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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지원 Jun 23. 2023

나의 '서울 백병원' 이야기

서울 백병원 폐원 소식에 마음이 쓰이는 이유 

서울 백병원이 문을 닫는다는 뉴스에 왜 이렇게 마음이 쓰이는지 모르겠다.   

함께 뉴스를 보던 남편도 아쉬운 듯 말한다.   


"네가 아기 낳은 병원은 둘 다 문을 닫았네, 제일병원도 서울 백병원도."

"그러게... 마음이 안 좋다. 그때 서울 백병원에서 나 안 받아줬으면, 진짜 큰일 날 뻔했는데...

 우리 우연이 오래도록 돌봐주신 서울 백병원 선생님들, 생각난다." 


2011년 7월 26일, 폭우가 쏟아져 우면산이 무너지는 큰 사건이 있었다.

그날 나는 제일병원 조산집중관리실에 누워있었다. 원래 출산 예정일은 10월 중순이었는데, 

6월 중순 어느 날 새벽, 양수가 터졌다. 큰 아이도 제일병원(당시는 삼성제일병원)에서 출산했고, 

마포구에서 살던 때라 같은 제일 병원을 다니고 있었다. 큰일이 났다 싶어 새벽에 짐을 싸 

제일병원 응급실로 달려갔다.  

나를 살핀 의사는 바로 폐성숙주사부터 놓더니, 빨리 입원 절차를 밟으란다.   

그리고 단 하루라도 아이는 엄마 뱃속에 있어야 한다며 무조건 누워서 버티라고 했다.  

그날부터 진통이 진행되는 걸 막는 주사를 24시간 맞으며 누워있었다.  

안타깝게도 출산의 과정 중 이런 상황도 생길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너무 무서웠다.

그렇게 한 달을 누워 매일 새벽 염증 수치를 확인하는 채혈을 하고, 욕창 검사도 받고, 

일주일에 백만 원이 넘는 병원비를 지불하며 한 달을 버텼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다. 출산장려정책이 많이 시행되고 있으니, 비용 면에서는 상황이 좀 나아졌으려나?)


그렇게 한 달이 지나 운명의 그날이 찾아왔다. 바로 7월 26일.

점심밥을 먹은 후, 왠지 몸이 좀 이상했다. 불안한 마음에 저녁밥은 아예 누워서 먹었다. 

그리고 남편에게 연락이 왔는데, 지금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오늘은 병원에 들르지 않고 그냥 집으로 가겠다는 거다. 서운했지만 그러라고 하고는 불안한 마음을 추스르며 침대에 누워있는데, 갑자기 커튼 밖 상황이 

어수선해지는 걸 느꼈다. 그리고 잠시 후, 내 병상 커튼이 활짝 열렸다. 

날 돌보던 의료진 중 한 명이 나에게 전한 말은 이런 내용이었다.  


 산모님에게 지금 진통이 왔는데, 현재 우리 제일병원 신생아실에 인공호흡기가 두 개뿐이고, 

 그 두 개를 쌍둥이 조산아가 사용하고 있으니, 산모님이 출산을 할 경우,

 아이에게 인공호흡기를 사용할 수 없고, 그럼 아기가 생존할 수 없다.

 그래서 지금 당장 산모님은 다른 병원에 가서 대기를 해야 한다.

 다음 날까지 더 진통이 진행되지 않으면 다시 병원으로 돌아올 수 있다.  


허리 아래로 진통이 계속 진행되고 있었고, 나는 이미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걸 느꼈다. 

급한 짐을 꾸리고, 남편에게 연락을 했는데, 집에 가는 길이고 도로에 차가 꽉 막혀 

당장 병원에 올 수는 없다고 했다. 잠시 후 구급대원이 도착했고, 나는 좁은 간이침대로 

옮겨졌다. 산처럼 부푼 배를 감싸 안았다. 좁은 간이침대에 누워 병원 복도를 지나고, 

건물 앞에서 구급차로 옮겨지는데 눈앞에 시커먼 하늘에서 비가 펑펑 쏟아지는 거다.

그 비를 온몸으로 맞으며 구급차에 올랐다. 그리고 도착한 곳이 바로 서울 백병원이었다. 


몇 명의 의료진들이 문 앞에 이미 마중을 나와 있었고, 날 인계받자마자 급히 어디론가로 데려갔다.

그리고, 검진을 하더니 대기는 무슨 대기냐며 아주 긴박하게 당장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금식 상태가 아니지만, 어쩔 수 없다고 했다. 당장 수술이라는 결정이 내려지자

갑자기 몇 명의 의료진이 나에게로 다가와 처치를 시작했다. 그토록 빠르고 절도 있는 손놀림은 

처음 경험했다. 모든 처치가 끝나자 바로 우르르...  빠른 속도로 내 침대가 수술방을 향해 미끄러지듯 들어갔다. 뱃속의 아기가 잘 버텨주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두렵고 불안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내 몸이 수술대 위로 옮겨지고 그 순간, 내 머리 위 쪽에서 호흡기를 채우던 어떤 의료진에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주 천천히... 


"지금부턴 안전하실 겁니다. 여긴 병원이니까요."


내가 그의 말과 속도, 그 느낌을 기억하고 있다는 게 신기하다.

