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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지원 Sep 08. 2020

힙합에 빠진내 딸

일주일 내내 대학생의 여름방학을 비관하며 나를 들볶더니, 

오늘은 같은 대학교에 입학 한 고등학교 친구와 만나 놀기로 했단다. 

어디를 가냐고 물으니 무슨 전시회를 간다는데, 그 전시회는 지난번에도 갔던 거 같고, 

뭔가 좀 말을 더듬고 눈을 마주치지 않는 것이 수상하지만, 일단 집을 나가준다니까 고마워 

얼른 나가라고 했다.


그렇게 밤 11시가 넘어 집으로 돌아온 아이. 

들어오자마자 벗은 옷으로 지 방을 쑥대밭을 만들고 욕실로 들어가길래, 

슬쩍 들어가 가방을 살펴보았다. 하얀 봉투가 있다. 

정체는 멜론 티켓! 요 녀석, 친구네 집으로 티켓을 배달시켰구나. 

그러니까 전시회 간다고 엄마한테 뻥을 치고 친구랑 또 힙합 콘서트를 다녀왔구나! 딱 걸렸다.


고3이 되던 1월인가? 방학 기간 동안에도 학교를 다니며 자율학습을 하던 중이었는데, 

어느 날 아침, 아빠에게 뭔가 속삭이는 폼이 아무래도 이상했다. 

“그 자리에 서!” 그렇게 시작된 취조. 

알고 보니 엄마 몰래 아빠와 작당 모의를 해 박재범의 콘서트 표를 사기로 한 것이다. 

고3이 힙합 콘서트를 가겠다고, 이게 말이 돼? 나는 펄펄 뛰며 절대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결국 모든 계획은 무산이 되고 말았다. 

눈물을 훔치며 학교로 간 우리 아이. 

대학 합격 소식을 접하자마자 제일 먼저 힙합 콘서트 표를 예매하기 시작했다.


“이제 힙콘 가도 되지?"

“그래 가야지... 표가 얼마냐? ”

“9만 원.”


헉! 힙합 콘서트 표가 그렇게 비싼 줄 알았다면 아예 힙합을 못 듣게 했어야 했는데! 

이후 수많은 힙합 콘서트를 다니며 그동안 억압받던 힙합의 열정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전시회를 다녀왔다며 11시에 귀가해서는 배가 고프다며 밥을 줄 수 있냐고 묻는다. 

밥이야 주지! 자, 취조 시작이다. 

저녁에 먹고 남은 가지볶음을 전자레인지에 데워 주었더니 

접시에 가득 담은 밥을 몇 숟가락에 전부 다 먹고는 더 없냐고 한다. 

어디 가서 뭘 했길래 밥도 못 먹고 왔냐고 하니, 또 내 눈을 피한다. 

전철역으로 아이를 데리러 나갔다 온 남편도 내 눈치를 본다. 

엄마는 벌써 가방 뒤져보고 너 힙합 콘서트 간 거 이미 안다. 얼른 실토해! 


결국 아이는 자백을 했다.


힙합 콘서트를 보는 내내 엄마한테 전화가 올까 봐 걱정을 했단다. 

같이 간 친구는 진짜 인기 많은 레퍼가 나오는 공연을 앞두고 엄마의 불호령 전화를 받고 돌아가고 

자기는 혼자 콘서트 끝날 때까지 거기 서. 서. 힙합을 즐겼단다. 

힙합 콘서트를 가면 자신이 진짜 자유인으로 느껴진다나 뭐라나. 

이 콘서트 표는 가격이 저렴하게 35000원인데, 낮에 시작한 공연을 밤까지 릴레이로 진행을 하고, 

놀랍게도 모든 관객이 그걸 서서 본 단다! 

자기는 펜스 앞에 딱 서서 끝까지 보고 돌아왔다며 아직도 그 흥분이 가시지 않는 듯, 

얼굴이 벌겋게 상기됐다. 세상에 아무리 힙합이 좋아도 하루 종일 서서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밥도 굶고, 참 저게 뭐가 되려고 저러나... 

하여간 원 없이 뛰고, 소리 지르고 왔을 테니, 속은 시원하겠다.


며칠 후


내가 그럴 줄 알았다. 지난주 그 대단하신 힙콘(힙합 콘서트)을 다녀온 이후, 큰 병이 나고야 말았다. 

둘째 아이의 여름 감기를 혹독하게 치른 지 얼마나 됐다고 이게 무슨 난리. 

큰 아이 아픈 것보다 이 감기가 둘째에게 옮으면 어쩌나 싶어,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말았다. 


