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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지원 Nov 24. 2021

나 왜 '신사와 아가씨' 재밌니?

디즈니 플러스 '로키' vs  KBS 2 주말 드라마 '신사와 아가씨'

  "엄마, 또 '신사와 아가씨' 봐?"

  "어? 어... 그게..."


왜 '신사와 아가씨'본다고 떳떳하게 말을 못 하니? 뭐가 부끄러워서 말을 못 해? 시청률 30%가 넘는 드라마가 어디 흔해?


  "설거지할 때 보기 딱 좋은 드라마야!"


  "엄마 오늘 점심은 우리 '신사와 아가씨' 보면서 먹자!"

  "어? 어... 그게..."


뭘 주저하는 건데? 왜 또 선을 넘는 녀석들 틀어주게? 아니면 벌거벗은 세계사?


  "엄마, 이 드라마 제인 에어 보는 거 같아서 쫌 재밌더라. 나 제인 에어 좋아하는 거 알지?"

  "그래? 그럼... 그럴까? 헤헤"


 이 드라마를 막장이다, 아니다 논하고 싶지도 않다. 일부 설정이 막장이라고 해도 상황이 어설퍼서 그냥 웃기다. 비판하고 싶은 자들의 전투력을 상실시키는 희한한 드라마다. 그리고 내가 매진하고 있는 페미니즘 관점에서도 이 드라마는 논외다. 사실 여자 주인공 단단이가 14살이나 많은 회장님과 순수한 연애를 하고 싶어 한다? 그 마음은 사랑이 아니라, 일종의 보호를 원하는 거니 착각하지 말라고 누군가 옆에서 말해주면 좋을 거 같은데, 딸을 위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그녀의 친모마저 그걸 안 해준다. 말이 돼? 그리고 무엇보다 14살이나 어린 가정교사를 좋아하는 회장님의 그 순수함 또한 비현실적이다. 하지만 누구도 태클을 걸 수 없는 고전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을 보며 학습한 게 있어서 그런가 왠지 납득이 된다! 우리 아이는 제인 에어를 떠올린다. 낯설지 않다. 모르겠다. 그냥 캐릭터가 갖고 있는 선악의 확실한 구분과 권선징악의 흐름, 그 컨베이어 벨트에 올라타는 순간 스르르 빠져든다. 드라마는 판타지라고 배웠는데, 그러니까 지금 세상이 원하는 판타지는 거대한 것이 아니라 그냥 권선징악인가? 게다가 이 드라마가 확실하게 표방(?)하고 있는 그 촌스러움. 그게 또 왠지 요즘 트렌드에 딱 맞는 느낌이라는 것! 물론 오랫동안 시청률이 보장돼 온 KBS 2TV 주말 드라마 자리는 구르며 만든 드라마가 들어와도 그 정도 시청률이 보장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힘 빼고, 막 만든 거 같은 드라마가 시청률 30%라니...     



 넷플릭스는 물론 왓챠까지. 우리 집 Z세대의 추천으로 많은 드라마를 보게 된다! 추천작이 전부 다 재밌다고 할 수는 없지만 어떤 드라마는 빠져들면 며칠 동안 잠도 못 잔다. 건강마저 해치게 될까 봐 잠시 멈춘다. 자본의 힘인가? 한 명의 작가가 쓰는 거 같지도 않다. 조연들의 에피소드마저 현란하다. 수작이 왜 이렇게 많은지... 이걸 다 보려면 지금부터 죽을 때까지 그냥 TV 앞에 앉아서 보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내가 보는 동안에도 또 드라마가 만들어지니 나는 절대로 따라잡지 못할 것이다.  물론 넷플릭스와 왓챠가 없을 때도 드라마는 많이 봤다! 기억에 남는 작품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일단 미드부터.(불법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일단 논외로 흠흠.) '앨리 맥빌' 나의 미드 입문작이다.  

