 갑자기 모습을 바꾸기 시작하였다.


그 모습은 바로 ‘로봇’이었다.

로봇은 의기양양하게 소년은 발로 밟으려 했으나 용감해진 소년은 그 발을 힘껏 쳐냈다.

소년의 기백에 눌린 로봇은 또다시 모습을 바꾸기 시작하였다.


이번에는 ‘마법사’였다.

마법사는 소년에게 최면을 걸어 굴복시키려 하였다.

하지만 소년은 최면에 걸리지 않으며 마법사에게 당당하게 소리쳤다.


"네가 어떤 모습을 보여도 난 도망치지 않겠다."


그러자 마법사는 이번엔 그의 ‘어머니’로 변신하였다.

소년은 크게 당황해하다가... 결국 무릎을 꿇고 말았다.

“어쩔 수 없어... 그 모습은... 도저히 공격하지 못하겠어... 내가 졌어...”


소년은 한없이 무기력해져 갔다.

하지만 마법사는... 점점 모습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입을 열었다.


“이 모습으로는 도저히 널 괴롭히지 못하겠군...

내가 넘볼 수 없는 존재인 거 같아서.






(3). 유전


제이크의 아버지는, 국가에 훈장을 많이 받은 명예로운 군인이었다.

하지만 제이크는 그런 아버지를 존경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집에서 지나치게 엄격하고 강압적인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그에게 아버지는 그저 압박이 느껴지는 두려운 존재였을 뿐이었다.


몇 달 만에 집에 돌아오던 아버지는 제이크에게 늘 같은 말을 반복하였다.


"제이크. 넌 이 아버지처럼 국가에 충성하고 몸 바쳐 나라에 한 축을 담당하는 명예로운 존재가 되어야 한다. 그러니 잊지 말아라.

네가 우리 가문을 대대로 빛내는 훌륭한 군인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제이크는 그런 아버지가 버겁고 두려웠다.

그에게 아버지는 닮고 싶은 존재가 아닌, 그저 불편하고 어려운 존재였을 뿐이었다.

제이크는 그렇게 마음으로 아버지를 외면하며 살아갔다.


시간이 지나 제이크는 성인이 되었다. 그는 유능한 사업가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제이크가 자신의 뒤를 따라 군인이 되기 원했지만, 제이크는 아버지에 대반발심으로 다른 길을 택한 것이었다.


하지만...

제이크는 뛰어난 실적과 공로로 개인적 능력은 인정받았지만 그의 부하 직원들을 그를 ‘지독한 악마'라고 수근거리고 있었다.

그가 부하직원들에게 지나치게 엄격하고 강압적으로 대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아버지는 명예퇴직을 하고 제이크를 직접 찾아오게 되었다.

제이크의 어린 시절 한 번이라도 제대로 사랑으로 대해주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늦게나마 용서를 구하고 사랑한다는 말을 전해 주싶어서였다.


아버지는 제이크에게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제이크... 내가 젊은 날에 네게 너무 큰 어려움과 상처를 안겨 준거 같구나...

이 아버지가 진심으로 사과한단다... 날 용서해 다오... 그리고... 아버지는... 사실 널 사랑한단다..."


제이크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버지, 왜 그런 말씀 하세요? 그런 약한 모습 보이지 마세요.

전 아버지가 저처럼 사회에 이바지하고, 나라에 한 축을 담당하는 명예로운 존재가 되기 원합니다."






(4). 불의 검


중세 최고의 기사단으로 칭송을 받던 ‘ 마크엘 기사단’은 왕국 최고의 훈장을 왕으로부터 부여받은 전통 있는 기사단이었다.

그들은 동부의 여러 세력을 점령하고, 왕국의 깃발을 세운 공로를 인정받아 왕가 최고의 명예훈장을 수여받게 되었다.

특히 그중 마크엘 기사단의 사단장인 바칸은 이미 유럽의 ‘붉은 이리’로 불리며, 시대의 전설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왕은 용맹한 바칸에게 ‘왕가의 검’을 수여하였 바칸은 그 검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며 왕에게 충성을 맹세하였다.

그 후로 바칸은 자신이 예전부터 사용해오던, 칼 손잡이에 뜨겁게 불타오르는 불의 형상이 그려진 ‘불의 검’ 대신 영광스러운 왕가의 검을 자신의 검으로 받아들였다.


