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야미 가즈마사의 장편소설 <무죄의 죄> 서평
사실 근래 일본소설을 전혀 읽지 않은 탓에, 그 특유의 감성과 서먹해져있어서 읽는데 지장이 있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러나 걱정과 달리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하룻밤 새 읽을 수 있었다.
시간의 조각처럼 흩어져있는 모든 내용이 결국은 유려하게 연결된 영화적 이미지로 떠오르는데, 이를 가능케 한 것은 작가의 문장력이란 생각이 들었다.
한편, 과거 히가시노 게이고 류의 일본 추리소설, 미스터리 소설 애독자로서 이를 평가하자면, <무죄의 죄>는 치밀한 추리를 요하거나 예측불가한 트릭이 숨어있는 소설은 아니다. 범죄 상황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긴 하지만, 숨 막히는 스릴을 선사하기보다는 독자의 감정선을 건드리는 쪽에 가깝다.
이런 소설의 내용을 나열하는 것은 무의미한 듯해, 이를 읽을 때에 견지하면 좋을 독서방법을 제시해보려 한다.
나를 비롯한 다른 독자들이 아래 제시한 방법으로 소설과 마주해서 보다 넓은 사고의 지평 앞에 서게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첫번째는, 오로지 '다나카 유키노' 라는 불운한 여성의 삶에 주목하여 감상하는 방법이다. 이렇게 감상할 경우, 작가의 메시지가 독자의 감정 깊은 곳까지 침투된다는 점에서 이 소설을 수작이라 평가할 수 있겠다.
주인공 '다나카 유키노'에 대한 재판 결과의 일부분들을 소제목으로 삼고 있는 목차에서부터 우리는 작가가 심어둔 메시지의 맹아를 확인해 볼 수 있다. 또, 작중 유키노의 삶이 오로지 그 주변 인물들의 목소리로 서술된다는 점이 이 맹아의 싹을 틔운다. 내가 읽어낸 바에 의하면, 작가는 한 사람의 삶을 타인의 시선으로 재단하는 것과 이것을 마치 흥미거리인 양 다루고 즐거움을 추구하는 대중들의 모습을 경계한다. 또, 유키노를 논하는 이들의 가벼움과, 무겁기 그지없었던 유키노의 삶을 분명하게 대비시키면서 자신의 메시지에 힘을 불어넣는다.
조금 더 시선을 좁혀 이 작품을 살펴보면, 작중 유키노의 삶에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과 '인간실격'을 관통하는 첩첩산중의 불행 모티프가 반영되어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모티프를 차용한 작품을 즐겨 보지 않는다. 그러나, 언제나 이런 모티프의 작품에는 주인공이 끝까지 희망을 품게 하는 요소가 존재하고, 이를 위해 수많은 고초를 겪다 결국 큰 사건으로 완전히 좌절하게 되는 것이 보통인데, 이 소설의 유키노는 여타 주인공들에 비해 삶 앞에 더 냉담하고 좌절적이며 그 요소가 제 역할을 해내지 못했다는 점이 다르다. 이런 게 나로 하여금 그의 서사에 관심을 갖고 더욱 유심히 들여다보도록 만들었다.
연속되는 불행의 이유가 무엇인지, 더 나아가 삶의 방향과 태도를 결정짓는 것 앞에서 삶의 주체인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를 생각해보며 읽으면 더욱 유의미한 독서 행위가 될 듯싶다.
두번째는, 조금 더 큰 맥락에서 이 작품을 바라보고 사고를 확장하는 방법이다. 작품에서 꾸준히 언급된 '삶의 이유', 즉 인간의 '필요성'에 대한 의문과, 가해자의 서사에 이토록 주목할 필요가 있는지를 견지하며 읽는 것이 그 구체적인 방식이다. 이는 내가 소설을 읽는 내내 시달린 딜레마이기도 하다.
'인간은 왜 존재하는가'에 대한 해답으로, 내가 선호하는 것이 있다. 바로 법륜스님의 '존재는 그저 있는 것이다.'라는 말이다. 이는, 사는 데에는 애초에 이유가 없으며 이미 주어진 것이 우리의 존재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고민은 망상에 불과하고, 그러니 인간의 존재 이유에 대한 고민은 없는 해답에 대한 고민이라 그 종착이 죽음으로 귀결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즉, 고민하지 말고 그저 살아가면 된다는 것이다.
이와 상반되는 것이 <무죄의 죄> 속 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삶의 태도인지라, 나는 작품을 읽는 내내 고통스러웠다. 작중 인물들은 하나같이 존재의 이유를 '필요성'에 둔다. 타인에게 필요를 인정받지 못하면, 그 사람은 존재가치가 없어 죽고 만다는 대목도 있었다. 그 탓에 안정을 찾았던 나의 사고가 혼돈을 겪었고, 결론적으로 이 소설이 인간에 대한 깊은 의문을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분명한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가해자의 서사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 소설은, 내게 진한 불쾌감을 안기기도 했다. 평소 어떤 이유에서든 가해자의 이야기는 조명되어선 안된다고 생각하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소설에는 가해자의 서사를 독자들에게 전달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그러나, 결국 독자들이 가해자의 서사를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고, 가해자에게 동조하게끔 만든다는 점은 여전하다.
결론에 가서는 이야기가 달라지기에 사실 이런 논쟁은 무의미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결론에 도달하기 전 작가가 독자에게 안겨준 감정을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보면 '가해자 서사 존중 필요'라는 메시지로 보일 수 있기에, 독자 스스로가 홀로 논쟁하듯 사고하며 읽을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장르가 소설인지라, 아직 읽지 못한 이들을 위해 자세한 말은 삼간다. 그러나 위의 두 방법을 견지하면서 이 책을 읽어보길 바란다고 전하고 싶다.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