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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가 없다'에서 발견한 신화적 메타포

공대출신 남편과 함께 본 2회 차 관람리뷰

by 임지원


https://brunch.co.kr/@zlzllzlz/281


음... 딸과 함께 박찬욱감독의 영화 '어쩔 수가 없다'를 본 후 브런치에 리뷰까지 올렸지만, 왠지 그 글이 내 마음에 흡족하지가 않았다. 좀 평범했달까? 이후 이 영화를 다룬 유명 평론가의 유튜브 영상을 보며 그도 대충 비슷한 맥락으로 이 영화를 보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물론 더욱 세밀하게 분석하고 있다. 하지만 뭔가 부족해.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메타포를 찾고 싶다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이 영화를 담을 더 큰 그릇이 있을 거야. 내가 그의 영화 '헤어질 결심'에서 정치적 메타포를 발견하고 스스로 유레카를 외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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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나니 더 이상 스포일러를 당할 염려가 없어졌다. 나는 자유다! 박찬욱 관련 뉴스나 리뷰도 시원하게 볼 수 있고, 딸과 함께 이 영화에 대한 수다를 마음 놓고 떨 수 있어 행복했다. 영화'어쩔 수가 없다'는 제지공장에서 25년 근무하며 올해의 펄프맨 상까지 수상한 만수라는 인물이 갑자기 정리해고를 당하고 다시 재취업을 하기 위해 자신의 경쟁자로 보이는 인물을 찾아 죽여버린다는 스토리다. 개봉날 딸과 함께 보고 이런저런 수다를 떨었다. 하지만 문제가 왠지 모르게 길게 이어지지 않는다는 거다. 솔직히 이 영화는 이전 그의 영화 '헤어질 결심'만큼 모호하지 않다. 우리 실망한 건가? 기대를 너무 많이 한 건가? 딸은 나보다 더 실망한 거 같았다. (딸은 20대, 전공은 국어국문, 영화 헤어질 결심으로 졸업논문까지 쓸 만큼 박찬욱을 좋아한다)


"엄마 그냥... 더 생각할 게 없는 거 같지 않아?"

"... 흠 뭔가가 더 있을 거 같은데..."

"아니 박찬욱이라는 이름이 갖고 있는 사회적 책임이라는 게 있는데... 21세기에 갑자기 가장의 무게를 논하는 건 좀... 그렇지 않아? 물론 아무리 힘들다고 해도 사오십대 가장은 이 사회의 주류인데, 박찬욱은 비주류를 바라봐줘야지. 그래야 박찬욱이지 안 그래? 박찬욱만의 시선이라는 게 있는데 갑자기 유퀴즈에 출연해서 천만 감독되고 싶다고 하시면 나 배신감 느끼지 않겠어?"

"... 그런 면이 있네."


게다가 이 씁쓸한 상황을 고소하다는 듯 바라보는 한 사람이 있다. 바로 남편. 남편은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거의 싫어한다고 봐야 한다. 그가 좋아하는 건 환생해서 재벌이 되는 판타지 소설과 야구, 그리고 드웨인 존스가 나오는 액션 영화들이다. 어쩌면 아내인 내가 박찬욱을 너무 좋아한다는 게 문제였을 수도 있고. (아니라면 어쩔 수 없고) 어떤 질투심, 아니면 반발심 같은 것이 그의 무의식 어딘가에 자리를 잡고 그를 조종하는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그가 이 영화를 보면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해졌다.


"영화 보러 갈래? 생각할수록 이 영화, 진짜 딱 당신 보라고 만든 영화야!"

"싫어 난 써머리로 봐 이런 영화"

"아니... 꼭 그래야 해? 와이프인 내가 그렇게 같이 보고 싶다는데?"

"싫어"


딸도 힘을 보탠다.


"아빠 보면 좋을 거 같아! 줄곳 여성을 바라보던 박찬욱 감독님이 오래간만에 아빠 힘내세요! 하는 영화라고!"

"아니 아니 싫어 싫어."


몇 번의 실랑이가 오간 후, 난 기분이 완전히 나빠졌다.


"알았어. 됐어. 나 이 영화 오빠랑 같이 안 볼 거야. 보자고 해도 절대 절대 안 봐."


싸늘한 뒷모습을 보이며 싱크대로 걸어가 저녁 먹은 설거지를 시작하자 남편의 마음이 움직였다.


"알았어... 절대 안 본다니까 보고 싶네. 지금 가자!"

"... (흥! 아까 보자고 할 때 보면 얼마나 좋아)"


우린 급히 서둘러 영화관에 도착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 앉으니 정신이 하나도 없다. 너무 뛰었다.


"자기 전공 금속공학이잖아, 공대생이 본 '어쩔 수가 없다'는 어떨지 궁금하다고."


