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지원 Jun 19. 2023

삽질하고 요가하며 깨달은 것   

가만히 있는 게 제일 힘들어요.  

 운동하는 일상이 자리를 잘 잡은 느낌이다. 운동을 하는 게 당연하고, 안 하면 이상하다. 

전업주부인 나에게도 가끔은 운동 못 할 업무라는 게 생긴다. 그렇게 운동을 빠트린 날에는

잠들기 전 나도 모르게 눈에 힘을 주며 읊조린다.   


"내일은... 진짜... 꼭..."

"뭐? 뭐라고?"

"내일은 꼭 운동 갈 거라고!"

"그래, 꼭 가라... 우리 지원이."

"그럴 거야! 잘 자! 우리 진경이."

(*요즘 우리 부부는 서로의 이름 앞에 '우리'를 붙인다. 생각보다 재밌으니, 한 번 해보세요!) 


어쩌다 보니 하루 6km 러닝이 굳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주에는 하루 4km만 달렸다.  

이유가 있다. 바로 6km 러닝이 내가 내 몸에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최고의 선물인데 왜? 그러니까... 너무 사랑해서 헤어지기로 한 것이다.     


6km를 달린 후 러닝머신에서 내려올 때의 벅참, 짜릿함이 너무 좋은데, 나 너무 몰입하나?

빠져들었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러다 무리를 해 더 이상 러닝을 못하게 되면 어떡하지? 걱정이 됐다. 

나는 체력적으로 뛰어난 유전자를 가진 사람도 아니다. 아직도 오래된 내장지방과 동거 중이며

하루하루 골밀도가 낮아지고 있는 중년의 아줌마다. 

무엇보다 엄마와 주부의 일상에 6km 러닝이 가장 중요한 것도 문제였다. 

러닝에 너무 집중했나? 냉장고에서 썩어나가는 야채도 생겨나고, 분명 읽고 싶은 책을 펼쳤는데,

어느새 잠들어 버렸다. 균형이 필요했다. 그동안 글로 남겨둘 만한 남편과의 재미난 에피소드, 

너무 사소하지만 왠지 보람을 느낀 순간, 울컥한 순간, 무엇보다 대학생 큰애를 통해 듣고 입이 떡 벌어진 

각종 이야기들(가장 흥미로웠던 건 서브 컬처, BL 관련!) 

아무튼 그런 걸 글로 남겼더라면 좋았을 텐데, 쓸까? 싶다가도 뭘 써, 가서 뛰는 게 낫지! 했다.  


하지만 불타는 열망만큼 늘 완벽한 러닝이 가능한 건 아니었다. 러닝은 내 몸 컨디션의 바로미터다.

어떤 날은 발목이 협조를 안 해준다. 오래 돌리고 충분히 워밍업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안 된다. 

삐그덕 대는 느낌이 너무 싫고, 속도 상했다. 6km를 못 뛴 하루 = 망한 하루. 그러면서 든 생각. 


나 6km 러닝, 너무 모시고 살고 있니? 


혹시 나, 이도 저도 안되니까 여기에 몰두하고 있는 건가? 

여기서 이도 저도의 의미는 내 글이 인정받는 거, 다시 작은 글이라도 쓰며 일하게 되는 그 무엇?       



 한 달 전 즈음 브런치를 통해 제안이 도착했는데, 전자책 출간에 대한 내용이었다. 

검색을 해보니 유명 출판사는 아닌 듯했다. 메일을 읽고 좀 특이하다고 느낀 건 내 글의 어떤 점이 좋다, 

나쁘다 그런 것도 없이, 그냥 전자책 출간하고 싶으면 우리 출판사랑 하세요! 그런 느낌이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내 일상에 나름 임팩트 있는 사건이라, 가족 톡방에 내용을 공유하고 축하를 받았지만, 그 제안을 받아들일 생각은 없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 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일상이 하루하루 

이어지니 문득 그 제안이 다시 떠올랐다. 그러다 어느 날 밤, 아주 충동적으로 그래요, 좋아요! 전자책 출간을 

하겠어요! 원고는 좀 더 다듬고, 추가도 할 거예요!라는 내용의 메일을 보냈다. 그리고 다음 날 바로 후회하고

철회하겠다는 메일을 보냈다. 이건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렇게 할 일이 아니다. 내 글을 알아주는 좋은 편집자와 오래 작업하고 싶다! 그런 욕심이 생겼다. 난 이미 써둔 글도 많다. 그리고 무엇보다 앞으로 더 재밌고 유쾌한 글을 계속 쓸 수 있다! 무엇보다 반사회적 일탈행위로 한방에 날아갈 인물도 아니다. 이런 날 알아줄만한 출판사, 중년의 여성 서사에 관심 있는 편집자를 만나고 싶다! 

