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놀라 홈즈 속 페미니즘

#은희경'새의 선물'광진테라아줌마+ #'유미의 세포'이별카드

by 임지원

스물두 살과 열한 살, 두 딸을 키운 세월이 나에겐 두 번째 인생 같다. 그 인생에서 내가 가장 사나워진 순간들을 떠올려보면 내 딸을 괴롭히는, 앞으로 괴롭힐지도 모를 무엇인가를 만났을 때다. 그게 사람이든 아니든. 이것만큼은 엄마인 내가 바꿔놔야 하는데... 그런 생각이 드는 거다. 딸을 가진 엄마는 페미니스트가 될 수밖에 없다.


열 살 딸아이가 한 달 전 즈음 언니와 함께 넷플릭스 [에놀라 홈즈]를 보고 나더니 크리스마스 선물로 에놀라 홈즈 시리즈 전권을 사달라고 노래를 부른다. 이제 산타가 없다는 것도 알았다며 엄마 아빠가 이 책 여섯 권을 주문해야 한다는 거다. 그게 돈이 얼만가! 하지만, 학교도 놀이터도 수영장도 못 간 채 1년을 보낸

저 불쌍한 아이의 간절한 소원을 안 들어주는 건 너무 가혹할 거 같아 사주기로 했다. 딸은 크리스마스날 아침부터 책을 읽기 시작하더니 사흘 만에 그 여섯 권을 다 읽어버렸다.


"엄마, 에놀라 홈즈 엄마가... 왜 갑자기 사라졌는지 알려줘도 돼?"


솔직히 난 '애들 영화'인지 '추리 영화'인지 모를 그 영화를 볼 생각이 1도 없었기에 "그래."라고 말했다.

딸은 나에게 에놀라에게 남긴 엄마의 마지막 편지 부분을 펼쳐서 보여준다. 그렇게 나는 영화도 보지 않은 채, 그 이야기의 마지막을 알아버렸다. 그런데 그걸 알고 나니 갑자기 그 영화 [에놀라 홈즈]가 보고 싶어졌다.


이야기는 영국의 명탐정 셜록(우리가 아는 그 셜록이다)에게 어린 여동생이 있었다는 설정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아이가 열여섯 살이 되는 날, 엄마는 알쏭달쏭한 퀴즈를 남기고 갑자기 사라져 버린다!

엄마가 사라지자 에놀라는 신부수업이나 하는 여자아이들의 기숙학교에 보내지게 될 운명에 놓이지만

주인공 에놀라는 용감하게 탈출해 엄마가 사라진 비밀을 찾기 위한 모험을 떠난다. 그리고 이 아이가 영국의 운명(?)을 바꾸게 된다는 이야기. 고작 열여섯 살 여자 아이의 모험이 이렇게 스펙터클 할 수가 있다니. 눈 뗄 수 없는 긴박한 에피소드들이 와르르 쏟아진다. 하긴 영국의 운명을 바꿔야 하는 하는데 이 정도는 돼야 설득력이 있겠구나!


사실 내가 이 영화를 보고 싶어진 것은 나도 에놀라 엄마 때문이다. 나도 그녀처럼 늦둥이 딸이 있다. 나에게도 에놀라가 있는 셈이다. 그녀는 셜록을 키울 때 사회가 원하는 기준으로, 방식으로 아이를 양육했다. 나 역시 그랬다. 하지만 11년 후, 둘째 아이가 태어나자 나는 조금 다른 엄마가 되고 싶었다. 늦게라도 철이 든 건지, 노화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성장이란 것을 한 건지, 암튼 더 중요한 게 무엇인지를 알게 된 기분이랄까.


세 살 네 살 다섯 살... 그때 나는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매일매일 동네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어주었다.

돌아오는 길에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고, 토끼풀을 줍고, 다른 단지 연못에 있는 오리(우리는 그 오리를 오리 씨라고 불렀다!)를 보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었다. 왠지 그래야 할 거 같았다. 행복했다. 작은 원피스, 꽃 달린 신발, 포동포동한 팔뚝, 단풍잎 같은 손가락. 하지만 다른 엄마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할수록 마음은 불쑥불쑥 콩밭을 향했다.


"다시... 일 할 수 있을까? 쓸 수 있을까? 이렇게 사는 거 너무 힘들다... "


그러다 불쑥 짜증이 나고, 일상이 망가졌다. 자괴감에 빠져 힘든 시간을 보냈다. 너무 후회스러운 어떤 순간들이 떠오른다.


에놀라 엄마는 딸이 열여섯 살이 되는 생일날 사라진다. 알고 보면 그녀는 보통 여자가 아니다. 그 시절에 그 정도면 어마어마하다. 혁명가다. 어려서부터 그랬다고 영화에도 나온다. 그런 여자가 그렇게 오랫동안 두 아들과 에놀라까지 키웠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사라질 만도 하다! (*물론 그녀에게는 다른 이유도 있다.)