대답도 없이 귀찮다는 듯 한숨을 쉬는 남편을 보니 짜증이 올라오지만 한 번 참고, 그의 생각을 듣기 위한 2회 차 영화 관람에 돌입했다. 다시 보니 첫 번째 놓친 장면이 너무 많다. 딸과 함께 보니 무서워서 눈 감고, 무서울까 봐 눈 감고 했던 장면들이 많았다. 그걸 찾는 재미가 쏠쏠했다. 역시 무서운 영화는 남편이랑 봐야 한다. 아! 큰 의미 없는 장면인 줄 알았던 장면마저 역할이 다 있었다. 첫 번째 관람이 10만 화소였다면 두 번째 관람은 100만 화소로 보는 느낌이랄까. 조용필의 노래 '고추잠자리'가 시작되려고 하자 그에게 속삭였다. 지금부터 난리 나니까 각오해. 만수가 전기톱을 손에 들자 난 또 그에게 속삭였다. 난리 나니까 각오 단단히 해. 그런데 이상하다. 그는 너무나 아무런 반응이 없다... 뭐지? 남들 다 웃는데도 웃지도 않고... 역시 질투심 때문인가? 영화가 끝나자마자 난 그의 얼굴부터 살폈다. 어때? 어땠어?? 공대생이 본 공장 스토리 어땠어???


"아... 박찬욱 한물갔네. 이건 문과생이 본 공장 판타지야 너무 올드해."


문과생이 본 공장 판타지? 전혀 예상 못한 남편의 대답이었다. 그런데 왜 마음에 들지? 거부하기 싫지? 생각해 보면 이 영화의 원작 소설은 미국 작가 도널드 E. 웨스트레이크가 쓴 액스(The Axe), 지금으로부터 거의 30년 전인 1996년 출간되었으니 사실 오래된 이야기는 맞다. (물론 나에게 1996년은 얼마 전으로 느껴지지만 흠흠.) 이후 세상은 천지가 개벽하는 수준으로 달라졌다.


"어... 좀.... 신박한데? 좀 더 자세히 말해볼 수 있어??"

"너 방송작가 그렇게 오래 하고 그만둘 때 시원했어 괴로웠어?"

"시원한 것도 있긴 했지, 그래도 섭섭했지..."

"섭섭하다고 사람을 막 죽여? 하여간 문과생들은 공장생활이 얼마나 힘든 지 몰라. 노동에 대한 판타지라고.

나 대학 때 실습한다고 공장 갔다가... 흠 여기까지 하자. 공돌이들은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을 안 해. 그냥 일하고 쉬면 좋고, 놀면 재밌고 그런 거라고. 현실을 전혀 모르고 썼네. 문과생들만 모여서 저런 걸 만드니까... "


예상치 못한 답변에 난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왠지 카운터 펀치를 맞고 링에서 쓰러진 기분이랄까. 피를 철철 흘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딸이 우리를 보자 궁금해 죽겠는 표정으로 달려온다.


"아빠 뭐래? 재밌데??"

"아빠가... 문과생의 공장 판타지래..."

"오~ 아빠 신박한데? "

"그러니까... 엄마 지금 짜증 나"


그냥 노동이 아니라 펄프맨 상을 받은 사람이니까 그럴 수 있지 않냐고도 해보고, 외골수 같은 사람들이라면 그럴 수 있지 않냐고도 해보고... 그럼에도 뭔가 시원하게 그의 논리에 반박을 할 수 없었다. 남편은 한 건 해낸 표정이다. 의기양양하다.


"뭐야, 아빠 힘내세요 영화가 아빠들한테 외면당하면 어떡해??"

"난 좋은데... 예전 박찬욱 영화는 이건 뭐지? 뭔가요?? 헉! 턱 빠지면서 보지만, 이번 어쩔 수가 없다는 그 사이사이에 웃음이 있어! 유머! 그게 큰 차이지! 다시 보니까 더 웃기더라!"

"그래. 웃기긴 했어"


그렇지만 '유머'하나로 어필했다는 것이 또 만족스럽지가 않았다. 뭔가 분명히 더 있을 텐데... 그게 뭘까?




