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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지원 Dec 24. 2021

산타 할아버지의 편지

행복한 크리스마스 보내세요! ^ ^ 


대한민국에 사는 정우연 양에게      


안녕하세요! 나는 산타 에드워드랍니다. 

산타를 기다리는 정우연 양의 순수한 마음이 예뻐서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됐습니다.      


요즘 산타마을은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어요. 산타 마을에도 정치가 존재한답니다. 

아주 오랫동안 장기집권을 하고 있던 산타당의 그레고리 대표가 노환으로 사망하고 말았어요. 

우리 산타들은 모두 할아버지니 노환으로 사망하는 일이 그렇게 놀라운 일은 아닙니다. 


사실 산타당은 예수님의 탄생일이라는 크리스마스의 핵심적인 가치보다 

아이들의 선물과 사람들에게 웃음과 행복을 주는 휴식의 의미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죠. 

하지만 나를 포함해 산타마을, 말구유당에 소속된 산타는 그보다는  

예수님의 탄생에 담긴 의미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물론 사람들이 선물을 받고 행복하고, 즐겁고, 웃는 모든 것이 아름다운 일입니다.

하지만 크리스마스가 아니어도 우리는 사소한 일상 속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친절함 속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그런 행복과 즐거움을 뛰어넘는 더 큰 가치라고 생각해요. 


이번에 산타당이 큰 어려움을 겪으며 세력이 약해져

말구유당이 우리 산타마을에 집권당이 되었어요. 

우리는 전 세계 사람들에게 선물을 보내는 일보다 고통받는 소수의 난민, 고아 등 

불쌍한 이들을 돕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것이 우리 당 정책의 방향성입니다. 

내가 할아버지다 보니 너무 어려운 말을 많이 썼나 봅니다. 

간단히 말하면, 앞으로는 선물보다는 전 인류가 지금보다 더 평안하도록 노력하기로 했다! 

이런 말입니다. 허허           


그동안 산타마을에게 산타로 살아가며 가장 많이 전달한 선물이 뭔 줄 아나요?

바로 강아지입니다.  

왜 아이들은 모두 한결같이 강아지를 좋아하는지 모르겠네요. 

그 강아지를 사육하고 전달하는 과정이 힘들다는 걸 우리 아이들이 알아줬으면 합니다. 

심지어 일부 산타마을의 개 사육장에서 동물학대를 의심하게 하는 정황이 발견되어 

산타마을이 발칵 뒤집히는 사고가 있었어요. 

겨우 그 일이 수습되고, 한숨 돌리던 차 결국 산타당의 그레고리 산타가 

세상을 뜨고 만 거죠. 그렇게 집권당이 바뀌고 말았답니다. 

그레고리 산타를 흉보고 싶은 건 아니지만 사실 그는 인기스타가 되고 싶었던 거 같아요. 흠.  

산타마을의 이런 시시콜콜한 일은 아는 사람은 아마 정우연 양이 유일할 겁니다. 

유일하다...가 너무 어려운 말인가? 

쉽게 말하면 정우연 양에게만 이런 사실을 알려준다는 뜻입니다. 허허허 


산타마을은 앞으로 많이 달라질 겁니다. 

우리 말구유당은 예수님의 탄생이 갖고 있는 의미를 우리 당의 가치로 삼고 있답니다. 

그 사실을 세상에 전파하는 일에 더 최선을 다할 거예요. 

하지만 굳이 다른 친구들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할 필요는 없어요. 

산타당의 일부 산타들은 앞으로도 계속 선물 배달을 할 거니까요. 


하지만 우연이처럼 이미 행복한 아이에게 강아지나 3D 프린터를 보내는 일은 없을 겁니다. 

허허허 이해해주길 바래요!     


 정우연 양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27주 만에 조기진통이 일어나 태어난 이른둥이 아이라는 것도요. 

그래서 특별히 응원하고 있었어요. 

