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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혜 Sep 02. 2020

그해 봄에, 박준

마음만으로는 될 수 없는 일들이 봄에는 널려있었다

얼마 전 손목을 깊게 그은 당신과
마주 앉아 통닭을 먹는다

​당신이 입가를 닦을 때마다
소매 사이로 검고 붉은 테가 내비친다


당신 집에는
물 대신 술이 있고
봄 대신 밤이 있고
당신이 사랑했던 사람 대신 내가 있다


한참이나 말이 없던 내가
처음 던진 질문은
왜 봄에 죽으려 했냐는 것이었다

창밖을 바라보던 당신이
내게 고개를 돌려
그럼 겨울에 죽을 것이냐며 웃었다

마음만으로는 될 수도 없고
꼭 내마음 같지도 않은 일들이

봄에는 널려 있었다.


/

손목을 그은 당신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더이상 그 일에 대해 묻지 않고, 묵묵히 곁을 지켜주는 것 만으로도 위로가 될 때가 있다. 얼마전 죽음을 결심한 당신이지만 지금은 나와 통닭을 먹고 있다. 삶은 이렇게 흘러가는 건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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