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생각이 틀릴 수 있습니다.
늦둥이로 낳은 둘째 아이가 너무 귀엽다.
내가 글을 쓸 때면 늘 내 옆에서 책을 읽거나 문제집을 풀며 함께 한다.
내가 종종 우울감에 빠지거나 하면 슬그머니 다가와 나를 안아준다.
통통한 팔이 얼마나 보드라운지 그 팔에 안기면
내 마음의 어둠이 스르르 걷히며 빛이 들어온다. 따듯하다.
문득 큰 아이와도 비슷한 시절을 보냈던 게 생각이 났다.
착한 교회 오빠인 줄 알고 결혼한 남편은 공감능력이 낮은 전형적인 공대 남이었다.
작은 갈등이 큰 부부싸움으로 이어졌다. 이렇게 계속 같이 살 수 있나! 힘들고 괴로웠다.
그때마다 내 옆에 있어준 아이가 큰 아이였다.
일과 살림을 병행하며 힘들었던 순간마다 "엄마 괜찮아"하며 나를 안아주었다.
해가 다 진 컴컴한 초등학교 운동장을 달려 병설유치원에 도착했을 때,
혼자 남은 우리 아이가 나를 반기며 뛰어나왔다.
그때 그 아이를 업고 운동장을 나오며 펑펑 울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내가 갑자기 회사에서 정리 해고되었을 때도 나를 꼭 안아주었다.
"엄마, 괜찮아! 엄마 사랑해!"
단체 카톡방에서 왠지 모를 외로움을 느낀 날에도 나를 위로하며 종알 종알
엄마는 대단해! 엄마는 대단해! 괜찮아 괜찮아! 하며 내 옆을 지켜주었다... 그랬었다.
딸이 중학생이 되면서 사춘기가 오고 나는 늦둥이 육아 우울증에 짜증이 늘고
우리는 그렇게 점점 갈등이 잦아졌다.
중학교 때는 고등학교를 잘 가야 대학을 갈 수 있다며 공부 공부!
고등학교 때는 대학을 진짜 가야 하니 공부 공부!
그렇게 고3이 되자 아이의 인내심이 한계에 다 달았던 모양이다.
그뿐인가! 학교에 가면 내신등급으로 평가를 받는다.
선생님은 대놓고 내신이 상위권인 아이들을 먼저 불러 상담을 진행한다고 한다.
열심히 해도 성적은 1도 오르지 않는다.
자신보다 성적이 좋은 아이들이 무섭게 느껴진다. 기가 죽는다.
고3이 되자 자신이 받은 내신 등급이 도저히 인정이 안된다.
이럴 바엔 차라리 그냥 가까운 신설 일반고에 갔어야 했나?
좀 더 열심히 공부할걸...
뮤지컬 같은 비교과 활동 따위 아예 시작도 하지 말걸, 모의고사 끝나고 놀지 말걸,
한 달에 두세 번 낀 렌즈도, 화장도 하지 말걸... 후회가 밀려온다.
끊임없이 불안해하며 하루를 버티고 또 버티던 시간. 그게 바로 고3의 시간이었다.
"엄마, 교실에서 공부가 제일 잘되는 자리가 어딘지 알아?"
"구석?"
"아니.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는 아이 옆이지."
아! 그런 마음이구나. 그게 바로 상대평가의 폐해구나.
수능이 다가오자 아이의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다.
장난으로 말한 '고삼충' 한마디에도 파르르! 잘될 거야 한마디에도 파르르!
수능이 빨리 끝나면 좋겠다고 했더니, 그게 수험생에게 가장 힘든 말이라며 또 파르르!
그냥 얼굴이 벌겋게 상기돼서는 뭐라도 하나 걸리기만 해봐 하는 표정으로 온 집안을 살얼음판으로 만들었다. 정작 중요한 내신 얘기는 수능이 가까워 오자 아예 입도 뻥긋 못했다. 같은 공간에서 함께 생활하는 가족인데, 늘 밝던 아이가 갑자기 짜증이 펄펄 끓는 표정으로 한마디만 걸려봐 폭발하고 말겠어!
하고 있으니 나도 참는 데 한계가 왔다.
"아무리 고3이라도 그렇지, 고3이면 뭐든 다 괜찮은 거야? "
생각할수록 더 화가 났다. 중학교 때부터 밥 먹듯 지각하고,
영어 학원 셔틀, 한 번을 천천히 나가서 탄 적이 없다.
허구한 날 셔틀 기사님한테 전화하고 젖먹이 둘째를 이불로 둘둘 감아 유모차에 태우고 같이 달렸다.
그렇게 허겁지겁 아이를 보내고 나면, 아! 이 아이는 도대체 왜 이럴까! 하며 가슴을 쾅쾅 쳤던 것까지
전부 다 기억이 나는 거다.
오늘만은 내가 참지 않겠어. 오늘 내가 이 나쁜 버르장머리를 확실한 훈육으로 딱 고쳐서
이 부족한 아이를 제대로 사람을 만들어야 앞으로 사회에 나가도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거라는 생각.
마치 이런 생각을 태어나 처음 한 것 같은 착각에 빠지며 나는 목소리를 더욱 높였다.
그런데, 아이가 끝까지 고집을 꺾지 않는 거다. 이 정도 하면 알았다고 미안하다고, 잘못했다고
앞으로는 그러지 않겠다고 했던 거 같은데, 이상하네. 왜 저러지?
그러더니 갑자기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또박또박 말하는 거다.
"엄마, 나도 나를 어떻게 못해서 이러는 거 안 보여? 엄마도 힘들면 나한테 짜증내고, 문 쾅쾅 닫고,
한숨 쉬고 다 하잖아! 나는 그런 엄마 받아주는데 엄마는 왜 안 그러는데! 나도 내가 잘못하고 있는 거 알거든. 꼭 오늘 밤에 끝장을 봐야 해! 당장 뿌리를 다 뽑고 싶어? 좀 기다려주면 안 돼? 행동 하나하나 다 버릇없다고 지적하면 내가 그거 고치고 싶은 거 같아? 내 맘 풀릴 거 같아!!!"
그러더니 엉엉 울기 시작하는 거다.
나는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이 말 틀린 게 없다.
나도 육아 우울증으로 아이에게 신경질 내고 짜증 낸 게 한두 번 인가. 그럴 때마다 아이가 나를 위로해주고
괜찮다고 말해주었는데, 나는 이 상황에 아이를 강력한 훈육으로 가르치려 한 것이다. 너무 부끄러웠다.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
우여곡절 끝에 딸은 대학에 합격했다.
합격을 하고 보니 그냥 모든 것이 다 순조로웠던 거 같고, 우리의 모든 여정이 아름다웠던 거 같다.
착각이다. 나는 후회한다.
아이와 함께했던 그 시간들이 다시 온다면,
(아!!! 너무 끔찍하다. 아마도 우리 아이가 결사반대할거다)
조급한 마음과 불안을 빼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편안하고 따듯하게 지내고 싶다.
어차피 입시는 한 번의 시험 점수보다 수능날까지 평정심을 갖고 완주하는 것이 중요한 레이스다.
일희일비하며 힘들어했던 시간만 없었다면,
특히 엄마인 내가 불안해 벌벌 떨지 않았다면,
우리 아이도 훨씬 수월하게 입시 여정을 완주할 수 있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