“내가 너 다시는 힙 콘가지 말라고 했지! 엄마 속이고 그렇게 말도 안 되는 공연을 보니 병이 안 나!!

너 동생한테 감기 옮기면 진짜... 방구석에 가만히 있어! 나갈 궁리 말고!!!!”


아픈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는 게 비정해 보이긴 하다. 그래도 어쩌랴! 

저렇게 지 몸도 못 챙기고, 지 시간도 관리 못하고, 저 값진 시간 저렇게 막 쓰고 있는 걸 보니 

대학을 보냈다고 다 끝나는 건 아닌 모양이다! 


3년 내내 공부, 공부만 해라 고민하려고 하면 일단 먼저 공부하고 대학부터 가자! 

그랬던 게 잘 한 건지 모르겠다. 


중학교 때는 영화감독이 되겠다고 했다. 

내가 알고 있는 영화감독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그 꿈을 제발 접으라고 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 아이는 엄청 화를 냈다. 

아는 게 병이라고 내가 잘 몰랐다면, 그냥 하라고 했겠지만, 

그래도 방송 일을 하며 이렇게 저렇게 들을 게 병이라고 그 힘든 길, 

굳이 갈 필요가 있나 싶어 말렸던 거다.


고등학생이 되면서는 내내 방송국 PD가 되고 싶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귀동냥이 얼만가! 전직 방송작가 엄마와 수많은 예능 프로그램을 함께 보며 

나름 나로서는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솔직히 영화감독보다는 방송국 PD가 더 현실성이 있어 보여, 그래 그 꿈을 밀어주마 했었다.

하지만 먼저 대학을 가야지! 일단 공부 공부! 공부를 하자! 

엄마가 본 PD들 대부분 서울대 출신이던데, 서울대를 나와야 PD가 될 수 있는 건가?

딸은 성균관대학교에 합격하고 TV에 가끔 얼굴을 비추는 유명 예능 피디가 성균관대 출신이라며 

마치 당장 PD가 될 거 같은 생각이 드는 모양이다. 


나도 가만히 생각해보니, 서울대 출신이 아닌 PD도 많았던 거 같다. 

서강대 출신이었던 어떤 PD는 새로 들어온 서울대 출신 조연출이 일을 너무 잘하자 

우리 작가들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서울대 출신인데도 일을 잘해서 깜짝 놀랐잖아요!”


서울대를 비하할 생각은 없다! 어쨌든 방송국에는 서울대 출신이 정말 많더라는 거다. 

하긴 똑똑하니까 언론 고시라 불리는 시험을 통과해 방송국에 들어왔겠지! 

지금부터 머리를 싸매고 준비를 해도 될까 말 까인데, 

저렇게 힙합 콘서트에 온몸을 던지고 있는 저 아이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대학 입학 후, 3월 인가 4월인가 하여튼 ‘고시 설명회’라는 것을 학교에서 한다길래, 가본 적이 있다.

중학교 고등학교 때는 학부모라는 이름으로 학교를 방문하는 일이 종종 있지만, 

대학교에는 학부모라는 개념이 없는 거 같다. 

나로서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대학교를 보냈는데, 가 볼 일이 없어 서운하던 차 

공식 학부모 행사라니 얼씨구나 좋다! 초등학생 둘째 아이 손을 꼭 잡고 학교를 방문했다. 

물론 딸을 만나도 절대 아는 척하지 않기로 약속하고 출발했다.


언론 고시 관련 강사분은 유명 언론사에서 근무했던 특종 기자였는데, 그분 마지막 말이,


여기 오신 학부모님들, 아이들 생활이나 모든 것들 세세히 간섭을 하며 키우신 분들이라는 거 아는데,

대학을 보내고도 그러면 안 된다고 이제는 자기들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서 해야 한다는 거다. 


여기까지 불러놓고, 이제 손 떼라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하지만 정말 고개가 끄덕여지는 순간이었다.


나도 아이 덕분에 힙합을 조금은 듣게 됐지만, 그래도 피어싱, 허세, 문신, 넝마 같은 옷... 

그런 건 아직도 이해를 못하겠다. 그리고 어떤 힙합곡은 이해할 수 없는 것들도 있다. 

어쨌든 그래, 그렇게 온몸을 불사를 만큼 좋은 것이 있다니 다행이다. 


앞으로 이 아이가 어떤 길을 걸어갈지 걱정이 된다. 

대학만 보내면 다 끝날 줄 알았는데, 그냥 일상은 계속되고 나는 또 걱정이 앞선다. 


손 떼야한다. 이제 손 떼야한다. 나는 나에게 주문을 건다.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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