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지원 Nov 17. 2021

내 육아의 참회록

왜 그런 부끄러운 훈계를 했던가! 

* 지금으로부터 3년 전 2018년 제가 연재하던 잡지 12월 호에 실린 글입니다. 

수능을 앞두고 그 시절이 생각나 올려봅니다. 

 


 요즘 ‘가지’ 반찬을 자주 한다. 탱탱한 가지가 세 개씩 렙에 둘둘 말려 마트 채소코너에 누워 있는데, 가격이 2천 원을 넘는 법이 없다. 쌀 때는 천 원 대 초반. 얼마나 싸고 맛난 채소인가! 이걸 볶기도 하고 튀기기도 하고, 매일매일 식탁에 가지 반찬을 올렸다. 어제는 꽈리고추와 볶은 가지, 그제는 파프리카와 볶은 가지를 커다란 접시에 담아 식탁에 올렸는데, 색깔이 얼마나 화려한지 마치 식탁에 꽃을 놓는 기분이었다. 오늘 아침엔 간 돼지고기에 간장, 맛술, 다진 마늘, 다진 홍고추를 넣고 팍팍 볶은 가지를 금방 한 냄비밥을 옆에 놓았다. 김이 올라오는 하얀 밥 옆에 윤기가 좔좔 흐르는 가지가 놓이자, 수능 시험이 코 앞에 닥친 고3, 큰 딸이 슬슬 걸어 나오며 한마디를 한다.        

  

 “엄마, 너무 가지가지하는 거 아니에요.”   

   

 가지가지?! 나는 빵 터져 깔깔 웃다가 그만 갑자기 나도 모르게... 눈이 뜨거워졌다. 아, 이런 아이지, 이렇게 불쑥 나를 웃게 하는 보석 같은 아이. 눈으로 쏟아지는 그 뜨거운 것을 목구멍으로 삼키며 깊은숨을 내쉰다. 그리고 딸을 본다. 한 오천 미터쯤 땅굴을 파다 길을 잃은 것 같은 표정이다. 많이 지쳤구나. 우리 딸...


 딸은 고등학교 입학과 함께 중간고사, 모의고사, 기말고사, 방학 자율학습, 다시 중간고사, 모의고사... 쉴 틈 없이, 아플 새도 없이 그렇게 달리고 달려 지금 수능 시험 앞에 딱 서 있다. 책장 가득 꽂힌 문제집들, 스프링 노트들, 어마어마한 양의 필기도구들... 3년의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간 기분이다. ‘마르고 닳도록’이란 제목의 책이 책장 한 칸에 쭉 꽂혀 있길래, 뭔가 봤더니, 국어 모의고사 기출문제집 이름이다. 문제집 이름이 ‘마르고 닳도록’이라니. 그 옆에 있는 문제집은 ‘치열하게 독하게’. 요즘 고등학교 아이들이 푸는 문제집들은 종류가 어찌나 다양한지, 나는 이미 그 체계를 파악하는 것도 포기했고, 골라 사줄 수도 없다. 내가 예전에 공부할 때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다. 요즘 입시는 엄마 몫도 크다는데, 난 우리 집 손 많이 가는 늦둥이를 키우느라 정신이 없다. 야간 자율학습을 마친 아이를 차에 태우면, 어떤 날은 어깨가 축 처져서 금방이라도 펑펑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옆에 앉는다. 나는 눈치를 보며 슬쩍 한마디를 건넨다.     

  

“힘들었어? 야, 진짜 며칠 안 남았더라... 조금만 힘내자 응? ”   

“엄마, 고3 엄마 맞아? 며칠 안 남았다고? 시간 없다는 말이잖아. 그 말이 얼마나 힘든 말인지 알아?”

“아... 난 그냥... 얼마 안 남았으니까 빨리 끝내고 엄마랑 놀자는”

“일정 얘기는 하지 마...”       


 고3 히스테리다. 난 눈치를 보며 라디오를 켜려다, 그냥 다시 핸들을 잡는다. 수능 금지곡이라도 나오면, 끝장.


 며칠 전 아침에는 웬일로 기분이 좋은지 동생을 “코딱지! 코딱지!”라고 부르며 장난을 친다. 동생과 언니가 웃으며 장난을 치며 자매애가 무르익은 듯 보이길래 슬쩍 농담을 던져보았다.      


"우연이 코딱지 아닌데, 우연아, 언니 고삼충이다 고삼충!"

" 뭐? 고삼충? 엄마 그게 뭐야? 언니 고삼충이야?" 

" (싸늘) 엄마... 지금 뭐라 그랬어?"

" 아니... 그게...  "   


 이게 바로 ‘갑분싸(갑자기 분위기 싸해짐)’인가! 물론 살짝 뼈 있는 농담이긴 했다. 그동안 고3 딸 눈치 본 게 억울해 한마디 한 건데, 그렇게 한 순간, 얼굴이 바뀔 줄이야. 지킬박사와 하이드 보는 줄 알았다. 여름까지만 해도 이 정도로 예민하진 않았는데, 시월 마지막 모의고사를 마치고 나서부터 진짜 심리적인 압박이 이만저만이 아닌 모양이다.      


