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옆에 박완서 작가님과
골목식당을 봅니다.

백종원의 골목식당 보다가 문득...

by 임지원

언제부터였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엄마의 말뚝을 시작으로 박완서 작가님의 작품을 읽기 시작했는데,

그렇다고 작가님의 작품을 몽땅 다 읽었다! 뭐 그런 상황은 아니고. 그래도 가까이에 늘 작가님의 책이 있고 짬이 날 때마다 읽고 있다.


둘째 아이와 도서관에 갈 때 책을 들고 가서 읽고, 들고 가지 못했을 땐 거기서 대출해서 읽고

새벽에 좀 일찍 눈을 떴을 때도 읽고, 저녁 설거지 마치고 좀비처럼 TV 앞에 앉아 예능프로를 보다가 갑자기 내가 이 재미없는 걸 왜 보고 있지 하며 정신을 차리고 책을 펴기도 한다.

오래전 고인이 되신 작가님이 왠지 내 일상에 존재하고 있는 느낌이다.


나는 전공이 국어국문과인데, 왜 그랬는지 대학생 시절 박완서 작가님의 작품을 읽은 기억이 없다.

그 시절 나는 파트리스 쥐스킨트의 '향수'로 현대소설 수업을 들었고 도서관에서 이청준 작가님의 단편들을 많이 읽었다. 그때 읽은 것 중 기억에 남는 것이 영화 밀양의 원작이었던 '벌레 이야기'. 그리고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 기독교인인 나에게 신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문제작을 읽는 건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이후 무라키미 하루키를 만났고, 드디어 나는 평안을 찾았다! 하루키를 폄하하려는 건 아니다. 당시 우리에겐 정말 릴랙스 할 뭔가가 필요했다. 암튼 확실한 건, 그 시절,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는다는 건, 정말 멋져 보이는 일이었다는 거. 나는 지금도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을 기다린다. 별 얘기 아닌 거 같은데 읽고 나면... 이래서 내가 하루키를 읽지. 그런 생각이 든다. 이 느낌은 오로지 하루키뿐.


이후 하루키를 통해 캐나다 할머니 작가 앨리스 먼로를 알게 됐다. 두 사람은 어떤 해인가 노벨문학상을 놓고 경쟁했고, 승자는 앨리스 먼로였다. 도대체 어떤 작품을 썼길래 하루키를 눌렀지? 궁금한 마음에 그녀의 작품을 찾아서 읽었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캐나다에 사는 할머니 작가님이 어떻게 대한민국에서 늦둥이 낳고 살림에 매몰돼 그 어떤 성취도 없이, 이해도 받지 못한 채 살아가는 대한민국 주부의 마음을 알지?

박수를 쳤다. 그래도 그녀의 모든 작품을 다 읽었다 그 정도는 아니고. 나는 지구력이 부족하다.

그러던 중 박완서 작가님의 엄마의 말뚝을 소개하는 팟캐스트를 듣고 드디어 '박완서'에 입문했다.


박완서 작가님이 마흔에 등단을 하시고, 이후 쭉 활발하게 작품을 쓰셨다고 했는데 내가 지금 작가님의 그 나이 대를 살고 있다 보니 작가님의 그 시절 작품 속 생각, 인물의 속마음이 너무너무 내 마음 같아, 피식 웃음이 튀어나오기도 하고 종종 찔리기도 한다. 엄마, 아내, 며느리... 암튼 가정생활에서 느끼는 억울한 짜증,

소속된 공동체에서 나이 든 여성이 느낄 수밖에 없는 피곤한 감정들... 암튼 여성이 나이 들며 느낄 수밖에 없는 쓰레기 같은 감정들이 작가님의 작품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내가 만약 이십 대에 읽었다면, 무슨 말인지 몰랐을 거 같은 그런 마음, 감정들. X세대가 박완서에 열광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는 거 같다. 전후세대라면 모를까. 그런데 이젠 X세대인 내가 전후세대의 감성에 이토록 공감이 된다니.


내 안에 숨기고 싶은 부끄러운 마음이 많다. 사회적으로 감추고 싶은 모습도 많다. 잘난 척하는 이웃은 안 보고 싶은 마음, 그 잘난 척하던 이웃이 잘되면 또 배가 아프다! 며칠 전 솔직히 말 섞기 싫어 연락을 피하던 이웃을 피할 수 없는 곳에서 딱! 마주쳤는데 나에게 "너무 연락이 안 돼서 뭐 잘못된 줄 알았어요." 그러는 거다. 잘못되다니... 팬데믹 상황에서 아이 키우는 처지에 그런 인사를 건넬 수 있다는 게 충격이었다.