힘들게 생명을 지켜온 우연 양이 자라면서 책을 많이 읽고 친구들과도 잘 지내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사실 우연이의 폐기능이 나빠 걱정을 많이 했는데, 운동을 열심히 하고 치료도 잘 받고 있으니 

앞으로 더 건강해질 수 있을 겁니다. 


산타의 선물 대신 편지가 도착해서 실망했나요? 

하지만 우연이에게는 엄청난 비밀을 말해줬으니 이것보다 더 큰 선물은 없겠죠?   

   

갑자기 행복한 아이디어가 떠올랐어요! 정우연 양이 나에게 답장을 보내주면 어떨까? 

우연 양은 글을 잘 쓰고, 책을 많이 읽는 아이라는 걸 우리 산타마을 산타들은 모두 알고 있답니다. 

산타 마을에 우연 양의 답장이 도착하면 우리 말구유당 산타들이 모두 함께 읽을 게요! 

나도 정우연 양에게 종종 편지를 쓸게요. 우연 양도 나에게 편지를 보내줘요. 

대한민국에 산타와 편지 친구가 된 아이는 우연이가 유일하다는 거 기억해요! 

이것도 어려운 말인가? 아니죠? 

우연이는 이미 고학년이나 읽는 동화를 줄줄줄 읽고 있잖아요 허허허허     

      

 산타를 기억하고, 한결같이 믿어준 우리 우연이에게 이 편지가 작은 선물이 되었으면 해요. 

내년에도 찾아올게요! 

그동안 나에게 편지를 써서 우연이네 집 거실 피아노 건반 위에 놓고 뚜껑을 닫으면 

나에게 올 겁니다. 산타는 마법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죠? 우리만의 비밀을 잘 지켜주길 바래요!    

             

  

                                                                                                          2019. 12. 25. 


                                                           핀란드 산타마을 말구유당 산타 에드워드 올림.             



   


대한민국에 사는 정우연 양에게 두 번째 편지를 씁니다.     

이렇게 두 번째 편지를 쓰게 됐군요! 허허허 


정우연 양의 편지, 잘 읽었습니다. 아주 급하게 쓴 흔적이 역력합니다. 

크리스마스를 보낸 흥분이 아직 가시지 않은 거 같군요 허허허


크리스마스 시즌에 산타마을이 바쁜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많은 산타들이 피로와 근육통을 호소하고 있는 지경입니다. 

게다가 우연 양도 알다시피 우리 산타들은 모두 노인이거든요. 

대부분 고혈압이나 당뇨의 초기 증상 정도는 일상처럼 받아들이지요

쓰다 보니 또 어려운 말을 너무 많이 쓴 거 같군요

고혈압이나 당뇨의 증상들을 잠을 자거나 길을 걷거나 하는 

일상처럼 받아들인다는 이야기입니다. 허허허

이렇게 지나고 나니 시원섭섭합니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다행히 산타당과 말구유당은 큰 갈등 없이 각자의 목표대로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냈습니다. 정말 다행이지요? 

저는 경제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프랑스 쪽 가정에 작은 선물을 배달하고, 

아프리카에 세워진 학교에 케이크와 신발을 선물했습니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들려줄게요.          


우연 양이 나의 편지를 기다릴 거 같아 급히 답장을 씁니다. 

대한민국은 오늘 굉장히 추울 겁니다. 차가운 공기가 지나가고 있군요

우연 양이 폐기능이 안 좋다는 것이 알고 있기에 걱정이 됩니다. 

오늘은 옷을 따듯하게 입고, 무리하지 않는 건강한 생활을 했으면 합니다. 

그리고 오늘은 우연 양의 방학식이 있는 날이지요? 

겨울방학 동안 나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즐거운 추억을 만듭시다.

우연 양이 요즘 해리포터 동화책을 읽고 있던데, 그 책을 벌써 읽다니 

대단하군요. 독서능력이 정말 탁월합니다.     

예전에 우연 양의 언니인 우진 양의 실력도 엄청났던 걸로 기억하는데...

