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고냐 아니냐. 그것이 문제로다!
우리 아이의 입시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시작된 느낌이 든다.
중학생 때는 화장, 치마 길이, 욕 이런 것들이 아이들의 계급을 결정하는 기준이 된다. 우리 아이의 계급은 아래쪽이었다.매력 없는 모범생으로 중학교를 다니는 것은 생각보다 힘든 일이었다.이런 상태로 근처 일반고에 진학한다는 것은 중학교의 연장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영어점수가 부족해서 외고는 아예 포기를 하고, 차로 10분 거리에 자립형 공립 고등학교가 있어서 그 학교를 목표로 모든 중간, 기말시험에 사활을 걸고 임했다. 그렇게 입시가 시작됐다.
중학교 성적이 상위권인 아이들만 모이니, 학교 분위기도 수업 분위기도 좋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물론 내신 중심의 대학입시정책을 생각하면, 상위권 아이들과의 치열한 내신 경쟁이 도움 될 리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학교를 희망했던 건, 학습 분위기 때문이다. 다행히 내신이 중요한 수시 중심의 입시정책 덕분에 그해 그 학교는 미달이 났다. 생각보다 쉽게 그 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지만,
이후, 3년은 정말 지독하게 고통스러운 시간이 되고야 말았다.
J 엄마의 고민
J 엄마는 본인이 특목고 출신이며 아이들에게 직접 엄마표 영어를 가르친다. 예전에 영어 사교육 현장에서 가르치는 일도 했단다. 매우 적극적인 엄마다. 매일매일 적은 엄마표 영어 일지까지 보여준다.
유튜브, TV 등 유해한 영상에 아이들을 노출시키지 않는다고 말한다. 거실 테이블에는 ‘샬롯의 거미줄’ 원서가 딱 놓여있다. 대학 간 우리 아이도 읽기 힘든 그런 책이다. 온갖 종류의 농기구 관련 단어를 찾다가 포기했단다. 하여간 이 대단한 엄마의 고민은 자신의 아이들을 특목고를 진학시켜야 하나? 말아야 하나? 중학생을 자녀로 둔 엄마라면 누구나 하는 고민일 것이다.
내가 보기엔 그 집 두 딸아이는 이미 엄청난 모범생에 공부도 잘하는 거 같지만, 엄마 눈에는 아직 부족하다. 특히 특목고에 진학할 경우 이 정도로는 부족할 거라는 것. 벌써 대학 입시 설명회를 다니며 강의가 끝나고 나면 강사를 따로 찾아가 질문을 던진다. 이 엄마의 고민은 최근 많은 특목고들이 사라지고 있지만, 일단은 고민을 한다. 전부다 사라지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학생부 종합 전형 중심의 대입 정책으로 보면 일반고 진학하는 게 맞는데, 거기서는 공부를 할 수 있는 분위기도 잡혀있지 않고, 학습에 관심이 없는 다수의 아이들에게 자신의 아이가 나쁜 영향을 받을까 봐 걱정이다. 대입설명회 강사는 특목고 진학 시 4등급 이하를 받으면 서울에 있는 대학 진학은 어렵다며 일반고에서 진로를 빨리 정해서 열심히 하는 편이 유리하다고 했고, 지인 중 남편이 멘사 출신인 다른 엄마는 그래도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을 통해 자극을 받으면서 해야 계속 발전을 할 수 있다며 특목고 진학을 권했다고 한다.
내가 보기엔 이 엄마는 확실히 자신의 아이를 특목고에 진학시키고 싶다. 그런데, 아이가 가서 공부를 못할까 봐 상위권이 못될까 봐 걱정인 것이다. 그리고 입시 전문가의 조언도 귓가에 맴돈다. 입시 제도를 생각하면 일반고에서 좋은 내신을 받는 편이 나을 것도 같으니까. 어딜 선택해서 아이를 공부를 시켜야 할까! 이것이 바로 J 엄마의 고민.
K 엄마의 고민
두 아이가 모두 선행 학습을 잘 따라주고 있다. 현재는 둘 다 초등학생인데, 6학년 첫째는 이미 중등 과학 과정을, 2학년 둘째는 6학년 수학을 배우고 있다. 특히 첫째 아이는 예체능 쪽으로도 발군을 실력을 발휘 중이라 아예 예술중학교 진학을 생각하는데, 공부도 잘해서 그야말로 성적이 아까운 상황. 수학 관련 학원에서 실시하는 설명회에 참석해 영재 관련 교육기관 진학에 대해도 알아보는 중이다. 양질을 교육을 통해 아이들의 미래를 탄탄하게 준비해 주고 싶은 마음이 보인다. 어떤 교육이 좋을까? 특목고 진학보다 영재고 쪽으로 더 관심이 있어 보인다. 엘리베이터에서 이 엄마를 만나면 늘 숨 가쁘게 뛰고 있는 느낌이었다. 두 아이들 학원 등 하원을 직접 하고 있는 것. 한두 가지가 아닐 텐데, 얼마나 바쁘게 지내고 있을지... 가끔 입술이 터져 있고, 세상 피곤한 얼굴인데도 늘 미소를 잊지 않는다. 아이들의 얼굴도 밝다. 게다가 늘 세련된 손톱으로 증명된 자기관리까지!
