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 'D.P.'를 보다.

엄마들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by 임지원

중년이 되면서 무섭거나 잔혹한 장면이 나오는 영상을 보는 게 힘들어진다.

제목만 봐도 무시무시한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지푸라기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예전 같으면 안 봤을 리 없는 이런 류의 영화들을 이젠 포기하게 된다. 넷플릭스에 들어갈 때마다 인기 1위라며 훈훈한 정해인 배우가 처연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는 거다. 여러 번 마음이 흔들렸지만 그래도 너무 무서운 장면이 나올 거 같아 외면했다. 하지만 며칠 째 신문 칼럼은 'D.P.' 이야기로 도배가 돼 있고, 특히 지난 주말에 배달된 경향신문 토요기획 위근우의 리플레이까지 읽고 나니 볼 수밖에 없었다. 'D.P.'가 '82년 생 김지영'의 남성버전이라는데 어떻게 안 볼 수 있나! 그동안 '82년 생 김지영'으로 떠벌린 내 아픔이 얼만가! 'D.P.'를 안 본다면 나는 직무유기다.


첫 장면부터 충격이었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나. 굳이 저렇게 까지 할 필요가 있나? 아무 맥락 없는 악랄함에 입이 떡 벌어졌다. 충격적인 폭력에 소리를 꽥 지르고, 안타까운 상황에서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얼마나 긴장을 하면서 봤는지 에피소드 한편이 끝날 때마다 큰 한숨이 터져 나왔다. 그런데도 절대로 절대로 보기를 멈출 수는 없었다. 어마어마한 흡인력이었다. 거침없는 필력도 필력이지만 그 어떤 세력이나 자본의 눈치도 보지 않고 진짜 이야기를 하고야 말겠다는 작가의 결기가 느껴졌다. 웹툰이 아니었다면 이 이야기가 세상에 나올 수 있었을까? 국방부 장관이 국회에 나와 'D.P.'는 지금 병영의 현실과 다른 상황일 거라고 말했다. 물론 그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모든 부대가 'D.P.'라는 건 아니지만 이런 부대도 있긴 있다고 거기 말도 안 되게 악랄한 누군가와 우리가 잊지 못하는 피해자가 있었는데 그들이 함께 지내며 일어난 그 사건은 단 몇 분 뉴스 한 꼭지 정도로 전달할 내용이 아니었다고. 거기서 인간이 보여준 악랄함이라는 게 이렇게 어마어마한 것이었다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작품의 시작이 된 윤일병 사망사건은 2014년, 고작 몇 년 전이다. 2014년에 그랬는데, 고작 몇 년이 흘러 그 문제가 다 개선이 됐다는 말을 믿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이후에도 비슷한 일들은 계속되고 있고... 정말 '뭐라도' 해보고 싶었을 작가의 마음이 절절히 다가왔다. 작가 후기를 찾아 읽어보니 그는 독자들에게 불편함을 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불편해도 참고 현실을 직시하자고 말하고 싶었다고 한다. 작가 후기를 읽으며 나는 또 감동을 받는다.



나는 아들이 없지만 내 지인들 중에는 벌써 아들을 군대에 보내기도 했고, 앞으로 군대에 아들을 보낼 계획이 있기도 하다. 어린 시절 그 아들들과 우리 딸들은 함께 여행을 간 적도 있고, 서로의 집에 놀러 가기도 했다. 사돈을 맺자는 둥 농담을 주고받기도 했었다. 아이들이 커가며 점점 학업에 대한 부담이 커지고, 입시 준비로 서로 바빠 한동안 연락을 못하다가도 오랜만의 전화 통화를 하면 꼭 전해 듣는 소식이 바로 그 귀염둥이 꼬마 녀석이 군대에 갔다는 소식이다. 나는 가슴이 오그라들며 "어쩌나! 얼마나 힘들까!"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이 툭 튀어나온다.

오래전부터 종종 아들 군대 보낼 걱정을 나눴던 기억이 있다. 딸만 있는 나는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큰 아이 고등학교 학부모 모임이 오래도록 이어지고 있는데 거기서도 군대에 보낸 아들 이야기를 하며 눈물짓는 엄마를 봤다. 우리는 늘 언제 통일이 될까요! 하며 서로를 위로했다. 머리카락이 늘 땀에 젖어 있고 볼과 팔이 통통하던 그 개구쟁이 녀석이 군대라는 곳에서 그런 고초... 아니 그것과 아주 조금 비슷한 그 무엇을 겪는다고 생각만 해도 울화가 치민다.