우연 양, 앞으로 책을 많이 읽고 마음이 따듯하고 친구들에게 웃음과 행복을 주는

그런 소녀로 자라나길 바랍니다.      


웅장한 자연만 경이로운 것은 아닙니다. 

사람의 따듯한 마음, 착한 말 한마디는 세상을 아름답게 만듭니다. 

항상 잊지 말길 바래요. 


우연 양, 고맙고, 

왜 대한민국의 우연이를 선택했는지는 나중에 알려줄게요. 아직은 비밀이랍니다!      


                                                                                        2019. 12. 27. 


                                                     핀란드 산타마을 말구유당 산타 에드워드 올림.    


       




대한민국에 사는 정우연 양에게 세 번째 편지를 씁니다.           


우연 양, 내 답장을 많이 기다렸나요? 허허허 

우연 양이 내 편지를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바빠집니다. 

우연 양 이런 말 들어봤나요? 

아이들의 하루보다 할아버지의 하루가 훨씬 빨리 지나간다는 것. 


아침에 일어나 여러 가지 업무를 보다 보면, 금방 점심시간이 되고, 또 금방 저녁이 되고... 

또 하루가 이렇게 끝나가는구나! 허탈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그래도 아직 말구유당의 대표로 일하고 있는 것이 감사하지요. 

나도 여기서 좀 더 나이가 든다면, 아마 계속 침대에 누워있거나 하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걸을 수 있을 때 최선을 다해 나의 하루를 살아야겠다고 늘 다짐한답니다. 

우연 양은 지금 아홉 살이지요? 아홉 살은 정말 멋진 시절입니다. 

친구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즐겁고, 공부도 조금만 해도 되고! 그렇지요? 

물론 우연 양 말고 다른 아홉 살 아이들은 영어학원이다 수학학원이다 정말 공부를 많이 하고 있더군요! 

3학년이 되면 여러 가지로 학교 공부도 어려워지고 한다니, 

우연 양도 조금씩은 준비를 해두는 것이 좋을 거 같아요. 


가끔 보면 우연 양 문제집을 풀 때 엄마한테 혼나기도 하던데, 그게 그렇게 하기가 힘든가요? 허허허 

힘들어도 열심히 해보면 더 큰 보람을 느낄 겁니다! 

이번 겨울방학에는 문제집을 풀면서 엄마한테 칭찬받길 바랍니다. 허허허      


우연 양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요! 

우연 양은 언니를 많이 질투하는 마음을 갖고 있더군요. 


우연 양에게 언니는 정말 중요한 사람입니다. 

똑똑하고 마음이 올바른 사람이기 때문에 앞으로 우연 양에게 많은 도움을 주게 될 것입니다. 

나는 우연 양에게 언니가 있다는 것이 참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언니와 함께 보낼 미래의 행복한 날들을 생각한다면 질투보다는 자랑스러움이 커질 것입니다. 

과거의 기억을 떠올려 보면, 언니에게는 지금의 우연 양이 누리고 있는 이런 발랄한 일상이 

별로 없었던 거 같아요. 늘 책을 읽던 조용한 아이였죠. 

엄마 아빠는 결혼 초기라 서로에게 맞추기 힘들어 부부싸움도 잦았답니다.

심지어 주변에 나쁜 친구들이 제법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언니의 마음을 아프게 했었죠. 

나는 그 친구들에게는 선물을 주지 않았답니다! 왜 그렇게 못되게 굴던지... 

그런 힘든 상황에서도 언니는 그 못된 친구들에게 굽히지 않고, 아주 담대히 버티더군요. 

그건 생각보다 엄청 어려운 일이랍니다. 

우연이의 언니는 이 지구에서 좋은 일을 하는 어른이 될 겁니다. 기대가 커요. 

그런 언니의 뒤를 밟아 우연 양도 열심히 공부하고, 운동하고, 마음과 정신이 튼튼한 그런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랍니다. 우진 양만큼이나 나는 우연 양에게 더 큰 기대를 갖고 있어요. 허허허 

늘 친구들을 웃게 하는 우연 양의 그 탁월한 유머감각 멋져요!  