잿더미 속 작은 불씨가 또 화르륵 타오르기 시작했다. 

적극적으로 메일을 보내 내 글을 어필해 보자! 마음먹고, 여성 서사에 관심이 있어 보이는 출판사 두 곳을 찾았다. 그리고 그중 한 출판사의 편집자가 우리 동네 가까운 도서관에서 강연계획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강연에 참석하겠다고 신청하고 그 편집자에게 메일도 보냈다. 강연 날짜가 다가오자 마음이 설렜다. 

편집자는 어떤 사람일까? 내가 투고한 글을 읽기는 했을까? 물론 그에게 내 글이 선택받을 확률은 0.0001%도 안될 것이다. 그래도 그런 강연을 통해 출판업계의 분위기와 편집자의 머릿속을 알아보고 싶었다. 

그럼 혹시 그 전자책 출간 제안이 어떤 맥락으로 나에게 온 건지 알 수 있지 않을까?

그들은 왜 나에게 그런 고마운(?) 제안을 했을까? 왜? 

    



 강연이 시작되고 단상에 오른 그 유능한 편집자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손짓, 몸짓이 당당하고 여유가 넘쳤다. 그녀가 만든 유명한 셀럽의 에세이는 (나는 읽진 않았지만) 

매스컴을 통해 접한 아주 유명한 책이었다. 그 과정에서 겪은 유명인과의 에피소드는 그녀가 유퀴즈에 출연해서 이야기해도 될 만큼 충분히 재밌었다. 그리고 최근 주목받고 있는 한 여성 작가와의 에피소드, 

퀴어 예술가와 책을 만들며 느낀 인류애와 인권문제, 그리고 세월호 유족분들과 함께 만든 에세이집까지.

그녀의 행보는 정말 대단했다. 강연 중간중간에 강연 참석자들의 질문을 받기도 했는데, 

솔직히 흥미로운 질문은 아니었다. 왜 저런 게 궁금하지? 출판업계 종사자인가? 그녀의 출판사에

취직하고 싶나? 내가 그녀에게 묻고 싶은 건 단 하나였다. 


"꽤나 힙한 편집자로 명성이 자자하신데, 이런 당신에게 

 저 같은 사오십대 중년 여성은 어떤 의미인가요?"    


하지만, 난 그 질문을 끝내하지 못했다.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유는 그녀가 강연 중 했던 말 때문이었다. 지나가듯 툭, 너무 당연해서 설명도 필요 없다는 듯 내뱉은 

그 말이 내 마음에 비수처럼 날아와 박혔다.   


"에세이는 30대 여성을 놓치면 안 되거든요,... "

"에세이는 인스타 감성이어야 하거든요,..." 


확실하고 단정적인 그 말을 듣고 난 결론에 이르렀다. 

그녀에게 '평범한 사오십대 중년 여성'은 책 보다 먹거리에 관심이 높고, 독서보다 재테크와 건강, 

노후준비에 관심이 많은 존재일 거다. 솔직히 나만 해도 그렇다. 이런저런 글(비록 잡글이었지만)을 써 

벌어먹고 산 세월이 20년인데, 이젠 너무너무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읽다가도 잠이 들고, 

눈도 침침해 한숨을 쉬며 책을 덮는다. 그뿐인가? 우리는 결혼 이후, 출산, 육아, 자녀 입시, 가족갈등 등등등!!! 많은 걸 겪어내며 이 시대에 맞지 않는 '뒤웅박 팔자'의 의미를 뼈저리게 이해하고 말았다. 

인정하기 싫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게... 분명 있었다. 

이 거친, 혼란의 삶을 어떻게 인스타 감성에 담을 수 있단 말인가! 


쉰에 이르니 갱년기 타령하며 맨날 무너지는 멘털을 잡겠다고 6km 러닝에 목숨을 걸고, 

그것도 모자라 실내 자전거를 돌리며 "김희애도 돌리는 걸 내가 왜 안 돌려!" 한다. 

그저 자식 곁에 오래오래 건재하고 싶은 마음으로 그런 건데, 

이런 내가 왜 이렇게 저차원적으로 느껴지는 거지?

  

생각할수록 그 편집자는 유능하고, 똑똑하다. 

향후 십 년 동안 그녀가 사오십대 중년 여성에게 관심을 가질 일은 확실히 없어 보였다. 