 지금 고3 아이들은 내신 등급이 자신의 계급이고, 푸는 문제집이 자신을 증명하고, 어떤 대학교에 원서를 넣었느냐가 자신의 스펙인 그런 상태인 거 같다. 몇 명 안 되는 교실에서 아이들은 자신의 위치를 느낌으로 파악하고, 스스로 ‘처신’이라는 것을 한다. 경쟁하고 비교하면 열등감이 찾아온다, 자존감이 무너진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엄습해오고, 뒤늦은 후회들이 자기 자신에 대한 미움으로 이어지는 그런 시간들이 매일 이어지니, 저렇게 예민해질 수밖에...  마음이 아파온다. 내 눈엔 세상 하나뿐인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인데... 세상에 가지 반찬을 보고 가지가지한다니! 이 얼마나 기막힌 언어유희인가! 내가 태어나 들어 본 유머 중 최고다! 아주 오래전에는, 서 너살 쯤 된 딸이 하도 예뻐서 나는 “우리 우진이 예뻐 죽겠어! 귀여워 죽겠어!”를 입에 달고 산 적이 있었다. 그러자 그 작은 입으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엄마 때문에 귀엽지도 못하고 예쁘지도 못하겠다. 엄마 죽으면 안 되니까.”      


둘째를 임신하고, 나는 다시 시작될 육아에 대한 두려움이 커져 많이 힘들었다. 

그런 나에게 건넨 따듯한 한마디. 


“엄마, 나는 엄마 아빠 둘이 키웠지만, 

 동생은 나도 함께 셋이 키울 거니까 너무 걱정 마.”     


 또 눈이 뜨거워진다. 눈물이 고인다. 이렇게 예쁜 딸에게 나는 정말 좋은 엄마가 아니었다는 사실이 너무 미안하고, 후회스럽기 때문이다. 나는 인내심이 부족한 엄마라 항상 서두르며 아이를 독촉했다. 그때 나는 일과 살림을 병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이가 스스로 해낼 때까지 기다려줄 시간도 없었다. 빨리빨리빨리... 난 그 말을 입에 달고 사소한 일들을 전부다 내가 빨리빨리 해주며 아이를 키웠다. 어느 날 딸이 나에게 교복 후드티의 리본을 묶어 달라길래, “그걸 못 묶어?” 하며 타박을 했는데, “나 못 묶어.” 하는 것이다. 아, 그렇구나. 나는 딸에게 고민하며 리본을 묶어 볼 기회조차 주지 않았던 것이다. 이렇게 성질 급한 나에게 무시무시한 재앙이 찾아왔다. 바로 사. 춘. 기. 


 그것은 딱 한 단어로 설명되는데, 바로 ‘느림’이었다. 무엇을 해도 어찌나 느린지 아주 속이 터질 지경이었다. 아침마다 깨우기 전쟁,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 않았다. 강제로 일으켜 놓으면 다시 누워 잔다. 일어나라고 소리를 지르고 등짝을 때려 깨워 놓으면, 일어나서 식탁까지 걸어오는 걸음걸이가 또 어찌나 느린지 그 모습을 보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 스트레스. 참다못한 나는 달려가 등을 밀어 식탁까지 데리고 와서 의자에 앉. 혔. 다. 중학교 2학년 때였는데, 지각을 하면 수업을 마치고 교실 청소를 하는 벌을 받아야 했다. 기관지가 약한 아이라 청소를 안 했으면 했다. 지각만은 시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밥을 다 먹고, 양치와 세수를 하라고 욕실로 들여보내면 아무리 기다려도 나오질 않는다. 문을 열고 나오라고 소리를 치면 아이는 급할 게 전혀 없다는 표정으로 나온다. 그렇게 교복을 입고 바로 출발을 해도 지각인데, 느긋하게 신발을 신다가 한마디를 한다.     

 

“ 나 이, 안 닦았는데... ” 

“ 잉? 무슨 소리야? 아까 세수할 때 안 했어?” 

“ 엄마가 나오라고 해서 그냥 나왔는데 세수만 하고. ” 

“ 야!!!!!”      


 결국 다시 욕실로 들여보내 양치를 시키고, 걸어서 10분 거리를 차로 데려다주며 도대체 이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하나! 앞으로 성인으로 성장해 정상적인 사회 구성원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심각하게 고민하고 좌절했었다. 놀랍게도 이건 어떤 하루의 에피소드가 아니라,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상이었다. 사실 그때는 그게 사춘기인 줄도 몰랐다. 나 열 받으라고 반항하나? 했는데 돌아보니 그게 바로 사춘기였다. 스스로 시간을 갖고 극복하도록 좀 놔뒀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이 답답한 아이를 내가 단 한 번의 확실한 훈계로 완전히 고쳐놓을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내가 뭐라고 하든 그냥 멍하니 서 있기만 했다. 잘못했다는 말도, 앞으로 잘해보겠다는 말도 안 했다. 나는 무시당한다고 느꼈고, 화가 났다. 매일매일이 전쟁이었다. 내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도대체 어떻게 해야 이 아이를 좀 일찍 일어나게 해서 제시간에 등교를 시킬 수 있을지 도무지 방법을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딸이 나에게 이런 말을 하는 거다.

