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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지원 Feb 02. 2023

'엄마'라는 반사회적 존재

넷플릭스 '지니&조지아' VS tvn'일타 스캔들'

그동안 TV를 보다 리모컨 던졌다!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 이번에 또 던졌다고 하면 

이 아줌마가 아직도 성질 못 죽이고 있네! 할지도 모르겠다.  

사실 내가 잘 사용하는 '리모컨을 던졌다'라는 표현은 진짜 리모컨을 던지는 행위라기보다

거칠게 불만을 드러냈다 정도의 의미라는 걸 밝히며    

지난 주말 '일타 스캔들'을 보다가 또 리모컨을 던진 사연을 남겨두려고 한다. 

꽥꽥거리기라도 해야 속이 풀리니까! 

   



요즘 밥도 열심히 짓고 수학 문제집에 그림 그리는 둘째한테 소리도 안 질렀다. 

심지어 이제 6학년이 될 이 아이는 현재 판타지 소설 덕질을 하느라 공부는 사실상 내려놨다.

그 꼴도 난 웃으며 바라봤다. 

그래, 뭐든 되겠지!    


잔소리 폭탄을 꿀꺽 삼키고 가끔 운동도 하며 이렇게나 모범적인 겨울방학을 보내고 있는 참인데 

지난 주말 아무 생각 없이 드라마 '일타 스캔들'을 시청하다 갑자기 화르륵 분노가 타올랐다.     




"뭐야? 이제 엄마들은 그냥 대충 저 정도의 이유로 반사회적 인물인 거야?"


문제의 올케어반 엄마들.  

같은 학원에서 공부하던 아이가 자살을 했다는 데도 그럴수록 면학분위기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며 수업강행을 요구하는 모습은 너무나 충격적이다. 

자녀의 입시를 위해 미쳐버린 그녀들은 우아하게 모인 자리에 개싸움도 마다하지 않고 

달려들어 서로를 물어뜯는다. 더 끔찍한 건 어떤 목적이 생기면 그 개싸움 대상과의 쿨한 화해도 

해낼 수 있는 최악의 인간군상. 그들은 정말 엄마라는 이름의 반사회적 존재였다.  


물론 우리는 이미 '아내의 자격'이나 'sky캐슬' 같은 드라마를 통해 

자녀 입시에 미친 엄마들을 많이 접하긴 했다. 그래도 그들은 드라마의 중심이었기에 인물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사연과 이유가 넘쳤다. 그 모습이 나 같기도 하고, 너 같기도 하고, 우리 같기도 해 

드라마 속으로 푹 빠져들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나 불쾌한 반사회적 인간군상을 만들어 남녀 주인공의 사랑도 막고 

아이들마저 불행하게 만드는 악역을 맡겼는데 그들이 바로 '자녀 입시에 미친 엄마들'이라니...

엄마들끼리 모여 대화만 하면 다 악행으로 느껴지게 만드는 이 기본값 뭐지?   

몰라... 난 좀 불편했다.   




요즘 푹 빠져 보고 있는 넷플릭스 시리즈 '지니&조지아' 


십 대 중반에 딸을 낳은 엄마 조지아는

어린 엄마지만 놀라운 생활력으로 딸 지니를 열심히 키운다. 아빠가 다른 여섯 살 남동생 오스틴도 만들었다.


하지만 현재 남편은 없다. 

천신만고 끝에 그녀는 두 아이와 함께 꿈에 그리던 웰즈베리라는 부자 동네에 입성한다. 

자신의 불행한 과거와 가난을 딸에게 물려주지 않기 위해 초능력에 가까운 열정을 불태우며 

사람도 죽이고 도둑질도 하고 엄마로서 최선을 다해 살아온 조지아. 

하지만 딸 지니는 뭐든 정복하고 쟁취하는 엄마가 점점 버거워진다. 


그러면서도 가끔은 그녀가 대단하다고 느낀다. 

엄마를 향한 양가적 감정이 요동치는 딸 지니와 아들 오스틴.

두 아이의 마음은 점점 병들어 간다. 


이 드라마에서도 엄마 조지아는 '일타 스캔들'속 엄마들보다 훨씬 더 반사회적인 인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그녀에게 깊이 공감하며 드라마의 흐름에 복종하며 순순히 따라갔다.