삼촌 한 분이 생각난다. 아빠의 형제는 아니고 할아버지끼리 형제여서 내가 삼촌이라 부르는 분이다. 우리 할머니와 그 삼촌의 엄마인 작은 할머니, 나는 두 할머니가 그 삼촌에 대해 걱정하는 대화를 자주 들었던 기억이 있다. 물론 아주 어린 시절이었다.


"우리 OO이 데모 좀 그만 해야 할 텐데..."


K대 출신, 데모 대장이었던 삼촌은 그 데모 때문에 최전방 부대로 배치를 받아 말도 못 할 엄청난 고생을 했던 모양이다. 너무 추운 곳에서 거기서 겨울이면 걸리던 동상이 제대 후까지 이어져 동상 치료 때문에 늘 고생이었다. 군 복무 시절 조카인 어린 나에게 편지를 보내기도 했는데, 편지 내용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맨 마지막 줄에는 늘 빠삐용. 삼촌은 자신을 빠삐용이라 불렀다. 자유를 많이 갈망했던 모양이다. 다행히 삼촌은 빠삐용처럼 탈출, 아니 탈영은 하지 않았다. 나는 할머니 두 분의 걱정을 들으며 군대는 어떤 죄를 묻는 곳이구나. 데모는 나쁜 것이구나. 그런 생각을 했었다. 겨울만되면 삼촌의 발 걱정을 입에 달고 사셨던 작은 할머니가 기억난다...



어떤 칼럼니스트는 'D.P.'가 다룬 악랄한 폭력은 경험도 하지 않은 일부 남자들이 'D.P.'를 자기 연민의 땔감으로 사용할까 봐 엄청나게 걱정을 하고 있었다. 아예 그쪽으로는 부릉부릉 시동도 걸지 말라고 그보다는 내가 그런 폭력의 방관자가 아니었는지 돌아보라고 강하게 다그친다. 아마도 군대의 아픔과 출산의 고통 사이에 VS를 놓고 싶어 하는 어떤 이들에게 하는 말일 것이다. 어쩌면 '82년 생 김지영' 책을 불태우며 출산 결혼 육아만큼 남자들의 군대에서 엄청 힘들다고요! 해온 일부 어떤 이들에게 경고를 날리는 칼럼이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 나는 그 칼럼니스트의 말에 공감을 한다. 그렇지 그래야 진짜 멋진 남자인 거지! 그런 생각이 든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그냥 나는 'D.P.'가 군대를 경험한 모든 남자들의 자기 연민 땔감이 되는 걸 허용하고 싶다. 그토록 악랄한 폭력을 경험하지 않았더라도 생경한 공동체 생활 속에서 여기저기 눈치를 보며 힘들게 지낸 그 시간들 조차 안쓰럽다. 그리고 지금도 어디선가 볼과 팔이 통통했던 개구쟁이 녀석이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그리고 그 엄마를 생각하면... 어떤 표현도 못하겠다.


남편이 때려도, 살림을 부숴도, 바람을 피워도 아들 하나 바라보고 참고 산 어머니들이 있었다. 나 역시 결혼이라는 제도 속에서 요구된 부당하고 억울한 것들에 돌아버린 적이 있었고 에라 모르겠다 다 부숴버리자! 박차고 나가자!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던 건 하루 세 번 아기가 먹을 이유식을 준비해야 했고, 학원 수업을 끝낸 아이가 자신을 데리러 올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교육적으로 옳다, 그르다를 넘어 대부분의 엄마들은 자신의 인생을 갈아 넣어 자식을 기른다. 가끔 돌을 삼키는 심정으로 엄마로 산다. 그렇게 힘들게 길러놓은 아들을 군대에 보냈더니 그런 말도 안 되는 고초를 겪는다? 엄마들이 제일 먼저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D.P.'를 보며 가장 가슴 아플 사람은 바로 82년 생 김지영이다.

그놈의 수통이 언제 바뀌는지... 두 눈 똑바로 뜨고 지켜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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