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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탁 진 Oct 06. 2020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

호프자런의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 서평




  아쉬울 것 없이 채워진 삶을 살고있는 인간과, 이런 인간을 제외한 지구 위의 생명을 비교해보며 모두가 풍요롭게 살고 있는지를 묻는다면, 결코 그렇다 대답할 수 없을 것이다. 어디에나 득과 실은 동반된다지만 지금 인간에 의해 자행되고 있는 것은 자연을 향한 지독히도 일방적인 폭력과 같다. 우리는 지금 완벽히 기울어진 시소 위에 올라타 있다.



   약 2년 전부터, 나는 인간의 무분별한 쓰레기 배출로 동식물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기사와 충격적인 사진을 수도 없이 접했다. 이때를 기점으로 내 안에서 인간의 배려 없는 욕망을 향한 혐오가 수시로 얼굴을 내밀었다. 그러나 문제를 인지한 개인이 변화를 꾀하는 것과 소수의 개개인으로 인해 세상이 변화하기는 결코 쉽지 않은 일임을 나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무너져가는 지구의 실상을 마주하고도 나는 꾸준히 소고기를 먹었고, 택배 박스 속에 겹겹이 둘려있는 비닐포장지를 주기적으로 꺼내 버렸으니 말이다. 이처럼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반복되는 인간 중심적이고 모순된 일상 속에서 혐오로 점철된 감정으로 지쳐가던 와중, 이 책을 만났다.



  이 책에서 저자의 경험과 학자들의 주장, 쉽게 풀어 설명된 통계와 수치가 함께 어우러져 한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것은 지금껏 지구 위에서 행해져 온, 지독히도 인간 중심적이었던 역사다. 담담하게 들리나 결코 체념한 이의 초연함은 아닌-그 아래에 변화를 향한 소용돌이를 품고 있는 잔잔한 호수처럼, 이 책은 지구의 자연물들을 인간이 어떻게 '자원화', '대상화' 해왔는지 이야기해준다.


  이상하게도 우리는 이를 읽으며 잠시 지구를 둘러싼 거대한 '인간 카르텔'을 당연한 듯 여기게 되고, 왜 이런 당연한 사실을 이야기하는지 작자에게 질문하게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작자가 설치해둔 정신적 장치이다. 책을 향한 의문은 곧 자신과 인간 전체에게로 돌아오게 된다. 즉, 지금껏 우리가 풍요를 추구하기 위해 자행한 것들에 대해 세밀히 이해하고난 뒤, 이의 문제를 인식하고, 이를 바탕으로 인간 존속에 대해 의심하고 자문하게되는 것이다. 어째서 인간의 욕망이 자연의 희생과 표리를 이룰 수밖에 없는지를 한 번이라도 의심해 본 독자라면 이를 읽고 과연 우리가 언제까지 지구를 무시하고 풍요를 추구할 수 있는지, 인간과 지구가 균형을 이루어 살아갈 수 없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의 해결 방향을 찾게 될 것이다.



  책을 덮고 난 후, 말미에 나온 '지구의 풍요를 위하여'의 내용이 입안에 맴돎과 동시에 최근 애정하게 된 문장 하나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바로, 한 교수님께서 전해주신 '인문학은 친환경적 학문이다.'라는 말이다. 교수님께서는 인문학을 깎아내리는 공학도들을 향한 가시 있는 말이라며 내게 소개해주셨지만, 나는 이를 조금 다르게 받아들였었다. 과거 인간의 발전을 위해 세계가 과학에 집중했었다면, 지금부터는 발전의 발판으로 쓰인 지구를 위해 친환경적 학문인 인문학, 즉 인간의 정신적인 측면에 집중해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인 것이다.


  언급한 대로 지금까지 인간의 발전에는 과학과 공학 등의 학문이 크게 기여해왔다. 유럽에서 시작된 대항해를 가능케 한 항해술의 발전에는 과학과 발명의 역할이 컸고, 이를 기점으로 농업혁명과 산업혁명, 세계의 근대화가 줄줄이 이어졌으니 말이다. 인문학 역시 종교개혁을 일으키고 사람들을 계몽케 하는 등 인류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것은 맞지만, 그 본격적 움직임은 대체로 과학 덕에 가능했다.


  그러나 이제는, 인문학이 중심이 되어 세상이 변화할 차례다. 작자의 말대로, 더는 "우리 자신으로부터 스스로를 구하도록 해주는 마법 같은 기술"은 없다. 지독했던 인간중심주의를 벗어던지고, 필요 이상 소비하지 않고, 가능한 한 많이 나누고, 인간의 병폐를 인정하며 변화를 실천하는 정신적인 움직임이 필요하다. 거창하지 않아도 좋고, 고요한 작은 목소리여도 좋다. 제임스 러셀 로웰의 말처럼, 우리를 치유해주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은 거창한 이름의 이념도, 폭풍 같은 변혁도 아니다. 그것은 양심에 이야기하는 고요하고 작은 목소리, 우리를 더 폭넓고 현명한 인간애로 이끄는 마음이다.



  사실 나는 인간발전의 병폐를 인지한 후에도 지극히 인간 중심적이고 시혜적인 입장에 머물러 있었다. '자연을 위해' 인간이 무언가를 해주어야 한다는 입장 말이다. 그러나 책을 읽고난 후부터, 공존하기 위해, 세상 위의 모든 것을 더 존중하고 사랑하기 위해, 인간이 지구 위에 군림했던 지배자의 위치에서 지구와 함께 걷는 동반자의 위치로 이동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바뀌고 있다. "사랑하고 참는 것, 고민의 잔해에서 희망을 만들어낼 때까지 희망을 놓지 않는 것"이라는 퍼시 비시 셸리의 말처럼, 우리는 앞으로 지구가 필요 이상 대상화되지 않고 자원화되지 않는, 인간과 공존하는 지구를 만들어가려 노력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선 호프 자런의 이 책처럼, 우리 인간이 해온 일들을 차근히 되짚어보고, 우리가 그동안 지구를 과도하게 자원화해왔음을 알고, 정신적으로 변화할 필요가 있음을 이야기해야한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최근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는 '레스웨이스트', '업사이클링' 등의 양상을 보면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라 자신한다.



모두가 아프지 않고 공존하며 사랑할 수 있는 지구를 위해 더 많이 알고 싶고, 앎을 바탕으로 변화하고 싶다면 이 책을 과감히 추천한다.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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