       

“엄마, 나 청소하는 거 괜찮아. 지각해도 되는데... ”          


충격이었다. 지각을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아이에게 지각을 하지 말라고 했으니, 그게 될 리가 있나. 이후로도 딸은 계속 지각을 했다. 이렇게 해서 맨날 지각하는 나쁜 버릇을 한방에 고쳤다! 뭐 그런 에피소드가 아니어서, 실망하셨다면, 죄송. 아이는 쉽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걸, 많은 것을 잃고 깨달았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거 말고는 대부분 좋은 아이였다. 책을 많이 읽고, 교실에서 왕따 당하는 아이를 챙겨주고(이 부분이 가장 자랑스럽다), 내가 육아에 지쳐 힘들 때, 다가와 안아주고...

                       

 고3 여름 방학 지나고 모의고사를 연달아 보며 딸의 스트레스가 최고조에 이르렀다. 이상하게 짜증을 내며, 완전히 낯선 얼굴로 막말을 하길래, 이건 아니다 싶었다.      


 “야! 너 이리 와 봐! 고3이면 그렇게 해도 되는 거야? 어디서 그렇게 버릇없는 행동을 하는 거야!! “     

 

 내 이놈의 나쁜 버릇을 한방의 훈계로 딱! 고쳐버리리라! 또 그 이상한 결심이 스멀스멀 올라왔고, 아이를 마구 몰아세웠다. 혼을 내면서도 다음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두려웠다. 예전처럼 대답을 안 하고 나를 무시하는 듯 버티고 서 있으면, 내 목소리가 더 커질 텐데, 남편도 나만큼 짜증 난 얼굴인데, 남편까지 이 훈계에 합세한다면, 그건 또 내가 바라는 그림이 아닌데, 하지만, 이렇게 버릇없는 행동을 그냥 넘어간다면, 이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는 진정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없을 텐데, 그러니까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내가 오늘 한방의 훈계로 이 나쁜 버릇을 딱 고쳐줘야만 해! 나는 딸이 빨리 잘못을 인정하고 이 상황이 잘 마무리되는 해피엔딩을 기원하며 목소리를 점점 더 높였다. 잠시 후, 내 말이 끝나자,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아이가 내 눈을 똑바로 보며 들어본 적 없는 강력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 엄마, 나도 나를 어떻게 못해서 이러는 거 안 보여? 엄마도 힘들면 나한테 짜증내고, 문 쾅쾅 닫고, 한숨 쉬고 다 하잖아! 나는 그런 엄마 받아주는데, 엄마는 왜 안 그러는데! 나도 내가 잘못하고 있는 거 알거든. 꼭 오늘 밤에 끝장을 봐야 해? 당장 뿌리를 다 뽑고 싶어? 좀 기다려주면 안 돼? 행동 하나하나 다 버릇없다고 지적하면 내가 그거 고치고 싶을 거 같아? 내 맘 풀릴 거 같아!”


 속에 있는 말을 내던진 아이는 엉엉 울기 시작했고, 나는 갑자기 차분해졌다. 머리가 멍해졌다. 틀린 말이 아니다. 그렇다. 나도 집안일하고 또 하고 힘들면 괜히 짜증내고 막 그랬는데, 지금 힘들고 불안해서 좀 이상한 행동을 하면, 그걸 좀 이해하고 보듬어서 꽁꽁 언 마음, 따듯하게 녹여주었어야 하는데, 그 나쁜 버릇, 지금 당장 한방에 다 베어 버리겠다고 칼을 빼 든 것이다. 이 잔인한 훈계가 먹힐 거라고 생각한 나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그러게.. 니 말이 맞다 엄마가 미쳤나 봐... 잘못했다. 미안해...”       

 

그날 이후, 나는 딸의 히스테리를 받아주려고 노력한다. 과하게 눈치 보는 엄마 콘셉트로 개그를 한다. 아이가 웃는다. 그래, 그럼 된 거지...  딸의 생일날, 나는 정성껏 음식을 준비했다. 생일 케이크도 만들고, 이번엔 간 돼지고기를 소금, 후추, 마늘을 넣고 양념을 해서 칼집을 넣은 가지 사이에 끼운 다음 밀가루 옷을 입혀 바삭하게 튀겼다. 가지 튀김! 


"엄마가 엄마가 처음이라, 

 너 키우면서 진짜 가지가지했다. 미안해."    



* 세월이 흘러 벌써 2021년입니다. 다행히 딸은 그해 수능 시험을 잘 보고 

논술까지 잘 써서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습니다. 이제 3학년이라 취업준비로 여전히 바쁘고 고민도 많네요.

저도 나이를 먹었지만 아직도 비슷하게 '가지가지'하는 엄마로 살고 있어요!  

         

2018년 CTK 12월호 [그 아줌마 공감일기]


작가의 이전글 오징어 게임, 안 볼 권리에 대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