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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지원 Nov 05. 2021

오징어 게임,
안 볼 권리에 대해  

오징어 게임 안 보고 쓰는 오징어 게임 이야기 "아이들은 어쩌나!"


엘리베이터에 탔더니 다섯 살 정도 돼 보이는 세상 귀여운 남자아이가 

엄마 손을 잡고 서 있다. 피부가 어찌나 하얀지, 눈동자는 왜 그렇게 까만지. 

보이든 안보이든 마스크 속 내 입꼬리가 한 껏 올라간다.   

그리고 그 아이, 소재도 좋아 보이는 빨간색 후드티를 입고 있는데 

어깨에... 동그라미, 세모, 네모... 아, 오징어 게임이구나!  


줌 수업을 마치고 나온 딸이 그런다 

"엄마 영어 선생님이랑 게임을 하면서 수업했는데, 그거 알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근데 틀리면 선생님이 빵야 빵야 총을 쏘셔...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냐?" 


학교에서 돌아온 딸이 또 그런다.

"엄마 국악 시간에 난타하려고 하는데, 아이들이 모두 딴딴 딴...!!! 오징어 게임 노래하자고 그런다

그거 우리는 보면 안 되는 거라는데 친구들은 다들 본 거 같아!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냐?"


 디피까지는 어떻게 봤는데, 도저히 오징어 게임은 용기가 안 난다. 오징어 게임 속 여성 혐오에 대한 칼럼을 신문에서 읽었는데, 잠깐 '신문에서.'가 딱 걸린다. 종이신문을 본다는 건 왠지 나이가 많이 들어 보이는 이미지. 어쩔 수 없다. 솔직히 나를 분류하는데 기성세대라는 딱지를 안 붙일 수가 있나. 기성세대가 되면 노파심이 많아져 잔소리를 하게 되는데 나 역시 지금 이 글이 그렇게 될 거 같아 쓸까 말까 고민도 해봤는데, 나도 모르게... 지금 쓰고 있다! 어쨌든 그 칼럼에서 여성 혐오라며 묘사한 장면들을 읽고 나니 보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다.  


 오래전 그렇다고 성인이 아닌 시절은 아니고, 90년대 초반 한창 방송국 신문물을 접하며 뭔가... 트렌드에 뒤떨어질까 봐 안달하던 시절이었는데 신촌 어느 극장에서 혼자 장선우 감독의 '너에게 나를 보낸다'라는 영화를 봤다.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니며 권사님 할머니와 생활해온 나였기에 쫌, 그랬다! 그래도 세기말을 살아가는 X세대, 방송작가로 트렌드에 뒤쳐질 수는 없었다. 앞서 나가야 했다. 회의 시간에 한 마디라도 보태기 위해 볼 게 있으면 다 봤다. 그러다가 같은 감독의 영화 '거짓말'을 봤다. 원작 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봐'도 읽은 거 같다. 그 누런 화면에 이상하고 기이한 장면들...  그건 확실하게 이상했고, 기분이 나빠졌다. 죄책감에 휩싸였다. 그 나쁜 기분에서 빠져나오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와 비슷한 느낌은 영화 '주홍글씨'. 김영하 작가의 소설이 원작인 이 작품은 마지막이 '말도 못 하게' 참혹했다. 시간이 흘러 이 영화의 주인공인 배우 이은주가 먼 길을 떠났을 때, 이 영화가 생각이 나 마음이 더 아팠다. 그리고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 이 영화는 배우 장진영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겨주었는데 눈물을 펑펑 쏟으며 수상 소감을 말하던 모습이 기억난다. 나는 어떤 시상식이든 누가 수상소감 말하며 눈물을 흘리면 같이 눈물을 흘리는 버릇(?)이 있는데, 그날은 더 그랬다. 마음이 아파 울었다. 빛나는 드레스를 입고 여우주연상까지 받는 여배우를 보며 마음이 아프다니... 이건 진짜 나의 오지랖의 끝이라고 인정한다. 하지만 그 시절, 나는 싸이월드에 큰 아이의 육아일기 같은 걸 쓰고 있었는데, 그날 그 시상식을 보고는 이 예쁘고 아름다운 그녀를 꼭 그렇게 진흙탕에 담가야 속이 시원하냐며 그때도 지금처럼 꽥꽥거리며 글을 썼다. 


'연기면 뭐든 다 해야 해? 그 정도의 생고생은 해야 여우주연상을 받는 건가? 그럼 다음 수상자는? 또 얼마나 고생을 해야 상을 주겠다는 건데!' 


