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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지원 Dec 31. 2021

절반의 물로 세제 없이 하는 빨래

Z세대는 지구를 참 사랑해. 

 며칠 전 넷플릭스에서 공유와 배두나의 '고요의 바다'를 봤다. 

이 시리즈는 물이 부족해진 지구의 이야기다. 

물이 부족하니 물을 배급하는데, 계급에 따라 다르게 받는다. 

높은 계급의 어떤 이는 키우는 강아지에게도 물을 줄 수 있지만, 

계급이 낮으면 배급받는 물의 양이 적어 병원 치료마저 어려워진다. 물... 물이 그런 거였다. 

명품백을 살 수 있고, 없고 와는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아프리카 얘기는... 꺼내지 않는 게 좋겠다. 아프리카를 위해 일생 뭐 한 것도 없으니까. 

솔직히 환경운동가들이 지구가 망하네 어쩌네... 그래도 나는 속으로 괜찮지 않을까?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한다. 

과거에는 2000년, 새로운 밀레니엄이 되면 인구가 폭발해 지구가 망한다고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인구가 부족한 시대잖아! 하면서. 


인정한다 나는 평균 이하의 관심으로 환경을 걱정한다! 

이런 나를 종종 골 아프게 하는 건... 바로 우리 집 Z세대, 큰 아이다. 


몸에 좋다면 양잿물이라도 마신다? 뭐 그런 옛말을 우리 딸에게도 적용해보면, 

친환경이라면 양잿물이라도 화장대에 모셔둘 판?!이다. 

큰 아이 때문에 샴푸는 이제 안 산다. 

아이들은 샴푸바를 쓰고 나는 닥터 브로노스, 물비누로 머리까지 감는다. 

주방 세제도 동구밭에서 파는 친환경 주방 비누로 바꿨다. 

(물론 나는 아직 남은 퐁퐁을 기름 프라이팬 같은 걸 닦을 때 몰래몰래 쓰고 있고, 

샴푸도 아직 남아 있긴 하다.) 


처음엔 머리가 뻣뻣해서 불편했는데, 쓰다 보니 적응이 돼 머리가 포슬포슬하다. 

동구밭 주방 비누는 생각보다 똘똘해서 잘 닦이고 헹굼도 편하고, 

특히 나무로 된 주걱이나, 숟가락, 젓가락을 닦을 때 마음이 놓인다!  

(전에도 말했지만, 저 동구밭이랑 아무 상관없어요~)


그러던 어느 날, (늘 그렇듯 그러 던 어느 날 역사는 시작된다!) 

작은 택배 상자가 집으로 배달됐다. 열어보니 하얀 플라스틱 공에 작은 칩들이 들어 있다. 

무세제 클린 파워볼이란다. 

친환경 타이틀을 달고 또 우리 집에 들어온 이 낯선 녀석의 정체가 궁금해

살펴보니, 세탁기에 이걸 넣고 빨래를 하면 세제를 넣지 않아도 된단다. 

세제 없이 빨래를 한다고? 이건 마치... 

간장 없이 생선조림을 한다는 말로 들린다.  

아니 아니 생선 없이 생선조림을 한다는 말로 들린다! 

    

보나 마나 물어보나 마나 또 우리 집 큰 아이의 짓이겠지. 


"야! 너 이거 또 뭐냐? (= 친환경병 또 도졌네)"

"엄마... 이거 비누 없이 빨래하는 거래. 이게 완전..."

"얼만데? (= 몇 천 원 하면 그냥 봐줄게 )"

"몰라..."

"몰라? (= 비싸구먼)"

"1+1 이래"


주문 목록에서 가격을 확인해보니... 3만 4천 어쩌고... 


"야!!!!!!!!  애들 장난감 같은 걸... 3만 원이나 주고... 

 이걸 넣고 빨래를 한다고? 비누도 안 넣고? 아휴 (=저 놈의 친환경 병엔 약도 없어)"

"엄마 이게 우리나라에서는 외면을 받았는데, 독일에서는 완판이 됐데! 

아빠가 아토피 때문에 고생하는 딸을 위해 만들었다는 거야... 내가 쓸 거니까 엄마는 상관 마"


올 겨울 잠시 학교 기숙사에 들어가기로 한 딸이 자신의 빨래를 친환경적으로 하기 위해 

이 세탁볼을 구매한 것이다. 

 

가만히 생각을 해봤다. 이게 정말 가능할까? 비누 없이, 적은 양의 물로 빨래를 한다? 

말도 안 된다. 하지만 진짜 만약 가능하다면, 이거 정말 괜찮은 일이 아닌가? 

밑져야 본전이지, 아니 본전은 아니지! 삼만 몇천 원이 뉘 집 강아지 이름도 아니고, 

하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몇 번 시도를 했다. 

많은 양의 빨래를 한꺼번에 하지는 않았지만, 적당한 양을 넣고 

세탁볼을 넣고, 설명서에 나온 데로 헹굼도 간단히. 

나는 LG 트롬 세탁기를 쓰고 있는데, 거기 세탁 코스 중 스피트 워쉬라고

가장 빨리 끝나는 코스가 있어 그걸로 돌려보았다. 


이게 무슨 일이야! 내 예상을 넘어서는 깨끗함이었다. 물론 기대가 높진 않았다.. 흠흠.


그래, 양말에 도전하자. 이 양말이 깨끗하게 빨아진다면 브런치에도 글로 남겨서 

지구 사랑, 환경 보호에 코딱지만큼의 힘이라도 보태자! 


더러운 때는 세탁볼과 함께 빨래를 물에 30분 정도 담그라는 딸의 조언을 따라

딱 그렇게 하고 양말을 스피드 워쉬로 돌려보았다. 


와... 이 정도면, 글로 올려도 되겠다!  

이 양말을 비누를 넣고, 헹굼을 3회 추가했다면 얼마나 많은 물이 사용됐을지.

꽤 많은 양의 물을 아낀 거다. 게다가 비누도 없이!  

비누가 없이, 절반의 물로 이 정도의 깨끗함이 나온다면... 

여럿이 함께 쓰면 더 좋겠다! 

물론 세탁 세제를 하루아침에 없애긴 힘들겠지만

일단 하이브리드다. 세제와 세탁볼이 함께 공존하는 빨래!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한 나 자신도 되돌아보고 반성했다.  



넷플릭스 시리즈 [고요의 바다]에 이런 대사가 있다.  


"너에게 바다를 보여주고 싶었어..."


물이 부족한 그 세상에... 바다가 없었다. 



*.. 전에도 말했지만, 저는 동구밭, 세탁볼과 아무 상관없는 사람입니다.       

실제 빨래한 양말의 양은 보이는 것에 세배 정도임, 이쁘게 연출해서 촬영했음을 밝혀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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