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들의 미래를 응원해!
스물두 살 딸은 코로나 때문에 신나게 다니던 대학까지 휴학 처리하고 자가격리를 시작한 지 1년이 돼 간다.
초등 고학년부터 십 년을 일단 대학부터 가자! 노래를 부르며 아이를 달래고 달래 대학을 보냈다. 진로에 대한 고민은 접어 두었다. 막연하게 할 수 있는 걸 하겠지! 했다. 미팅, 신입생 모임, 발표 준비, 팀플, 이런저런 동아리를 기웃거리며 정신없이 대학생활을 즐길 땐 아무 소리 없더니 집에서 오랜 시간 멍을 때리더니 불쑥 깨달음이 온 모양이다.
"엄마, 나... 대학 졸업하면... 뭐하지?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
이젠 더 미룰 수 없어졌다. 답을 써야 할 시간이 온 것이다. 고민을 한만큼 좋은 답이 나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팬데믹 시대에 청년취업은 시커먼 먹구름이다.
"지금 고민해서 뭐하냐. 팬데믹 때문에 졸업반 선배들도 취업 못해 난리라는데 그냥 넷플릭스나 보자!"
그렇게 우리는 현실도피를 위해 파리행을 택했다. [에밀리 파리에 가다!] 그날 바로 열 편 한 시즌을 끝냈다. (시작하면 절대 멈출 수 없다! 날밤 샌다)
미국 시카고 마케팅 회사에서 일하던 에밀리는 본사가 인수한 파리의 마케팅 회사로 1년 파견 근무를 떠날 기회를 얻게 된다.
그녀에게 파리는 완벽한 판타지다. 낭만과 예술과 사랑이 가득한 도시! 초긍정 에너지로 똘똘 뭉친 사랑스러운 캔디 같은 에밀리를 와락 안아줄 거 같은 꿈의 도시! 하지만 현실은 아니었다! 그들은 프랑스 말을 못 하는 에밀리를 무시하고, 대놓고 왕따하고 그녀의 말투, 옷, 표정, 아이디어까지 다 싫어한다. 마치 프랑스적인 것을 깨부수러 온 아메리칸 솔저를 만난 듯 경. 계. 한. 다. 하지만 에밀리는 끝까지 멈추지 않고 도전하고 또 도전해 가장 미국적인 도구(인스타그램, 아이폰 등)로 파리에서 아메리칸 마케팅 신화를 이룬다! 미국 MZ세대의 승리인가? 어쨌든 브라보! 악을 물리치고 선이 승리하는 이야기라고 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주인공이 뭔가 프랑스적인 것과 싸워 승리를 얻는 느낌은 분명히 있다.
실제로 프랑스 사람들은 [에밀리 파리에 가다] 시리즈를 불편해한다고 한다. 프랑스에 대한 나쁜 클리셰를 모두 담고 있다는 거다. 실제로 어떤 에피소드를 보면 성적 대상화와 예술도 구분 못하는 낮은 젠더의식을 갖고 있다고 꼬집는 듯하다. 프랑스, 너희의 범접할 수 없는 문화와 예술의 경지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을 순 없어. 근데, 솔직히 몇 가지는 좀 이상해~ 하는 것 같다.
나 역시 르누아르나 마티스의 그림이 별로라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지만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납득할 수 없는 어떤 스토리에 상을 주는 프랑스 영화제에는 반대하는 입장이라 약간 에밀리에게 마음이 간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사실 이 싸움은 시작부터 의미가 없다. 파리는 그 정도의 지적질로 훼손될 만한 스케일은 아니라는 거. 쥐가 들끓는 엘리베이터도 없는 황당한 건물이 이렇게 멋지다. 오래된 상점이 있는 골목.
수많은 사람들에게 밟힌 듯 반들반들한 골목길 바닥까지 내 혼을 쏙 빼놓을 만큼 아름다웠다!
아, 그래서 우디 엘런이 '미드 나잇 인 파리'를 만들었구나. 파리의 골목길... 거기 그냥 앉아만 있어도, 걷기만 해도 수백 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환상의 세계가 열릴 거 같았나 보다. 그러니 아름답기로 작정한 곳들은 말해 뭐하랴! 정원, 박물관, 궁전, 공원...!
파리는 편리한 삶을 위해 만들어진 도시는 아니었을지 몰라도 인류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 문화재인가 보다.
차라리 코로나 때문에 아무도 갈 수 없다고 생각하니 왠지 보는 내내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왠지 나만 갈 수 없는 도시였을 텐데 하하하! 마치 랜선 여행을 하듯 딸내미와 파리 여행을 하다 보니
일단 기분이 좋아진다.
혹자는 에밀리가 입은 옷들이 촌스럽다고 난리지만, 패션을 잘 모르는 내 입장에서는 예쁘기만 하다.
에밀리가 자존심 센 프랑스 사람들과 우정을 쌓는 모습이 따듯하고 도전하고 확실하게 성취해나가는 것을 보는 것이 그냥 즐겁다. 그녀의 마케팅 아이디어는 정말 신박하다!
게다가 이런저런 각종 로맨스는 덤이다. 하룻밤 원나잇도 파리에서는 낭만적일 수 있다는 가르침(?)을 준다!
특히 극 중에서 와이너리 소유한 에밀리의 친구 엄마가 보여준 교육철학(그것은 내 예상을 완전히 벗어났다!)이 아주 마음에 든다.
딸아, 에밀리처럼 살아라!
에밀리처럼 초긍정 마인드로 도전해!
에밀리처럼 막 느낌 가는 데로 연애하고!
회사에서 거주비 다 내주는 그런 1년짜리 출장 한번 가야지!
매일매일 예쁘게 차려입고, 여러 사람들과 함께 뭔가를 이루며 보람을 느끼는 그런 삶.
곧 살게 될 거야. 엄마가 응원할게!
알고 있다. 현실의 벽은 생각보다 두터울 거라는 거. 그래도 잠시나마 랜선 파리 여행을 하며
다가 올 미래에 핑크색 페인트 칠을 하고 나니 기분이 좋다. 요즘 같은 팬데믹 시대에 기분 좋아지기가 얼마나 힘든 일이냐 말이다. 딸이 갑자기 부전공으로 경영학을 해야 한단다. 그래 뭐든 해라, 에밀리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