이렇게 훌륭한 엄마들과 차를 마시다니, 정말 좋은 기회다 싶어 귀를 쫑긋 세우고 이야기를 들었다.
이 대화, 진짜 녹음을 했어야 했는데... !!! 초등학생 아이를 둔 엄마들이 벌써 입시 고민을 한다?
물론 전부라고는 할 수 없지만 내가 만난 많은 엄마들은 이런 비슷한 고민을 말한다.
중학교 때 공부를 얼마나 잘해야 자립형 공립고에 갈 수 있어요?
내신 따기 어렵다는데, 어땠어요?
일반고가 오히려 대학가긴 편하다는데 어때요?
외고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대학은 어떤 전형으로 갔어요?
요즘 우리 동네 엄마들이 나에게 많이 하는 질문이다. 아예 이사를 해서 강남으로 가고 싶다고도 한다. 하지만, 그게 쉬운 일은 아니니 결국은 아이가 입학할 고등학교는 네 가지 정도의 유형의 구분이 될 것이다. 최상위권 아이들을 위한 과학고, 영재고. 상위권 아이들이 가는 특목고, 자립형 공립고, 그리고 학원가를 끼고 있는 근처에 전통 있다고 소문난 대학을 많이 보내기로 유명한 일반고, 그리고 신설 일반고. 서열을 매기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사실이다.
과학고, 영재고에 대해서는 나는 잘 알지 못한다. 초등학교 때 고등수학 선행을 한다는 정도 알고 있다. 자립형 공립 고등학교를 진학하려면 중등과정에서 최종적으로 받게 되는 200점 만점에서 194이상의 점수를 받아야 합격을 할 수가 있다. 그런 아이들이 모여있으니 치열한 내신경쟁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냥 일반고의 경우 비교적 내신을 따기 쉽다고 하는데, 또 잘하는 아이들이 전략적으로 입학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최상위권에서 공부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래도 내신 따기는 수월할 것이다. 대학을 잘 보내기로 유명한 일반고는 학원가를 잘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모든 아이들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고, 상위 몇%만 특별히 관리하면서 전략적으로 입시를 진행하기 때문에 거기서 하위권에 들어가게 되면, 아무래도 아이의 자존감도 낮아지고, 그나마 내신 따기 쉬운 신설 일반고가 더 나은 선택일 수 있었다는 자괴감에 고등학교 3년을 후회하면서 보낼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나도 중학교 때 이런 고민을 많이 했었고, 이 지역(일산)으로 이사를 와서 중3이 되고, 갈등이 시작됐다. 아이가 중학교 때는 성적이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근처 자립형 공립 고등학교에 입학하기엔 부족한 점수였다. 딸의 의지가 분명했기에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고, 운도 따라줘서 (그 해는 미달이 됨) 입학을 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대학에 합격을 했기 때문에 좋은 선택이었지만, 과정을 생각하면
아이고. 너무 힘들었다. 모의고사에서 1등급을 받아도, 반 석차는 뒤에서 일곱번째였다. 그런 치열한 경쟁을 3년 내내 하면서, 나는 계속 갈등했었다. 이게 정말 좋은 선택이었나?
좋은 점도 있긴 했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이 보는 교제나, 공부 방식을 옆에서 보고 따라 하게 되는 상황이 그랬고, 야간, 주말 자율학습 시스템이 잘 갖춰져서 자기 공부에 익숙해지게 된 것도 좋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고3이 되었을 때, 8월부터 수능 당일까지, 학습 분위기가 흐트러지지 않았다는 거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정시를 준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내신으로 갈 학교는 성에 차지 않는다.
그렇게 수능 바로 전날까지 야간자율학습을 하면서 수능 시험 시간표대로 공부를 했다. 그렇게 철저한 준비를 통해 정시 준비에 올인 할 수 있었던 것이 어쩌면 합격의 발판이 되었던 건 아닐까...
나는 이 이야기를 이렇게 자세히 하지는 않았다. 나는 알고 있다. 이 엄마들은 지금 거의 완벽하다는 것을. 모두 자신만의 답을 갖고 있다. 물어보는 건 확인하는 과정일 뿐. 무엇이 옳다 그르다, 논쟁할 필요는 없고, 모두에게 적용되는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다. 내 아이가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달린 것일 뿐. 적어도 아이가 선택하지 않았다면 그 치열한 경쟁 속에서 3년, 절대로 버티지 못한다. 입시정책도 바뀌고 있고, 자사고 특목고도 사라지는 추세이니 아직 초등학생인 그녀들의 아이가 중학교를 졸업할 즈음 뭔가 더 구체적인 계획을 세울 수 있게 되겠지. 어쨌든 중요한 것은 아이의 생각이다.
바리스타 자격증까지 취득했다는 J 엄마의 훌륭한 커피와 함께 한 즐거운 수다. 나는 이 엄마들에게서 감동을 받았다. 하지만, 분명한 목표와 의지가 있어 보이는 데도, 왠지 불안한 듯 보인다. 나도 그랬다. 그 불안함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대단한 육아 입시 전문가들이 엄청나게 대단한 충고를 해준다 해도 그 불안감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말해주고 싶다. 그 또한 그냥 과정일 뿐이다. 참고 견디는 시간, 그게 제일 힘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