나는 이 시리즈를 정말 좋아했다! 앨리가 눈 사람을 만들어 냉장고에 넣는 에피소드가 기억난다. 엉뚱한데, 사랑스러운 그녀. 실수 연발이지만 똑똑한 그녀! 난 그녀처럼 되고 싶었다. 그리고 그녀의 직장 동료인 소심한 남자 존! 그는 용기가 필요한 순간이 오면 거울 앞에서 춤을 추며 이 음악을 들었다. 베리 화이트의 'You Are The First, My Last, My Everything'! 뱃속의 둘째 아이와 함께 제일병원(지금은 문 닫은) 조산 집중 관리실에 누워 있을 때 남편에게 mp3에 이 음악과 성시경의 노래를 담아와 달라고 했다. 요즘 아이들은 mp3라는 말도 모르려나? 암튼 그 답답한 곳에 누워 베리 화이트의 음악을 들으며 용기를 내보았다. 어떻게든 긍정의 기운을 모으려고 애를 썼다. 다시 보고 싶어서 몇 번 찾아봤는데, 실패했다.  


'보스턴 리갈' 이건 진짜 너무 재밌어서 시즌이 종료될 때 진짜 눈물 날 거 같았다.

공화당 지지자인 데니 크레인과 민주당 지지자인 엘런 쇼어 두 남자의 수다는 완벽했다. 그들은 하나도 웃지 않았는데, 보는 나는 뒤집어졌다. 이제 생각해보면 그들의 대화는 보수와 진보의 가치에 대해, 그 대립과 화합과 같은 무거운 주제들을 세련된 유머로 풀어낸 것이다. 그리고 늘 끝장을 보는 결론. 진짜 수작이다. 암튼 주인공이 일하던 로펌이 돈이 많은 중국인에게 넘어가고 결국 두 남자(?)가 결혼을 하며 시즌이 종료된다! 그때 이미 미국은 중국을 많이 의식하고 있었던 거 같다.


'닥터 하우스', 이 드라마는 제일병원 조산 집중 관리실에서 hp넷북으로 다 봤다!

마지막에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던 닥터 하우스의 모습이 떠오른다! 죽은 줄 알았지요? 난 안 죽었어요~~~! 그러면서. 여덟 시즌을 다 봤는데도 퇴원을 못하고 계속 누워있어야 해서 절망적이었다. 암튼 병실에 누워 매일매일 주사를 맞고 검사를 반복하며 닥터 하우스를 보는 건 나름 흥미로웠다. 닥터 하우스의 도움으로 해피엔딩에 이르는 과정이 나에게도 일어나길 간절히 바랬지만 이 드라마를 통해 현실과 드라마는 다르다는 걸 슬프게 깨닫고 말았다. 주인공 캐릭터의 승리다. 전 세계를 통틀어 제일 재수 없고 무례한 의사가 자기 왼손도 모르게 괴상하게 펼쳐나가는 선한 영향력! 한석규가 주연을 맡았던 '낭만 닥터 김사부'를 볼 때 이 드라마가 더 생각났다. 솔직히 '낭만 닥터 김사부'는 '닥터 하우스' 흉내도 못 냈다.   


그뿐인가! 일드는 또 어쩔 것인가! '화려한 일족'을 비롯해 지금은 제목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그런 마을의 아무 일도 아닌 에피소드만으로도 감동을 주던 드라마들!         


그렇다고 외국 드라마만을 기억하는 건 아니다. 김정수 작가님의 작품들 '엄마의 바다'를 비롯해 김수현 작가님의 수많은 흥행작들! 그중에서 '사랑이 뭐길래'. 나는 책으로 출간된 이 드라마의 대본을 교보문고에서 구입해 꼼꼼히 읽었다. 어쩌면 필사를 했을지도 모른다. 오랫동안 책장에 꽂혀 있었는데, 지금은 없다.


일요일 아침에 보던 MBC 드라마 '짝'도 너무 재밌었다. 가끔 큰 감동이 밀려와 눈물을 흘린 적도 있다. 제목이 '밥'이었나? 정확히 기억나는 건 아닌데 암튼 그 집에 더부살이하듯 살고 있는 윤미라가 맨날 찬밥만 먹는데 그 모습이 보고 짜증 난 아들이 엄마를 데리고 바닷가로 가서 따듯한 밥을 지어 드린다는 이야기였다. 마지막 장면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감동적이었다. 그리고... (뭐지? 나 왜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나 연예대상 시상식에서 수상자들이 수상소감을 말할 때 고마운 사람 이름 하나하나 언급하다가 말문 막히는 기분 알 거 같지? ) 암튼 다 열거할 수는 없지만 마음속 깊이 간직한 추억의 드라마가 많이 있다.  


