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아만 있으면 성적이 오른다고?
요즘 예능 프로그램 정말 다양하다.
입시와 교육으로 예능을 만들다니! 어쨌거나 남의 집 들여다보는 재미도 있고,
우리는 대학입시가 끝났으니 왠지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힐링이 된다.
우리는 저 숙제 끝났잖아.. 뭐 그런 느낌이랄까...
어제는 교육 관련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어떤 교육 컨설턴트가 이런 말을 한다.
결국은 ‘엉덩이의 힘’이거든요.
그러니까 그게 의자에 오래 앉아 있을 수 있는 힘이 있어야 공부를 잘한다는 이야기.
이때, 함께 TV를 보던 우리 큰 아이, 갑자기 한숨을 쉬며 한마디를 한다.
“엉덩이의 힘? 그게 아니거든. 오래 앉혀두면 계속 책상에서 딴 걸 하는 능력이 생겨서 오래
앉아서 딴 책 읽고, 오래 앉아서 멍 때리고, 오~래 앉아서 공부 안 하는 법을 터득하게
된다니까... 다들 착각 좀 그만해... ”
엉덩이의 힘이 그런 거니? 나도 아이 공부를 시킬 때, 아이를 많이 앉혀 둔 건 사실이다.
당장 이 공부를 해놓지 않으면 불안하니까,
당장 이번 시험에서 이 점수 이상 받지 않으면 안 되니까 학원을 보내고,
돌아오면 숙제하라고, 문제집 풀라고 책상에 앉혀두고,
간식 준다며 슬쩍 들어가 감시를 했다.
아이는 늘 짜증이 나 있었고, 나도 그 시절이 너무너무 힘들었다.
초등학교 때는 영어학원 숙제가 컸다.
영어학원 숙제가 너무 많으니까 그걸 해내게 하려고 어쩔 수 없이 우리 가족은 주말에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방에 들어간 아이가 숙제를 끝내고 나오기를 기다리며
거실에 조용히 있었다. 기다려도 나오지 않는 아이. 초등학교 때는 그래도 들어가서 공부하는 것을
볼 수라도 있었지만, 중학생이 되자 자연스럽게 방문이 닫혔다.
그러니까 우리 아이 말은 그때 자기는 영어 숙제하고 에세이를 쓰기만 한 게 아니라
인터넷 소설도 읽고 멍 때리며 딴짓을 하느라 방에서 나오지 않은 것이다!
중학생 때는 수학이 문제.
천성적으로 수학적이지 못한 우리 아이는 문제집을 푼다고 하면서 문제집 여백에 낙서를 하며
멍을 때렸다. 말을 시작한 둘째는 온 집안을 돌아다니며 언니의 공부를 방해하고.
결국 짜증이 폭발한 나는 아빠와 딸을 묶어 동네 도서관 열람실로 보냈다.
아빠는 판타지 소설을 다운로드한 탭과 함께 함께 주말 내내 도서관 열람실에서 보초를 섰다.
사람 하나를 감시하면서 공부를 시킨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래도 남편은 늦둥이 육아에 정신이 반쯤 나간 와이프하고 집에 있는 것보다는 좋아했던 거 같다.
하여간 나는 그 시간을 이렇게 합리화했다.
그래도 우리 아이는 엉덩이의 힘이 있어서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는. 있다고!
하지만 우리 아이는 그 시간만 생각하면 숨이 턱 막히며 짜증이 밀려온단다.
다시 생각해도 끔찍하단다.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서 공부만 해야 하는데, 하기는 싫고 집중도
안 되고,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리는데, 시간은 안 가고, 문제집을 다 풀면 놀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또 다른 문제집들과 학원 숙제가 줄을 서 있다는 거. 그게 너무 짜증이 나더라는 것이다.
공부라는 것이 원래 그렇게 고통스럽게 할 수밖에 없는 것인가.
차라리 잠깐 쉬고 편안하게 했으면 좋았을 거란다.
특히 초등학교 때는 제발 그러지 말라고 한다.
지금도 그때 얘기를 하면 짜증이 밀려오는 듯 얼굴이 안 좋다.
내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지나고 보니 초등학교에서 배우는 것들 조금만 시간 내면
금방 정리할 수 있는 정도의 학습량이었는데, 괜히 엉덩이 힘 논하며
오래 앉혀두고 진을 빼는 공부를 시킨 거 같다.
책상에 앉아서 계속 멈추지 않고 공부를 할 수 있는 아이는 세상에 없다.
딴짓하는 방법, 멍 때리는 방법도 진화시켜 나간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그러니까 엉덩이의 힘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엉덩이의 힘을 강조하며 아이를 의자에 앉혀두는 동안 아이들은 엄마가 밉고,
공부가 싫고, 마음속에 알 수 없는 분노를 만들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다 정작 공부를 진짜 많이 해야 할 때, 그때 나 안 할래! 하고 나가떨어지면 진짜 큰일이 아닌가!
중요한 건 마음이다. 마음이 공부를 하게 해야 한다는 거... 나는 그걸 몰랐다.
그냥 인정해 줬으면 어땠을까 싶다.
우리 아이, 엉덩이 힘이 있네! 하며 자랑스러워했던 거,
딴짓할 때, 멍 때릴 때, 혼내고 다그친 거, 그게 많이 후회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