그녀에겐 그럴 수밖에 없는 분명한 사연이 있었고 난 깊이 공감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엄마라는 이름으로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며 겪을 수밖에 없었던 끔찍한 일들은 

너무나도 가혹한 것이었다. 조지아는 결국 봉준호의 영화 '마더'의 김혜자가 그랬듯 자식을 위해 

살인을 감행한다. 불을 질러 증거를 인멸하듯 조지아 역시 증거를 없애버리고

현재는 꽤나 행복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조지아는 이곳 웰즈베리의 시장인 폴과 결혼을 약속했다. (결혼까지 하게 되는지는 아직 모른다.)    

모든 것이 완벽해진 듯 보이지만 왜 그런지 행복해지지 않는 이 가족... 

점점 그녀를 옥좨오는 과거의 그림자로 인해 그녀의 일상은 부서질 듯 위험하고 

결국 엄마의 살인에 대해 알게 된 딸 지니는 견딜 수 없는 죄책감에 몸부림친다.

조금씩 조금씩 자신을 파괴하는 행위를 멈추지 못한다.   


엄마로서 최선을 다하는 조지아의 모습에서...  나를 발견했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해왔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나,

과거 내가 겪은 불행을 아주 멀리 던져버리고 싶은 나, 

왜 아이들은 내 최선을 몰라줄까? 답답한 나.   


그러다 어느 새벽, 잠 못 들고일어나 다시 '지니& 조지아'를 보기 시작했다.


그날 조지아는 크리스마스 파티를 준비하고 있다.

그녀는 결혼을 약속한 웰스베리 시장 폴의 부모와 남동생을 파티에 초대했다. 

그리고 어쩌다 보니 지니의 아빠인 전 남편의 가족까지 함께 초대하게 됐다. 

이상해 보이지만 그녀에겐 그럴 수밖에 없는 사연이 있었다. 

가족이 함께 하는 완벽한 크리스마스를 연출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   

하지만 파티를 준비하며 점점 불안해지는 조지아. 

살인, 그 끔찍한 걸 몇 번이나 해가며 이뤄낸 그녀의 모든 것은 누가 봐도 아름다운 금자탑처럼 보인다.   

그녀 인생에 가장 행복한 순간이지만 왠지 예전처럼 다 엉망이 돼버릴 거 같은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히는 조지아. 

딸 지니는 엄마의 마음을 간파하고 어떻게든 다독이려고 애를 쓴다.

하지만 조지아는 그 어두운, 거대한 불안을 떨쳐내지 못한다. 

엄마의 그런 모습이 익숙하고, 끔찍하다. 이젠 고통스러운 지니.  

결국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그동안 참고 참았던 자해를... 다시 시작한다. 

   

바로 이 장면에서 엄마의 불안한 감정이 내 아이를 어떻게 힘들게 하는지, 얼마나 고통스럽게 하는지 

너무너무 알 거 같았다.  

엄마의 감정은 자녀를 향해 강물처럼 흘러간다. 

어떤 날은 고요하게도 흘러가지만 가끔은 홍수가 나 거칠게 휘몰아치며 흘러간다.  

거대한 흙탕물이 되어 모든 것을 송두리째 삼켜버린다. 

엄마 조지아를 미워하기도 하고, 사랑하기도 하는 딸 지니의 감정이 

나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뭐야... 이 드라마 재밌네. 티 안 나게 나 가르치네. 

최선을 다했다고 자만하지 말고, 엄마 노릇 좀 제대로 하라네...!  


이러니 내가 새벽에 일어나 드라마를 보는 것이다. 

좋은 드라마는... 진짜 마음의 보약이다.         




긴 겨울방학 아이들 먹을 거, 입을 거 챙기며 다들 얼마나 고단한데, 

가뜩이나 강추위로 어디 돌아다니지도 못하니 외식도 쉽지 않은 상황에 

주말 저녁엔 설거지 거리가 또 얼마나 많은가! 

그 힘든 설거지를 마치고 한 숨 돌리며 TV앞에 앉아 

칸의 여왕 전도연이 나오는 드라마를 잔뜩 기대하며 보고 있는데, 

왠지 모를 실망감이 찾아온다. 


엄마만 사라지면 완벽한 해피엔딩인 '일타 스캔들'의 세상이 난 싫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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