나는 앞으로 일주일 정도 아주 바빠질 거 같아요. 

이번 크리스마스를 마무리하며 말구유당 산타와 산타당 산타가 함께 모여 워크숍을 갖고 

앞으로 우리 산타마을이 어떻게 나아갈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준비하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니까요. 

올해 아이들에게 준 선물과 아이들의 반응을 정리하고, 

혹시 빠트린 친구들에게는 늦게라도 선물을 배달한답니다. 허허허

다시 말하지만, 우연 양처럼 지금 즐겁고 행복한 아이에게는 

선물을 배달하는 일이 없다는 거.. 잊지 말아요! 허허허 

서운해하는 우연이의 한숨소리가 들리는 거 같군요! 


내년 크리스마스 준비를 바로 시작합니다. 

우리 산타들이 얼마나 바쁜지 아마 상상도 못 할 겁니다. 허허허      

그래도 아이들을 위해 조금이라도 따듯한 온기를 전한다고 생각하면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우연 양이 상상하지 못할 만큼 고통스러운 아이들이 지구에는 많이 있습니다. 

우연 양, 아빠가 보는 신문을 보며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어렵고 고통당하는 아이들에 대해 

관심을 갖길 바래요.      


내년을 준비하는 산타 워크숍이 잘 끝나야 할 텐데, 조금은 걱정이 됩니다.

산타당은 우리 말구유당을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요 허허허 

그래도 산타당은 우리 말구유당에게 엄청 중요한 파트너입니다.

산타당이 없다면 우리 말구유당 역시 독재를 하게 될지 모르니까요! 

서로 견제하며 협력하며 내년 크리스마스를 잘 준비할게요!

우연 양도 기대해주세요~ 

     

건강이 늘 최선입니다. 손 씻기와 같은 기본적인 청결 생활이 얼마나 중요한지 

더 얘기하면 잔소리가 되겠죠? 허허허       

잘 지내요 우연 양!                



                                                                                                   2019. 12. 29. 


                                            핀란드 산타마을 말구유당 산타 에드워드 올림.               


p.s: 우연 양, 아직도 구구단을 외우지 못하고 있다고 하던데, 그게 사실입니까? 




 


우연이가 산타에게 보낸 카드


3년 전, 9살 딸을 감쪽같이 속이며 산타 인양 편지를 주고받았다. 얼마나 즐거웠는지!! 

새벽에 일어나 거실에 있는 피아노 뚜껑을 열면 어김없이 답장이 들어 있었다. 

언니가 계절학기를 들어 일찍 일어나니 오실 때 조심하시라는 둥 그런 시시콜콜한 얘기들이 담겨 있었다.

계속 이어질 수 있었는데... 문제는 파일 관리였다. 언제나 그랬듯 바탕화면에 툭 저장해둔 

제목[대한민국에 사는 정우연 양에게] 파일이 아이 눈에 띈 것이다! ㅜㅜ 

파일 관리 좀 하라는 남편의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진짜 울고 싶었다. 

(구구단도 외우게 할 수 있었는데...!!!)

그 파일명을 보고 놀라며 실망하던 아이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미안해... 우연아. 


그렇게 세월이 흘러 오늘이 벌써 2021년 크리스마스이브다.

어제 몇 달 만에 폐기능 검사를 했는데, 아주... 조금 좋아졌다는 의사 선생님의 소견에

아이가 엄청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기분.

작은 행복이 이렇게 소중하다! 어제의 불행이 오늘의 행복임을 인정한다. 

지금 조금 불행해도 이 불행 덕분에 더 행복해질 수 있다는 걸 나는 믿는다. 

 

오후에 아이랑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만들며 크리스마스 분위기 내봐야겠다. 

 

"소중한 저의 451명 구독자님들, 행복한 크리스마스 보내세요! "




 

우연이가 그린 산타
우연이가 그린 크리스마스트리


우연이와 함께 만든 케이크 _ *데코레이션은 우리의 식탁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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