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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지원 Sep 08. 2020

펑펑 울어버린 그 등굣길

고3 엄마들...아마도 대부분 그러지 않았을까?

오늘은 딸이 자기가 졸업한 고등학교에 가서 후배들의 자율학습을 감독하는 봉사를 한다고 한다.

그렇구나. 고3이라는 종족은 이 지구 상에서 끝없이 생산되며 사라지지 않는다.  


딸도 고삼 때 대학생이 되어 이렇게 봉사하러 오는 선배들을 부러워하며 바라봤었다고 한다. 

자신도 그렇게 되고 싶다고 간절히 바랬는데 정말 그런 봉사를 하러 가는 날이니, 

얼마나 기대가 컸을까! 

아침 일찍 일어나 멋진 대학생의 모습으로 변신해 졸업한 학교로 갔다!라고 쓰고 싶지만, 

우리 딸은 그렇게 야무진 데가 없다. 

지 고삼 시절과 똑같이 늦게 일어나 괜히 느리게 움직이고, 

하여간 마음 급한 나만 빨리해라! 빨리해라! 잔소리 폭탄 투하. 

10분이나 늦게 학교에 도착하면서도 같이 봉사를 하러 오는 친구들도 다 지금 도착했다며 

여유 만만이다.


담임 선생님도 만나고, 함께 대학에 간 친구들도 만나고, 긴 시간은 아니지만, 

아마도 우리 딸 입장에서는 자신의 대학 합격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를 

뼈저리게 확인하게 될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고등학교 3년 내내 아침마다 아이를 태우고 학교를 향해 운전을 했다. 

하지만, 오늘은 대학생이 된 딸을 태우고 학교에 간다. 

마음에 폭죽이 터진다. 고등학교 3년 내내 달린 이 도로. 아침, 등교, 저녁 하교. 

많은 시간을 차에서 아이와 함께 했다. 

아침 등교 땐 빨리 일어나 준비하면 안 되겠냐고 

잔소리 몇 마디.. 하지만 고등학생 등굣길에 잔소리는 할 게 아니다. 

내 말 때문에 공부에 집중 못 하면 어쩌나, 조심 또 조심. 

야간 자율학습을 끝내고 집으로 데려올 때는 하루 종일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모르니 

더욱 눈치를 볼 수밖에... 친구들 한마디에 상처를 받았나, 

선생님한테 무시를 당했나, 걱정을 했다.


고3, 6월 모의고사를 끝내고였던 거 같다. 

등굣길에 딸아이가 사회탐구 선택 과목 하나를 다른 것으로 바꿨다고 나에게 통보를 했다. 


“나 사탐 바꿨어. 법정으로”

“뭐...라고? 그게 말이 돼? 지금?”

“도저히 윤사(윤리와 사상)는 공부를 못하겠어.

제2외국어도 베트남어로 바꿨어 벌써 하고 있어.”

“... 아랍어... 하는 거 아니었어? ”

"아랍어 도저히 못해... 안돼."


어차피 내신으로 갈 수 있는 대학은 맘에 들 리 없으니 논술 아니면 정시인데, 

그건 수능 성적이 우수해야 한다. 특히 논술, 수능 최저를 맞추려면 사회탐구의 등급이 

거의 주요 과목 등급만큼 중요해지는데, 지금 고3이 6월 모의고사를 마치고 갑자기 

사회탐구 선택을 바꾸겠다니.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한단 말인가! 


하늘이 무너지는 거 같았다.


전략을 잘 짜서 준비를 해도 될까 말까 한 상황에서 

갑자기 모든 판을 엎겠다는 딸아이를 보며, 

혼을 낼 수도 없고, 3년 동안 사회탐구 과목 정하는 것조차 제대로 못한 

이 어리석은 아이를 그냥 교문 앞에 내려 줄 수밖에 없었다. 


아이가 내리자 눈물이 쏟아진다. 


전문가들은 6월 모의고사 점수가 수능에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점수일 가능성이 높다는데... 

아, 힘들었지만, 그래도 나름 조심조심 열심히 여기까지 잘 왔다고 생각했는데, 잘못된 생각이었나? 

국 다 망한 건가! 아랫입술을 깨물자 눈물이 폭발한다

나도 모르게 오디오 버튼을 눌렀다. 


Chuck Mangione의

‘Children of Sanchez Overture’.


without dream~으로 시작되는 이 비장한 노래는 어느 날 라디오에서 듣고, 

울고 싶을 때마다 찾아들었는데. 휴대폰과 블루투스 오디오로 연결되어 

마침 딱 이 노래가 시작된 거다. 


마음이 그냥 무너져 내린다. 그렇게 한동안 눈물을 쏟았다. 

간절히 바라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는 그런 상황. 

그날 그렇게 무너지면서, 

어떻게든 잘 되게 할 거야! 했던 나의 마음이 어떻게든 되겠지!로 바뀌었다.



학교에 도착하니, 역시나 교문 앞에 차들이 많다. 

아이를 내려준 엄마들 나처럼 깊은 한숨을 내쉬겠지.

기도를 하겠지. 어쩌면 나처럼 울기도 하겠지. 그 마음이 얼마나 힘들까. 

하지만 그 힘든 시간 지나고 보니, 그건 그냥 둘이 함께 견디는 시간이다. 

합격은 견딘 값이다. 터널 끝에 우리가 견딘 시간을 측정하는 누군가 앉아 있고, 

그 시간 값에 운이 더해져 합격, 불합격이 결정된다. 

아이가 대학에 합격하고 나서 많이 했던 생각이다.


교문 앞에서 차 뒷문을 열고, 남자아이가 하나 내린다.  

나는 그 차 뒤에 서 있다. 딸이 급히 내린다.

교복과 체육복을 입은 재학생들 사이에 플리스와 체육복 바지를 벗고 

어른처럼 차려입은 아이가 왠지 낯설다.


지금 어디선가 울고 있을 고3 엄마들을 응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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