그땐 남편이 서울백병원에 도착해 대기를 하고 있었고, 의료진으로부터 엄청나게 무서운 설명을 길고, 

상세하게 들었다고 했다. 이후 상황은 남편에게 들었다. 병원 복도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어떤 문이 활짝 열리더니 의료진 한 명이 뛰어나와 자물쇠로 잠긴 어떤 문을 열자

엘리베이터가 나타났고, 그 엘리베이터에 열쇠를 꽂아 작동시키니 여러 명의 의료진이 둘러싼 

작은 수레가 급히 튀어나오며 그 열린 엘리베이터로 한 번도 멈춤 없이 스르륵 탑승하고

바로 엘리베이터의 문이 쾅 닫혔단다. 진짜 의학드라마 보는 줄 알았다나? 그런데 

그렇게 긴박한 상황 속 그 아기가 바로 우리의 아기. 지금 열 세살이 된 우리 집 막내, 우연이다.  



신생아실 간호사님들 얼굴도 몇 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특히 천둥 번개가 치는 날 운명적으로 나타났다며 우연이를 '필연이'라 부른 선생님,

진짜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같은 표정으로 우연이를 바라봐주신 여러 선생님들...   

무엇보다 서울 백병원 신생아실 선생님들은 우연이와 더 오래 함께 있고 싶어 하는 날 

많이 배려해 주셨던 걸로 기억한다. 분위기가 따듯했다.  

특히 그 당시는 MBC스페셜 '엄마 품의 기적, 캥거루 케어'라는 다큐멘터리가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었다.

비록 조산은 했지만 아직 엄마로서 해줄 수 있는 게 있다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지금은 그냥 1080g, 우리 아이는 1080g으로 태어났어요!라고 쉽게 말하지만

사실 그렇게 태어난 아기를 보면, 엄마 가슴은 그냥 찢어진다. 

캥거루케어를 해주고 싶지만 쉽게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병원의 배려가 필요했다.  

다행히 이런 내 마음에 공감을 해주시며 할 수 있게 공간도 만들어주시고, 

시간도 허락해 주신 서울 백병원 신생아 중환자실에 고마운 선생님들...

드디어 백일이 지나고, 축하 잔치는 서울 백병원 선생님들과 함께 했다. 

준비한 떡은 가까운 병실의 환자분들과도 나누고, 신생아 중환자실 선생님들과 사진도 함께 찍었다. 


그 사이 우리가 일산으로 이사를 하게 되면서 내가 일산에서 서울 백병원까지 매일 오는 걸 

선생님들이 알게 됐다. 그러자 일산 백병원과 협의를 했고, 우연이의 전원이 결정됐다.  

알고 보니 그건 쉽지 않은 일이라고 한다. 신생아실은 말 그대로 신생아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고

다른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아기가 중간에 들어가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 단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협의가 잘 이루어졌고, 우연이는 산소호흡기를 한 상태로 구급차를 탔다. 

그렇게 일산 백병원에서 또 다른 선생님들과 한 달 넘게 생활을 하다가

그 해 크리스마스, 드디어 우연이는 집에 왔다. 태어난 지 다섯 달 만에.   


이후, 우연이가 꽤 건강해진 다음 서울 백병원 신생아실을 찾아가 선생님들을 뵌 적이 있다.

당시 초등학생이던 언니 우진이도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따듯한 대화를 나눴다.

이후, 신생아실이 없어졌다는 소식도 신생아실 선생님과 나눈 적이 있다. 많이 서운해하셨는데,

결국 서울 백병원이 문을 닫게 되다니... 나 왜 이렇게 섭섭하지?  

뉴스를 통해 들은 서울 백병원의 폐원 이유는 적자누적. 기업이 아니라 병원인데,  

적자가 나더라도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거기 그냥 있으면 안 되나? 그런 생각이 든다. 

그리고 코로나와 같은 팬데믹 상황도 언제든 다시 발생할 수 있지 않나?  의료시설 부족하다, 침상 부족하다, 그런 뉴스 본 지가 얼만 전이다. 생명을 살릴 수 있는 병원을 거기 두는 것, 

그건 일종의 투자는 될 수 없는 건가?      

 

모든 상황이 정리된 후 제일병원의 주치의를 만난 적이 있다.

그는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그때 내가 고위험 산모라 더 멀리 있는 더 큰 병원으로 옮기려고도 생각했단다. 하지만, 그때 날 받아준다고 한 병원이 서울백병원이었는데, 생각할수록 다행이라며 그날 폭우로 인해 도로 상황도 많이 안 좋았는데 만약 서울 백병원에서 받아주지 않았다면 큰일 날 뻔했다고. 정말 다행이라고... 


그날, 위험에 빠진 나와 아기의 생명을 구한 병원은 서울 백병원이다. 

구급차를 타고 빗 속에 도착한 나와 뱃속의 우연이를 병원 입구에서 맞아준 의료진들,

따스한 말로 날 안심시킨 수술방 선생님, 그리고 신생아중환자실에서 오래도록 나의 소중한 아기를 치료하고

돌봐주신 천사 같은 선생님들... ('천사 같은'이라는 수식어를 이렇게 자연스럽게 써본 적, 별로 없다!) 


그곳에 그 병원과 훌륭한 의료진이 없었다면, 지금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서울백병원 신생아실 선생님들과 함께 찍은 백일기념사진 




우연이가 그린 서울백병원. 


*신생아실 선생님 사진을 올리는 게 걱정스럽기도 했지만, 

 당시 너무나 자부심 넘치게 일하시던 선생님들이시기에 

 어쩌면 반가워하실 수도 있을 거 같아 올려봅니다. (그리고 제 브런치가 그렇게 유명하진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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