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가 나에게 가장고마워한일
딸을 대학에 합격시키고 찾아온 설 명절,
나는 딸과 둘이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다.
뭐 대단한 것을 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우리는 둘이 그동안 쌓인 많은 감정들을 이야기하며
제주도에 있는 수많은 도로를 달렸다.
해녀가 운영한다는 라면집에서 문어가 들어간 호화 라면도 먹고.
검은 돌 사이에 빽빽하게 꽂힌 무도 경이롭게 바라봤다.
그렇게 둘만의 시간을 보내며 나는 뭔가 딸에게 공치사를 듣고 싶었다.
엄마가 그래도 이런 걸 해줘서 고마웠던 그런 순간, 있었어? 운전도 있고, 도시락도 있고
뭐 그런 거 중에 하나 이야기하지 않을까 했는데, 아이가 얘기 한 건 의외의 것이었다.
고3 시절, 우리 아이는 상위권이 아니었다.
당연히 담임선생님의 살뜰한 보살핌을 받기 힘들었을 거다.
나는 알고 있었다.
학기 시작되고 첫 총회가 열렸다.
교장선생님 말씀과 진학 관련 설명을 들은 후, 각 교실로 흩어져 담임선생님을 만났다.
이상하게 느리고 권위적인 말투가 왠지 올드하게 느껴지는 분이었다.
그래도 나름 열정 넘치는 모습에 다행이다 했다.
모든 순서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어쩌다 보니 복도에서 담임 선생님과
딱 둘이 마주 서게 된 거다. 눈이 마주쳤다.
사실 나는 담임선생님 공포증이 있다.
나도 모르게 소심하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아.. 네.. (고개 갸웃)?”
“저 OO이 엄마..”
“아~.... OO이......... 예쁘죠.”
그러더니 휙 가버리는 거다. 나의 열등감인가!
중학교 때는 모범생 엄마로 어깨 뽕 좀 넣었던 시절도 있었는데,
이번 담임선생님에게 우리 아이는 “예쁘죠.”로 한마디로 기억될 만큼 임팩트가 없구나.
괜히 찔려서는 집에 돌아와 씩씩거렸던 기억이 있다.
이후, 입시상담에서도 별로 우리 아이에게는 큰 관심이 없다는 느낌이었고. 암튼 뭐랄까?
오랫동안 아이를 키우다 보면 이번 담임 선생님은 우리 아이랑도 나랑도 궁합이 안 맞네 하는
선생님이 있는데, 하필이면 고3 담임에게서 그런 느낌을 받았다.
등급이 높고, 캐릭터가 센 아이들만 챙기는 일도 힘드셨겠지.
하여간 존재감 없이 가끔은 화풀이 대상으로 그렇게 1년을 지내 온 거 같았다.
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아이의 자존심을 지켜줬다.
성의라고는 1도 찾아볼 수 없었던 입시상담이 끝나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나는 선생님에게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이상하게 들리시겠지만, 우리 아이를 제가 쭉 키워오면서 항상 느꼈던 건데,
항상 운이 좋았거든요, 선생님 나중에 깜짝 놀라실 겁니다.”
그래도 내가 설명회 다닌 짬밥이 얼만데,
고삼 담임이라면서 나만큼도 모르는 거 같고,
눈빛을 보니 우리 아이에게 기대하는 게 전혀 없는 거 같았다.
선생님의 조언은 무시하고 에라 모르겠다.
아이와 상의해 주어진 6개의 카드를 모두 논술에 던졌다.
무리수라는 걸 알았지만, 그냥 그렇게 했다.
모의고사 성적은 내신에 비해 월등히 좋았고,
어려서부터 읽고 쓰는 데는 타고난 아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운도 늘 좋은 아이니까.
“다른 건 모르겠는데, 담임 쌤 같이 미워해준 거, 그거 고마워...”
우리는 2018년 12월 13일, 대학 합격을 확인했다. 최초 합격이었다.
왠지 복수한 기분. 우리가 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