왼쪽부터 둘째 아들 셜록, 엄마, 늦둥이 에놀라, 큰아들


나는 간이 작아서 내 딸의 열여섯 살 생일날 사라질 계획을 세우진 못할 거 같다. 스물한 살 딸에게도 해줄 것이 너무나 많다는 걸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내 딸만큼은 열여섯 살이 되었을 때 에놀라만큼 당돌했으면 좋겠다. 용감했으면 좋겠다! 아직 세상은 딸들에게 호락호락하지 않으니까. 여성인권에 대해 조금만 이야기를 하려고 하면 '페미'라고 하며 다들 질색이다. 셜록보다 에놀라가 먼저 사건을 해결했다는 이유 때문인지 몰라도

은근 이 영화에 페미 딱지를 붙이고 비난하는 분위기가 느껴진다. 전체적인 스토리도 그렇지만 특히 이런 장면이 거슬릴 것이다. 셜록 홈즈가 엄마와 뜻을 같이 한 동지와 언쟁을 벌이는 장면인데 동지는 셜록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남자)은 지금이 살기 딱 좋으니 아무것도 바꾸고 싶지 않은 거라고. 물론 나는 에놀라 엄마보다는 훨씬 좋은 세상을 살고 있다. 선거권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뭔가 불편하고 힘이 든다. 82년 생 김지영도 그렇게 힘들었는데, 72년생인 나는 아니 62년생 52년생은 또 얼마나.


은희경의 '새의 선물'에서 마음이 너무 아팠던 장면이 있다. 광진 테라 아줌마, 순분이 아이를 등에 업고 짐가방을 든 채고 버스 터미널 정류장에 서 있는 장면이다. 그녀는 결국 남편을 떠나야겠다고 마음먹고 집을 나왔다. 하지만 도착한 버스에 타지 못한다. 그녀는 떠나버린 버스를 바라보며 먼지를 뒤집어쓴 채 서 있다. 남편은 오입, 폭행 전문이다. 시어머니는 칠거지악 타령을 하며 순분을 괴롭힌다. 심지어 순분은 겁탈을 당하고 남편 광진의 아내가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걸 운명으로 받아들인다. 그녀는 왜 가정이라는 이름의 컨베이어 벨트에서 뛰어내리지 못했을까? 왜 그 버스에 올라타지 못했을까! 객관적으로 봐도 내 결혼생활이 어이없게 불행한 건 분명 아니다. 그런 주제에 무슨 새의 선물의 순분에 자신을 빙의를 하냐고 누군가 비난을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 이후 도달한 출산과 육아의 뉴월드는 혹독했다. 시한폭탄이 가슴속에서 째깍째깍... 폭발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느낌이었다. 왜 그토록 힘들었을까? 나는 그 답을 젊은 감성 폭발하는 연애 드라마에서 발견했다!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유미의 세포'. 연애를 하는 남녀의 마음속을 어찌나 세세하게 파 해치는지, 나도 모르는 내 마음 밭을 누군가 설명해주는 느낌이다. 거기서 여 주인공 유미가 남자 친구의 답답한 태도에 화가 나 펄펄 난다. 틀렸다고 말해줘도 먹히지 않는다. 그 상황에서 유미에게 필요한 건 뭘까? 더 큰 사랑? 진심? 협상의 기술? 아니었다. 바로 이별 카드. 이별도 감수할 각오로 말을 해야 그게 남자 친구를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이별이 두려우면 아무것도 변화시킬 수 없다! 나는 무릎을 탁 쳤다. 결혼생활이 힘든 건 연애시절 사용했던 이별 카드만큼 이혼 카드를 쓸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아이가 태어나면 더 그렇다. 아이에 대한 책임감, 누군가는 이 생각이 고루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그럴 수밖에 없다. 어쨌든 출산을 하고 나면 아이를 키우는 일이 내 인생을 점령한다. 첫 애를 낳고 내 젖가슴은 늘 옷 밖에 나와 있었다. 이 지독하게 우는 아이를 달레는 방법이 젖가슴 밖에 없었다. 젖꼭지에 피가 나도 아이가 원하면 물려야 했다. 아이는 자라 이젠 자기가 원할 때 엄마의 옷을 들어 올려 젖을 꺼내 물었다. 자다가도 빨고 싶으면 꺼내서 빨았다. 아침에 일어나 보면 가슴이 이불 밖에 훤히 나와 있었다. 이건 빙산의 일각과도 같은 육아의 한 컷일 뿐이다. 나는 사람인가? 소인가? 남편의 따듯한 시선과 보살핌이 절실했던 시절이었다. 그렇다고 남편에게 이 월드가 놀이동산이었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가끔 지금 아이와 둘이 집에 있는 나는 아무런 힘이 없구나! 그런 생각을 자주 했다.


유리천장과 같은 사회 전반에서 여성의 권리 문제를 논할 만큼 내 공부와 경험이 풍성하지 않기에 그저 내 소망은 단 하나, 내 딸의 육아는 나만큼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거다. 어린이집, 육아수당... 뭐 그런 문제라기보다는 사람들의 인식, 그게 달라졌으면 좋겠다. 맘충이라니... 너무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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