성인이 된 후에 본 어떤 영화의 어떤 장면조차 나쁜 기억으로 남는다. 그렇다고 내가 좋은 세상만 보여주고 이슬만 먹이는 그런 육아를 지향하는 건 절대 아니다 그래도 너무 혐오스럽거나, 폭력적이거나, 참혹하거나, 이상한 장면은 나중에 커서 봤으면 좋겠는데... 어차피 볼 수 밖에 없는데 그때 보면 될텐데, 왜 벌써 보여주지?


이거 기성세대의 노파심인가?    


 다행인 건 나는 이제 오징어 게임을 안 봐도 된다. 방송작가도 아니고, 식구들 먹을 밥 차리는 게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중년의 아줌마일 뿐이다. 이거 안 보고 트렌드 좀 못 따라잡는다고 누가 뭐라고 할 사람도 없다. 비슷한 계보의 다른 영화들을 보기도 해서 더 궁금하지도 않다. 보고 나서 괜히 분노에 휩싸여 부들부들 떠느니 차라리 안보는 게 낫겠다 싶은데, 뉴스에도 오징어 게임, 유 퀴즈도 오징어 게임, 나혼산도 오징어 게임, 연예가 중계에서도 난리가 났다. 오징어 게임을 테마로 한 야외행사로 달려간 리포터 시민을 향해 외친다. "오징어 게임 좋아요~~" 엘리베이터에서 본 그 빨간색 후드, 그걸 입은 아이가 거기도 있다. 리포터가 아이를 붙잡고도 인터뷰를 한다. "이거 누가 사줬어요?" 


 하여간 오징어 게임 안보는 인간은 세상천지에 너 하나일 거라며 불안감 주고, 압박하는 이 방송국 놈들! 이러니 애들도 당당히 보고, 부모도 보여줘도 괜찮다고 생각하게 된 건 아닐까?       

 

 고민 끝에 담임 선생님과 통화를 했다. 큰애가 대학생이니 나는 수많은 담임 선생님을 겪어왔고, 솔직히 선생님에 대한 환상 같은 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담임 선생님은 거의 흠잡을 데 없는 좋은 분이다. 그리고 중년 여성이라는 공통점이 있어 나는 종종 그분에게 연대의식 같은 걸 느끼기도 한다. 선생님은 본인이 오징어 게임을 보지 못했다며 어머님이 걱정하는 것에 대해 모르지 않지만, 대부분 아이들이 부모님과 함께 봤다고 하기 때문에 선생님으로서도 뭐라고 말할 상황이 아니라는 것. 그래도 우려되는 부분이 있으니 어떤 상황이 됐을 때 자연스럽게 지도하겠다고 말씀하셨다. 아주 상쾌한 느낌의 통화는 아니었다. '모르지 않지만', 선생님들은 이런 표현을 참 좋아하는 거 같다. 어쨌든 통화를 마치고 나니, 나 혼자만 이렇게 동동 거리고 있나? 그런 생각이 든다. 이 찜찜함을 참을 수 없어 뉴스 쪽에서 일하는 후배에게 톡을 했다. 


 "나 뉴스 제보 하나 할게!"  나의 답답한 심정을 구구절절 문장으로 토로하자, 후배가 공감을 해주며, 관련 자료를 보내주는데 독일도 미국도 스페인도 초등학교에 오징어 게임 들어오는 것에 대해 큰 우려를 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담임 선생님께 이런 것도 말씀드렸으면 어땠을까? 아니다. 오히려 잘난 척하는 것처럼 보였을 거다. 그럼 차라리 내가 칼럼에서 읽은 여성 혐오적 장면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씀을 드렸다면? 아니다. 말한 나도, 들은 선생님도 기분이 나빠졌겠지. 중년 여성은 기분이 나빠지면 안 된다. 위험해진다!!!   



 지난 명절에 라이언 레이놀즈가 주연으로 나온 '프리 가이'를 온 가족이 함께 봤다. 게임 속에서 마구 죽임을 당하는 캐릭터들의 이야기. 네가 게임을 하며 총으로 쏜 그 캐릭터들한테도 생명이 있다고 생각해봐, 어때?라는 질문을 던지는 영화였다. 은근 교육적인 내용인데 재밌기까지! 사람은, 아니 사람의 형태를 한 캐릭터조차 소중한 존재니까 그렇게 마구 의미 없이, 함부로 죽이면 안 된다고 이 영화는 말하고 싶었던 거다. 공감했다. 

   

"오징어 게임은 아이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폭력성과 잔인함이 극대화된 영상물이니 아이들에게는 안 보여주는 걸로 사회적 합의를 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거 안 본 사람 세상천지에 너 하나야! 하는 메시지는 이제 그만 좀. 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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