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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지원 Sep 08. 2020

어차피 경단녀?

딸 키우는 엄마들 마음, 다 비슷하다.

하루 종일 밥만 차리는 거 같은 기분이다. 

몰래 힙합 콘서트 다녀와 병이 난 딸아이를 격리시켜둔 지 6일째. 

이제 좀 살만한지 얼굴빛이 돌아오고 있다. 

이른 새벽에 잠이 깨 일어나 화장실을 가는데, 큰 아이 방문 틈으로 빛이 새어 나온다. 


“야! 너 밤새웠어? 또 아프면 어쩌려고!"


밤새 넷플릭스의 바다를 헤엄친 거다. 

그래 그런 것도 해봐야지. 아프지만 않다면 나도 환영이다.


그런데, 아이 눈빛이 왠지... 편안해 보이지 않는다. 

입시를 준비하며 너무 오랫동안 자유를 억압당했던 걸까. 

저렇게 며칠 게으르게 지내다가도 갑자기 눈빛이 불안해지는 아이를 종종 발견한다. 

중요한 건, 아직 진짜 일탈도, 방황도 못해봤다는 거다. 

그저 사소한 게으름일 뿐인데도 죄책감을 느끼며 뭔가 걱정하는 아이를 보면, 

이런 강박에서 벗어나는 자유야말로 진정한 행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 역시 비슷한 강박을 갖고 살아간다. 지속적으로 뭔가 해야 한다, 이뤄야 한다! 

하지만 여성의 삶은 결혼과 출산과 함께 많은 것이 달라진다. 

그 무엇을 할 수 없는 삶이 분명 찾아오는 것이다. 

수시로 나는 경단녀로 살아가야 했고, 경단녀의 삶은 항상 뭔가 결핍된 형태였다. 

아이를 돌보고, 밥을 짓고, 청소를 하고, 빨래를 널고, 개고, 육체노동으로 

어찌 보면 가장 완벽한 하루를 보냈음에도 나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내 인생에 가장 중요한 어떤 일을 지금 하지 못하고 있다고 느꼈다. 

나는 우리 아이가 나처럼 되는 것을 원하지 않지만, 아마 비슷하게 살아가지 않을까?


대학을 졸업하고 또 한 번 운 좋게 직업을 갖게 된다면, 

그 직업으로 20대와 30대 초반을 지내다가 결혼하고 나처럼 경단녀가 된다? 어쩌면...


딸아이를 2000년도에 낳았다. 

그때 나는 MBC ‘TV 속의 TV’라는 옴부즈맨 프로그램의 작가로 일하고 있었다. 

예전에 핑크색 여의도 MBC 본사 건물의 건너편 MBC 프로덕션에 사무실이 있었는데, 

나는 그때 그 일이 너무 재밌었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도 따듯하고 멋졌다. 

사실 나는 결혼 전에는 오랫동안 예능 프로그램에서 일을 해왔는데, 

시청률 경쟁도 너무 치열하고, 코너 개발 아이디어 내기도 힘들고, 

코너 하나 맡으면 그거 유지해나가기 위해 해야 하는 일들이 너무 벅찼다. 

지쳐서 울고 싶을 때 나는 결혼을 했고, 일을 그만두었다. 결혼보다 

어쩌면 방송을 그만두는 게 더 좋았던 거 같기도 하다.


하지만, 막상 결혼을 하고 집에 앉아 있으니 할 일이 없었다. 

작은 신혼집은 치울 것도 별로 없고, 하루 종일 퇴근하는 남편만 기다리며 요리책을 뒤적이는데, 

하루가 왜 이렇게 긴지. 한창 바쁜 남편은 집에 오지도 않고, 나는 짜증만 내고 있었다. 

다시 일을 해야 할 것인가! 고민에 빠졌을 때, 

예전에 같이 일했던 후배가 연결을 해준 프로그램이 TV 속의 TV였다. 

역시 교양 프로그램은 달랐다. 뭔가 지적이면서 편안한 분위기. 