지난 주말 가족 여행을 다녀왔다. 정선 하이원 리조트에 가서 힐링 명상도 하고, 다이내믹 요가도 하고, 수영도 했다. 그리고 근처에 위치한 [고한 시장]에서 맛집 두 개를 발견했는데, 와 진짜.. 놀라움 그 자체였다. 그 식당에서 딱 한 달씩만 일하면서 전수를 받고 싶은 심정이었다. 먼저 [정담 식당]이라는 곳에서 더덕 솥밥을 시켰는데, 거기 반찬으로 나온 김치가 진짜 오리지널 이북 스타일이다. 자작한 빨간 국물에 배추는 하얀 궁극의 시원함이 느껴지는 김치. 돌아가신 나의 할머니를 만난 것 같았다. 할머니의 고향이 함경도라 난 어려서부터 늘 이런 김치를 먹었다. 하지만 한 동안 어딜 가도 볼 수도, 맛볼 수도 없는 유니콘 같은 김치였다. 정선이 강원도라 이북과 맥이 닿아 있는 걸까? 가끔 난 글을 쓰지 말고 할머니의 이북 김치를 배워 사업을 했으면 어땠을까 생각할 때가 있다. 제2의 홍진경이 됐을 지도. 다음으로 간 곳은 화산 식당. 삼겹살을 시켰는데 함께 나온 밑반찬이 정말 환상적이었다. 누가 만드시나 주방 쪽을 바라보니... 허리가 굽은 할머니가 계셨다. 비결은 할머니 손 맛이었다. 허리를 숙이고 주방 이곳저곳을 다니시는 할머니를 뵈니, 또 나의 할머니가 생각이 나 마음이 촉촉해졌다. 빨갛게 무친 오이와 무짠지는 두 번 먹고. 계산하고 나오면서 남은 멸치볶음과 어묵볶음을 싸가지고 갈 수 있냐고 여쭤보니 비닐 두장을 건네신다. 여긴 무조건 다시 온다! 완벽한 포만이라는 행복에 젖어 다시 차를 타고 숙소로 돌아가는데 문득... 운명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둥실 떠올랐다. 그래! 맞다. 어쩔 수가 없다는 건 변명이 아니라 운명인 거다. 시지프의 신화! 시지프는 산꼭대기에 올려놓기 위해 끊임없이 바위를 굴린다. 꼭대기에 올려진 바위는 다시 굴러 떨어진다. 시지프는 다시 그 바위를 산꼭대기를 향해 굴린다. 의미 없는 이 형벌이 의미하는 것은 아마도... 우리 인간이 의미 없는 일상을 반복하는 것을 형벌에 비유한 것이리라. 물론 난 그것에 동조하진 않는다. 두 아이를 낳고 키우며 그 형벌 같은 일상 속에 얼마나 빛나는 보석이 숨겨져 있는지 알게 됐다. 하지만 신화는 또 신화로 멋지게 존재하는 거니까!


"나 생각났어. '어쩔 수가 없다'는 문과생의 노동 판타지가 아니라 신화야. 시지프 신화 있잖아, 바위 굴리고 또 굴리고 굴리는 그 신화. 시지프 맞지? 프로메테우스 아니지??"

"프로메테우스 아니야, 시지프 맞아 엄마"

"어 고마워.

자기야 나도 계속 글을 쓰잖아. 솔직히 계속 떨어지고 떨어지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계속 쓰잖아. 어쩔 수가 없단 말이야. 쓸 수밖에 없는 운명인가 싶어. 그러니까 '어쩔 수가 없다'는 건 변명이 아니라 운명인 거야. 주인공 만수가 재취업을 위해 사람을 죽이는 건 인간이 어떤 목표를 이루기 위해 열정을 쏟는 걸 의미하는 걸 거야, 메타포적으로. 나아가 바로 시지프가 산꼭대기까지 바위를 굴리는 행위와도 같다고 할 수 있어. 하지만 바위가 다시 굴러 떨어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고. 그건 바로 성취를 해도 그 끝에 꼭 행복이 있는 건 아니라는 거야. 열심히 해서 목적을 이루고 성공하면 행복해요! 그건 그냥 자기계발서 논리지. 하지만 박찬욱은 그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거야! 그럼에도 열정을 쏟으며 하루하루 (울컥) 살아가는 인간을 블랙 유머로 위로하는 거지. 솔직히 주인공 만수, 너무너무 끔찍한 짓을 그렇게 많이 하는데 미워할 수 없잖아! 어때? 내 생각??"


"그래... 그렇다 쳐."


물론 그가 확실하게 내 생각에 동조한 거 같진 않다. 이번 영화에 꽤나 실망한 큰 딸의 표정도 그리 탐탁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상관없다. 난 기분이 좋다. 문과생의 노동 판타지라는 그의 주장을 고품격(?) 신화를 모셔 반박하는 데 성공했으니까! 영화 '어쩔 수가 없다'에서 발견한 신화적 메타포. 드디어 머리가 시원해졌다. 박찬욱의 영화를 본 후 나만의 숙제(아무도 강요한 적 없다)를 해결하는 과정이 즐겁다. 헤어질 결심에서 나 혼자 발견한 정치적 메타포에 짜릿함을 느꼈듯 이번에도 또 발견한 나만의 유레카! 물론 아쉬움도 없지 않다. 그의 영화를 조목조목 비판하는 딸의 말에 반박하기가 쉽지 않다. 그도 귀가 있으니 어디선가 그 목소리를 듣게 되겠지. 그래서 난 그의 다음 영화를 또 기다리게 된다. 정선에서 만난 우리 할머니 이북 김치와 어떤 할머니의 손맛, 그리고 웰니스 센터의 요가 수련도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나에게 큰 만족감을 준 건 '운명'이라는 단어가 내 머릿속에 둥실 떠오른 순간이 아닐까.


어디 영험한 연못 같은 데 가서 도끼 말고 주걱이라도 빠트려 볼까? 황금 주걱을 든 신령님이 올라와 이 주걱이 네 주걱이냐? 물으시면 아닙니다! 이번엔 실버 주걱을 든 신령님이 올라와 이 주걱이 네 주걱이냐? 물으시면 아닙니다, 제 주걱은 금도 은도 아닌 실리콘 주걱이에요!! 오~ 정말 착한 주부로구나! 소원을 한 가지 말해보렴. 정말요? 제 소원은 박찬욱 감독님이 제가 쓴 영화 리뷰 세편을 다 읽으시는 겁니다!



감독님 한 번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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