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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지원 Sep 08. 2020

수험생 엄마는 마음이 지옥입니다.

차라리 산책을 할 껄 그랬다.


딸과 코스트코에 장을 보러 간다. 

그냥 먹을 거 사러 창고형 대형 할인마트에 가는 건데, 

왜 이렇게 감격스러운지 모르겠다.  


“너랑 나랑 이렇게 시간에 안 쫓기고 지낼 수 있는 게 참 감사하다. 그렇지?”

"응. 뭘 해도 그냥 불안하고 시간 아깝고, 외식을 해도 결국 다 먹으면 

결국은 독서실 가야 하니까 마음이 답답해지고 그랬었는데..."


"너 독서실 데려다줄 때, 진짜 마음이 힘들었어. 공부가 될 리 없어 보이는데,

그렇다고 다른 걸 하라고 할 수도 없고. 불안하니까 그냥 독서실에 데려다줬지... "


그래도 중간고사, 기말고사 그런 시험을 마치고 나면, 우리는 둘이 근처 몰로 쇼핑을 하러 갔었다. 

다양한 스파 브랜드 옷 가게가 즐비한 그곳으로. 

우리는 눈이 시뻘게져서는 초조하게 무슨 대단한 걸 고르듯 발걸음을 재촉하며 

이 옷, 저 옷 입어보다가 서로 얼굴을 보며 허탈하게 이런 말을 했다.


"이거 입고 갈 데가 있을까?" 


제 때 대학에 간다는 보장도 없고, 대학을 못 가면 재수를 해야 하는데,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르겠고, 그럼 몇 년 후에 이 옷이 무슨 의미가 있나! 

슬쩍 다시 내려놓고 우리는 카페로 가 잠시 수다를 떨었다. 그러다가도 결국은


"불안하다. 우리가 이래도 되나? 공부 먼저 하자.."


2학년 때, 딸아이는 비교과 활동으로 뮤지컬을 했다. 

헤어스프레이라는 작품에서 주인공의 친구로 출연한 것이다. 

그걸 준비하느라 꽤나 많은 시간 연습을 했다. 나는 아이에게 이렇게 좋은 기회가 또 있을까! 

싶었다가도 공부할 시간을 뺏기는 거 같아 불안했다. 아이도 마찬가지였다. 계속 고민했다. 

나 이거... 대학 가는 데 도움될까? 엄마 나 연습 그만두고 그냥 독서실 일찍 갈까? 

그냥 공부 먼저 할까? 그렇게 재밌는 걸 하면서도 늘 불안해하는 아이를 보는 게 힘들었다. 

그렇다고 아이가 공부를 하면 불안감이 사라졌을까? 


아니다. 공부를 하고 있어도 엄마는 불안했다. 그냥 마음이 지옥인 거다.  

 

대학입시 전문가들은 별거 아니라는 표정으로 전략적으로 입시를 준비하라고 한다. 

원하는 학교의 전공을 정하고 그에 맞는 비교과 활동을 하라고 한다. 

그러면서 내신 관리도 철저하게 하라고. 


그런데 지나고 보니 그게 그렇게 한다고 되는 건 아니었다! 

아이들에게도 학부모에게도 3년은 그렇게 긴 시간도 아니다. 

전문가는 세상의 모든 수험생이 그런 철두철미한 전략을 세우고 3년의 시간을 

보내는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내 주변에 상위권, 최상위권 아이들도 

대부분 그런 전략을 갖고 대학에 진학하는 것도 아니었다.  


아기를 낳으면 젖을 주고 기저귀를 갈고 울면 젖을 주고 기저귀를 갈고 하면 됩니다. 

그렇다고 육아가 그렇게 말처럼 되나 말이다. 입시도 마찬가지다. 


어쨌든 전문가의 말은 참고사항이고, 

그걸 내 아이에게 적용하는 건  다른 문제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내신 등급도 모두 다르고, 모의고사 등급도 천차만별인 아이들인 데다 성향도 각각이다. 


시를 앞두고 수많은 정보를 읽고, 강의도 듣고 했지만, 

아이에게 맞는 전략은 세우지 못했다. 불안해하며 결국 마지막에 한번, 

우리 아이 읽고 쓰는 잘하고 내신보다 모의고사 성적 좋으니 논술에 모든 카드를 던지자 였다. 

학교 입시 상담에서도 어떤 과목의 등급을 올려야 한다! 

늘 이런 얘기 뿐이었다. 그러니 결국은 독서실로 갈 수밖에. 


그토록 불안해하며 고민했지만 우리 아이는 

결국 뮤지컬도, 내신도 상관없이 수능시험 점수로 최저 등급을 맞추고 

논술시험 본 다음 대학에 진학했다.  


대학 합격 여부는 정말 모를 일이다. 


다른 엄마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고등학교 3년 내내 상위권을 유지해도 

수능날 한번 망쳐서 재수를 하는 아이도 봤다. 


우리 아이처럼 내신은 중위권이었지만, 수능을 잘 보고 논술로 대학을 가는 경우도 있다. 

결국은 수능날의 컨디션이 중간고사 성적, 비교과 활동보다 훨씬 중요할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달리는 게 중요한 건데... 


중간중간 아이가 모의고사를 망쳤거나 슬럼프에 빠질 때,

필요 없는 갈등을 빚으며 불필요한 시간을 쓴 게 너무 후회스럽다.  


그냥 그럴 땐 잠깐 바람을 쐬고 같이 걸으며 기운을 북돋워주면 됐을 텐데...  

뭐 하나 잘못되면 다 망칠 거 같아 불안해하던 우리의 모습이 후회스럽다. 


어쨌든 이제 궁극적으로 가야 할 도서관도 없다. 

이렇게 코스트코를 아무런 생각 없이 돌아다니는 날이다. 

우리는 선택만 하면 된다. 먹고 싶은 것을. 


아, 그놈의 입시 지옥. 탈출하긴 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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