예능에서 힘들게 오래 버텼던 게 참 어리석었네. 그런 마음이 들었다. 


하여간 나는 그때, 이윤철의 옛날 TV라는 코너 담당 작가로 신나게 일했다. 

매주 주제를 정하면 해당 영상을 MBC 자료실에서 대출해와 편집실에서 보면서 

내레이션 원고를 작성하는 것. 그때 담당 PD에게 칭찬을 들었던 주제가 기억나는데,

 '1980년이 바라본 밀레니엄' 이런 거였다.


1980년대는 밀레니엄에 대한 공포감이 있었다. 인구가 폭발한다. 지구가 멸망한다 등등 

세기말적인 공포를 갖고 바라본 밀레니엄에 대한 내용을 오래전 방영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등에서 찾아서 구성했던 것. 옛날 자료를 내 맘대로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고, 

주제를 갖고 길지 않은 원고를 쓰는 일도

나름 수월했다. 하지만 그때 그 좋은 시절은 1년 남짓... 나의 출산으로 막을 내렸다. 

이 코너를 계속하고 싶어 출산 예정 하루 전까지 나는 두 달 치 원고를 써서 사전녹화를 마쳤다. 

발이 공처럼 부어올라도 끝까지 참고, 두 달 산후 휴가를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이다. 

방송작가에게 산후 휴가는 없으니까. 하지만 내 계획은 이뤄지지 못했다. 


아기는 정말 대단했다. 게다가 젖병을 물지 않았다. 직접 모유 수유를 해야 했다. 

편집실에서 자료를 보다가도 젖이 꽉꽉 차오르면 바로 택시를 타고 효창동 집으로 와

수유를 하기도 했다. 젖이 줄줄 흘러 옷이 젖었다. 찬 바람에 옷이 얼기도 했다. 

아이를 돌보는 도우미 할머니께서 이 아이는 너무 울고 보채고 먹지도 않는다며 그만뒀다. 

집은 점점 쑥대밭이 되어가고 남편은 더 이상 일을 하면 차라리 이혼을 하자며 화를 냈다. 

나는 그렇게 처음으로 경단녀가 되었다. 그때, 깨달았다. 이제 예전처럼 살 수 없다는 걸.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몰랐던 삶.


물론 모든 아이가 별난 건 아닐 거다. 

어린이집에 밤낮으로 맡기며 간호사 일을 하는 엄마들도 종종 본다. 

태어나면서 바로 효도를 시작하는 아이를 낳은 거다. 

하지만 그 엄마의 삶 내면에는 어마어마한 혼란과 피로가 존재할 것이다. 

그걸 참아내는 게 모성이고 또 커리어 우먼의 숙명이라고 생각하겠지. 나도 그랬으니까.


딸을 가진 엄마들, 각종 모임에서 입시, 공부, 학원 이야기를 하다가 결국 이런 말을 한다.


“힘들게 공부시켜 뭐해요, 결국 우리처럼 '이러고' 있을 텐데.”


맞다. 다들 대단한 엄마들이다. 그만둔 과거의 직업들도 굉장하다. 

그런데, '이러고' 있는다면서 자세히 들여다보면, 바리스타 자격증, 사회복지사 자격증, 

도전을 멈추지 않는 열혈엄마들이다. 나 역시 '한우리 독서논술 지도사 자격증'을 갖고 있다!


큰 아이 돌 즈음, 나는 다시 일을 시작해 대략 또 십 년 달렸다.

하지만 결국 11년 만에 둘째 아이를 낳고 또 경단녀가 되었다. 아이고야...


어떤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쓰면서' 살려고 애써본다. 

늘 결핍을 느끼며 강박 속에서 몸부림친 긴 세월... 딸아, 그래서 너는 결혼을 할 거냐? 

아이는 낳을 거냐? 이제 겨우 대학을 보냈는데, 생각이 또 많아진다. 김칫국을 마신다!


아이가 며칠 방에서 나오지 않는다. 

우리의 끝없는 수다가 멈추자 아파트 단지 내 분수 물소리가

집 안으로 들어오네. 좋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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