* * *


비동맹 국가와의 대치로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긴장감이 지속되던 12월의 어느 날, 마크엘 기사단은 뜻밖에 복병으로 등장한 두 검사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었다.

한 검사의 이름은 ‘샤빌 원’ 그는 보통의 강인한 전사와 달리 슬립 한 몸매의 미형의 전사로서 검술은 춤을 추는 듯했고, 재빠른 동작은 마치 바람을 가르는 독수리를 연상시켰다.

다른 한 명의 검사의 이름은 ‘미로클’ 그는 눈의 띄는 화려한 망토를 입고 있었고,

휘파람과 노래를 뒤섞여 부르며 변칙적인 움직임과 검술을 보이고 있었다. 둘의 공격에 기사들은 어찌 할 바를 몰라 허둥지둥 대었다.

자존심이 강한 바칸 에겐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그의 분노는 극에 다다르게 되었다.


‘저런... 별 볼일 없는 애송이들에게 얼간이처럼 당하고만 있다니!’


자신의 기사단이 점점 함락해 가는 모습을 지켜보던 바칸은 격한 분노를 드러내며 말에서 뛰어내려 왕가의 검을 하늘 높이 치켜들고 부하들을 향해 소리 질렀다.


“나의 용사들이여! 나의 군주, 나의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이 검을 통해 저 애송이들의 목을 내가 반드시 꺾어 오겠다!”


승리에 굶주린 전사들은 그에게 거대한 환호성으로 응답하였다.


* * *


바칸은 계속하여 왕가의 검으로 두 명을 거칠게 몰아붙였다. ‘왕가의 검’은 강력한 공격력을 자랑하며 거세게 상대를 밀어붙였지만, 샤빌 원은 여전히 무표정한 반응으로 그의 공격에 침착히 대응하였고, 미로 클은 킥킥 거리며 날렵하게 피해 다녔다.

바칸은 약이 오를 대로 올랐다. 그들의 검술이 강인한 전사같이 집적 맞서지 않고 한 명은 줄곧 방어만, 한 명은 줄곧 피해만 다녔기 때문이었다.

바칸은 검으로 둘을 가리키며 크게 소리쳤다.


“이봐 애송이들! 너희 둘의 용기는 가상하다만 나의 이 검은 그 약해빠진 검술에 크게 싫증을 느끼고 있단 말이다.

그러니 더 이상 비리비리하게 굴지 말고 제대로 덤벼 보란 말이다!!”


하지만 샤빌 원은 아무 말 없이 검의 춤으로 그의 공격에 침착히 대응할 뿐이고, 미로클은 여전히 키득 거리며 피해 다니기만 할 뿐이었다.

한동안 그런 격전이 벌어지는 가운데, 승패는 순식간에 갈리고 말았다.

계속 후퇴식으로 방어만 하던 샤빌 원의 검이 어느덧, 바칸의 약점을 찾아내어 정확히 그의 가슴 한 곳을 찌르게 된 것이었다.


‘으!!!..’


외마디 비명조차 지를 시간도 없이 바칸은 가슴을 움켜쥐며 무릎을 꿇게 되었다.

도무지 납득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쓰러져가는 바칸에게, 미로클은 조롱하듯 노래를 읊었다.


[헤헤~ 난 당신 말투에서 갑옷 입은 꼬마를 발견했어~

헤헤~난 당신 혈기에서 불이 뜨겁게 타오른다고 '빛'이 되는 아니 란걸 발견했어~]


그리고 샤빌 원은 의아한 얼굴로 말을 던졌다.


“바칸..."


바칸은 한쪽 눈을 찡그리며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왜 그 검만을 고집하지?...”


바칸의 의식이 가물가물 해지고 있었다.

그의 시선샤빌원의 모습이 둘, 셋으로 보여졌다. 샤빌원은 바칸의 얼굴 옆에 얼굴을 대고 그의 오른쪽 귀에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난 당신이 전장에서 내 동료들을 수없이 베던

그 불의 검이 보고 싶었는데 말야.”


샤빌 원과 미로클은 맥없이 쓰러지는 바칸을 뒤로하고 남은 전사들을 진멸시키기 위해 서서히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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