그렇다고 내가 모든 드라마를 좋아했냐? 그건 아니다. 얼마나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며 비판을 해왔던가! 드라마 작가는 못됐지만 비판은 할 수 있다. 뒤틀린 속내를 드러내며 하나하나 지적질을 하며 느꼈던 희열. 그리고 그 끝에 찾아오는 허탈감과 자괴감... 사람의 마음이란 게 어쩔 수가 없다. 그렇다고 어디다 비난, 악성 댓글을 단 건 아니다.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만한 지인들과의 수다파티 이벤트 정도였다. 어쨌든 재미없고 지루하고 공감 안 가는 드라마를 만나면 아! 이 드라마는 내가 즐길 수 있는 수준이 아니야! 그런 도도함을 유지하며 드라마를 골라 봤는데...  나 왜 '신사와 아가씨'재밌니?  

        

 어디서 본 듯한, 아니 본! 설정. 나 지금 카메라 앞에서 연기해요!라고 말하는 듯한 배우들의 어색한 연기, 드라마를 보는 내내 화면 밖에 촬영장 느낌마저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연출자의 큐! 오케이!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도대체 이 드라마 뭐지? 게다가 주인공 남자가 갑자기 산에서 실족해 머리를 다쳐 22살로 간다는 이 황당한 설정 좀 보소. 너무 황당해서 나 진짜 뿜을 뻔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게 다 계획된 흐름이라는 거다. 신사와 아가씨가 살살 썸을 타다가 드디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후 알콩달콩 데이트를 하긴 했는데,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둘 만이 비밀 데이트였다는 것. 그래서 신사의 기억상실을 이용한 의붓엄마와 조실장의 계략이 지금 판을 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런 설정을 계획적으로 한다고? 막 쓰는 거 아니야? 이 드라마의 관계자 중 누구 하나라도 부끄러워하며 반기를 들 법도 한데? 아무도 그럴 수가 없었겠지. 시청률이 점점 올라가는데 그게 무슨 문제가 되나? 세상 예쁜 송혜교가 키스를 몇 번씩 해도 고작 시청률이 10%대다. 그게 또 대단하다고 기사마다 난리굿인데, 솔직히 이 드라마 시청률 30%를 넘기고 있다. 도대체 이 드라마 누가 만드는 거야?  


 함께 드라마 보조작가를 했던 오랜 지인에게 '신사와 아가씨'이야기를 하며 우리 우연이가 폭 빠져 보고 나도 왠지 자꾸 본다고 이상하다 했더니 걱정 말라며 자기 지인의 대학생 딸까지 밥상에서 손에 숟가락을 쥐고 넋 놓고 본다며 이 드라마가 진짜 문제작이라며 깔깔 웃는다.


"이 드라마 연출이 누군지 알아요?"

"알아요!! '산너머 남촌' 신창석 감독님이잖아요!!!"