다시는 안 봐야겠다 결심하고 바로 그 자리를 떴다. 그녀를 경멸하는 마음이 불처럼 타올랐다.

하지만 누굴 미워하는 것도 얼마나 힘든가 말이다. 죄책감까지 밀려와 너무너무 짜증이 났다.

그래도 박완서 작가님 작품 속에서 본 비슷한 마음들이 있어 위로를 받는다. 사람이 그렇지. 누굴 미워할 수 있지. 사람이니까 그런 거지. 오죽하면 부모가 귀해도 자식보다는 귀할 수 없는 것이고 그 자식은 부모가 부담스럽다. 어디 내놓긴 좀 그렇지만 그런 마음 인정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잘난 사람의 충고가 고마우면서도 얼마나 또 꼴 보기 싫은가 말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밖에 없는 그런 마음. 미세하게 흔들리는 마음, 무너지는 마음, 로또가 당첨되면 좋겠어! 그런 류의 내놓기 부끄럽지만 너무너무 간절한 어떤 마음들.


왠지 모르게 쥐어박는 말이 자신의 사랑과 유머를 표현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남편이 꼴 보기 싫어 죽겠는데, 작가님 작품 중 '너무도 쓸쓸한 당신'을 읽고 나서 그런 남편이 안쓰러워지며 꼭 안아주고 싶은 거다.

어쩌면 작가님은 추하게 늙어가는 남편이 꼴 보기 싫어지는 아내의 마음속 죄책감을 덜어주고 싶으셨던 게 아닐까 그래도 그 모습이 안쓰럽지 않냐고 쓸쓸해 보이지 않냐고 그러니까 사랑 좀 해주라고.


그리고 너, 지원아! 가끔 너무 해맑아지던데, 그런 면이 누군가에게 얼마나 재수 없을지 좀 알고 살라고 하시는 거 같기도 하고. 인간을 이해한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너무나 인간적인, 때론 부끄러운 나의 모습을 이해한다고 말하는 작가님의 작품을 읽으며 나는 공감하고, 반성도 하고, 끝내 감동하면서 나도 모르게 조금씩 변화해간다. 살아갈 힘을 얻는다.


궁금하다.


박완서 작가님이 백종원의 골목식당에 출연한 그 닭갈비집 사장이 장장 17시간을 찍는지 안 찍는지 오디오가 들어가는지 안 들어가는지 제대로 설명도 못 들은 채 찍힌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이 담긴 영상 때문에

그렇게 모욕을 당하는 장면을 보신다면 뭐라고 하실까. 그는 일하기 싫어하는 좀 게으른 사람일지 모른다.

아직 철이 안 든 철부지일 거다. 그런 사람은 세상에 많다.


내 모습도 그렇게 17시간 찍혀 세상에 나오면 어떨까 솔직히 자신 없다. 일반인을 섭외해서 방송하는 일... 나도 오랫동안 했던 일이라 어떤 상황인지 다는 몰라도 조금은 알 거 같은데 자기 방송을 어쨌든 화제성 있게, 시청률 높게, 멋지게 마무리하고자 하는 제작진의 욕망이 뭔지 누구보다 잘 알지만, 그래도 이렇게까지 한 인간을 윽박지르는 상황이 당연한 듯 보이는 게 무섭다. 그가 겸연쩍어하면서 씁쓸하게 웃고 있는 표정을 보는 게 불편하고 힘들다. 그는 그저 성실하지 못한 사람일 뿐이고, 방송용 눈물 좀 흘려줬지...라는 말 같은 건

일종의 유머 비슷한 게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근데 아무리 골목식당이 고마워도 그렇게 행동할 수 있다.

고마운 건 고맙지만 동시에 배알이 꼬일 수 있는 게 사람이니까!


그러니까 그 17시간 영상은 묻었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골목식당 카메라가 무슨 조지 오웰 '1984'의 빅브라더도 아니고 그런 걸로 사람 망신 주는 건 21세기에 어울리지 않는다. 너무 이상하다.


작가님은 어떠세요? 돈을 벌게 해 준다면, 인간이 인간에게 그렇게 해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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