물론 이후, 그녀에게도 결혼과 출산 육아라는 여성의 빛나는 서사가 찾아오고, 

다행히 현업을 떠나지 않는다면 그땐 나 같은 중년 아줌마의 애환도 이해가 좀 되려나?

이러니 내 독서는 돌고 돌아 결국 박완서로 귀결된다.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도 중반 이후 계속 똑같은 이야기 같아 덮어버렸다. 

(밥도 안 하고 육아도 안 하니 매일 10km를 달리셨겠죠. 그래도 이제 작가님처럼 The Lovin' Spoonful의 음악 들으며 잘 뛸 수 있게 됐습니다.) 

난 박완서 작가님의 작품 속에 종종 등장하는 열받고 짜증 난 아줌마 감성이 너무 좋다. 

낄낄 웃다가 위로를 받는다. 다 읽고 나면 사는 게 다 그렇지, 조금씩 거지 같은 구석이 있는 법이지! 

그러면서 누군가를 향했던 미움이 연민으로 바뀐다. 그 오래전 아줌마의 찐 감성을 문학으로 승화시킨 

나의 박완서 작가님, 정말 대단하세요!          

           

강연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왠지 모를 원망의 마음이 생겨났다. 

강연 참석자의 마지막 질문이 원고 투고할 때 선택받을 수 있는 팁을 알려달라! 였는데, 

그 순간 그녀의 눈빛이 을에서 갑으로 바뀌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녀는 솔직했다. 

긴 답변이었지만 결국 선택되기 쉽지 않다는 답변이었다. 

왠지 모르게 그 생기발랄한 편집자가 20대 한창 일하던 나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난 중년이고, 그 시절은 지나갔고, 사라졌다. 그 사실이 조금 슬프게 다가왔다.

그렇다고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 영혼까지 활활 태우며 일하고 싶은 건 아니지만,

그냥 마음이 좀 그랬다. 


강연이 어땠냐는 큰 아이의 질문에 솔직한 내 마음, 그 원망의 랩을 쏟아냈다. 

어떤 부분은 공감을 받기도 했지만, 최근 노동문제 관련 책과 영화 '카트'를 보고 정의감 불타는 

리포트를 작성한 우리 아이는 결국 나에게 쓴소리를 던졌다.  


 "근데, 엄마 이러면 안 돼. 엄마는 대기업 관심받잖아, 출판업계까지 엄마한테 관심 가져야 해?" 

      

돌아가신 나의 할머니(박복자 권사님)도 늘 말씀하셨다.


"주신 것에 감사하면서 살아라."



다음 날 요가를 하러 갔다. (괜히 혼자) 억울한 마음을 다스리며 깊게 호흡했다. (철 좀 들자 우리 지원이) 

난 요즘 어떤 동작을 해내는 것보다 내 몸을 쓰는 방향성과 호흡에 집중하고 있다. 

이 동작을 반드시 해내고 말겠어! 생각하는 순간 무리를 한다는 걸 알게 됐다. 

구르기 다섯 번 후 하체를 확 넘겨 할라아사나를 했는데, 더 확실하게 내 하체를 높게 올리고 싶다고 생각하며 무리를 했다. 엉덩이는 좀 무거운가! 목과 어깨가 불편해 며칠 힘들었다. 이젠 호흡과 방향성만으로도 충분히 몸이 예열되는 걸 느낀다. 요가가 훨씬 편안하게 느껴진다. 50분 강습시간이지만 늘 한 시간이 넘게 강습이 이어지고, 드디어 사바아사나. 불이 꺼지고 시체처럼 가만히 누워있으라는 강사님의 지시에 최대한 따르려고 했으나, 왜 그런지 어깨가 들썩거리고, 몸 이곳저곳에 힘이 들어간 게 느껴져 그 힘을 좀 빼보려고 애를 쓰니 또 몸이 움직인다. 내가 자꾸 들썩대자 강사님이 차분하고 고요한 공간에 한 마디를 얹는다. 


"가만히 있는 게 제일 힘들어요..."              


순간,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가만히 있는 게 이렇게 힘들다. 

전자책 출간 제의로 시작된 나의 들썩거림은 편집자의 강연 참석으로 이어졌고, 

원망의 랩으로 절정을 맞았다. 딸의 쓴소리, 할머니의 잔소리, 모두 내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다 맞는 말이다. 결국 이렇게 시체처럼 누워 나는 피식 웃는다. 가만히 있는 게 제일 힘들어요. 

오래간만에 삽질 실컷 했더니 속은 시원하다.  



+ 왜 그 출판사는 나에게 전자책 출간을 제안했을까? 그 의문은 아직도 풀리지 않았다.   

 

우연이가 그려준 나의 사바아사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