'산너머 남촌'은 지인과 내가 함께 보조작가로 참여했던 작품이다. 1년 넘게 둘이 한 달에 한 번씩은 예산을 오가며 취재를 했다. 그 지역 부녀회, 주무관님, 심지어 다문화 가정을 찾아가 그 집 아랫목에 앉아 몇 시간이고 수다를 떨었다. 그때 경험한 감독님은 뭐랄까? 일반적인 남자 어른 같지는 않았다. 매사가 진지하기보다는 장난스러웠다고나 할까? 서울대학교를 두 번 합격했다는 신화 같은 이야기가 그분을 따라다녔다. 언젠가 그 감독님과 '산너머 남촌'작가님의 식사 자리에 나까지 합석한 적이 있는데, 여의도에 있는 중식집에서 식사를 하고 다 같이 당시 마포에 있던 우리 집에 와서 차를 마셨다. 그때 네팔 히말라야 어디를 다녀왔다고 하시며 거기서 사 가지고 온 열쇠고리를 당시 초등학교 3학년쯤 된 우리 아이에게 선물로 주셨다. 고마운 기억이다. 그분에게는 기억에도 없을 사소한 일이지만, 우리 아이에게는 나름 큰 기억으로 남아 나중에 PD가 되겠다고 한 적도 있었으니까. 그래, 이 분. 이 분이 '신사와 아가씨'의 연출이라고 하니 왠지 많은 궁금증이 한 번에 해결되는 느낌이다. 이 분이라면 힘 쫙 빼고, 아주 특별한 걸 보여주고 말겠어! 그런 거 없이 허허실실 웃으며 갈 수 있겠구나. 시청률이 잘 나오니 뭐라고 할 사람도 없을 테고. 방송국이 원래 그런 곳이 아닌가!    


 지난 주말, 벌써 친구들을 모아 디즈니 플러스에 가입한 딸이 아빠에게 디즈니 플러스 주식을 사야 한다고 난리다. 스포티파이와 넷플릭스 주식도 사야 한다고 했었는데, 남편은 안 샀고, 그 주식들은 엄청나게 올랐다고 한다. 스포티파이와 넷플릭스 때문에 우리 집이 가난해졌다니 믿을 수가 없다. 어쨌든 남편은 흥미가 생겼다. 그래? 요즘 디즈니 플러스 핫하다는데 한 번 맛이나 보자. 그렇게 우리 가족은 거실에 모여 로키 시리즈를 시청했다.

 와우! 스케일이 장난이 아니다. 존재하지 않는 어떤 세상을 구현했는데 이렇게 구체적일 수가! 등장인물의 대사가 놀랍다. 악당 나오고 경찰 나오니 뭐 뻔한 대화 오갈 줄 알았는데, 예상을 뒤엎고 엄청 철학적이다. 악당에게 묻는다. 너는 왜 악당이냐고. 대답 또한 너무 근사했는데 왠지 불편했다. 왜 이렇게 생각 많이 하게 하지? 고작 1편을 봤는데, 이 세상은 너무 거대하고 똑똑하다. 100권짜리 장편소설을 갖다 주며 기가 막히게 재밌으니 읽어보라고 하는 거 같은데 나는 체력도 안되고 눈도 침침해서 그냥 포기하고 싶어지는 심정이랄까? 그리고 기본적으로 마블의 세계관을 꿰지 못하는 나의 무식함을 어쩔 것인가! 디즈니 플러스 아무리 핫해도 중년인 나에겐 버겁다. 그냥 MZ세대들 보세요.  1년에 9만 원인가? 하는 구독료를 아홉 명의 친구가 돈을 모아 가입을 했단다. 디즈니 플러스는 결국 아이들의 코 묻은 돈을 모아 거대한 자본이 되는 것인가? 슬그머니 TV 앞을 벗어나 저녁 준비를 했다 그리고 설거지를 하며 '신사와 아가씨'를 보니 숨통이 트인다! 낄낄 웃음이 나온다. 남편이 그런 나를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며 지나간다.


그러니까... 나 왜 신사와 아가씨 재밌니?  


 솔직히 공들여 만든 드라마가 시청률까지 높으면 당연히 그럴 수 있지! 생각할 것이다. 그 정도는 아니어도 그런 가보다까지는 할 것이다. 하지만, 예전 같으면 절대로 내 눈을 사로잡을 수 없는 조건을 모두 갖춘 이 드라마가 하필이면 지금, 고퀄리티의 드라마가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는 이 시점에 내 눈을 사로잡았다는 게 신기하다. 왠지 복잡하고 어려운 드라마에 지친 나의 뇌가 편안하게 휴식을 누리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랄까! 이래저래 복잡한 세상이다. 드라마라도 가끔 편하게 보고 싶다. 그래서 나의 설거지 영상 메이트는 바로 너, '신사와 아가씨'다!  

    



*개인의 취향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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