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금지법을 반대해도
차별을 하자는 건... 아니죠?

X세대는 저항한다, 고로 존재한다.

by 임지원


저녁을 먹은 식탁을 다 치우고 나니 맥이 탁 풀린다. 설거지는 남편이 도와주었지만,

주방의 일이 설거지가 전부는 아니다! 설거지 딱 하나를 도와주고, 소파에 당당히 앉아 TV를 보고 있는 남편이 거슬린다. 하지만, 그래도 예전, 그러니까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보기 이전과 비교를 해보면,

경이로운 발전이라고 할 수 있다. 나의 따가운 시선을 느꼈는지 남편이 소파를 툭툭 치며 옆에 와 앉으라고 한다. 얼른 씻고 하루를 마감해야겠지만, 그래! 이참에 주방의 일은 설거지 말고도 어마어마하게 많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잠시 옆에 앉기로 한다. TV에 낯익은 배우가 나오고 있다. 산드라 블록이다.

영화 ‘블라인드 사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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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나, 이 영화 엄청 좋았는데!”

주방 일에서 설거지가 차지하는 비중... 잊어버렸다. 우리 할머니가 옆에 계셨다면 분명 이렇게 말씀하셨을 거다. “얼른 씻고 자라!!” 지금은 안 되겠어요! 할머니, 이 영화 너무 좋거든요! 그렇게 밤 12시를 넘기며

영화 다시 보기에 몰입했다.


미국의 상류층 가정에서 버려진 흑인 아이를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유명한 풋볼 선수로 성공시킨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나를 그토록 울렸던 드라마 ‘나의 아저씨’가 생각난다. 감동이 밀려온다. 좋은 사람 되고 싶다! 하지만, 나는 총과 마약이 일상인 부랑자들 앞에서 겁먹지 않을 용기가 없다. 나는 간이 작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과 주연을 맡은 영화 ‘그랜 토리노’도 떠올랐다. (결말은 ‘블라인드 사이드’와는 많이 다르지만) 중국 이민자 가정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어준 옆집 할아버지의 이야기다. 그는 어린 시절 한국전쟁에 참전했었다. 이후 미국을 대표하는 자동차 공장에서 일한 산업역군이다. 현관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에 성조기가 딱 걸려있다. 지금 우리나라로 치면 태극기를 아주 많이 사랑(?)하고, 경부고속도로가 만들어진(?) 시절을 찬양하는 할아버지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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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네 줄에 이 영화에 대한 스포일로 포함

어쨌든 인종, 이민자 등등 온갖 차별적 표현으로 유언장까지 만든 이 할아버지는 알고 보니 ‘츤데레’였고, 결국 자신이 혐오하던 이민자 소년을 위해 목숨까지 내놓는다는 감동적인 영화다. OST 음악도 정말 좋다! 언제나 쓸쓸함을 전해주는 ‘제이미 칼럼’의 목소리와 멜로디.

나는 종종 그의 음악을 듣는다.


다시 블라인드 사이드로 돌아와서. 주인공 산드라 블록은 흑인 아이를 돕는 일에서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삶의 큰 행복을 느끼게 된다. 점점 더 그 일에 매진한다. 결국 자신이 졸업한 명문대에 그 아이를 입학시킬

계획까지 세우게 되고, 이를 위해 유능한 과외선생님까지 고용한다. 예전에는 그냥 지나쳤는지, 의미를 몰랐는지 전혀 기억에 남아 있지 않은 장면인데, 이번에 다시 보니 그 과외 선생님 면접 장면이 엄청 인상적이다.

과외 선생님은 무려 캐시 베이츠다. 바로 영화 ‘미저리’에서 무시무시한 스토커로 나온 그 배우! (에고... 이 영화를 전혀 모르는 분들도 많겠다. 공감 일기 쓰는 아줌마는 옛날 사람입니다. 어쨌든 공감할 수 있는 소수의 독자를 위해 첨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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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기독교 학교에는 맞지 않았나 봐요, 저는 영적인 면에 관심이 많지만

뭐랄까 회의적이라...”


어떤 학교에 근무한 경력에 대해 묻자, 과외선생님이 한 대답이다.


“솔직한 말씀 감사해요.”


주인공 산드라 블록은 답변이 못마땅하지만, 그 정도는 받아들이겠다는 느낌이다. 그리고 두 사람은 아이를 어느 대학에 왜 합격을 시켜야 하는지에 대한 대화를 나눈다. 그렇게 거의 고용이 확정되는 분위기에서 갑자기 과외 선생이 이런 말을 한다.


“저에 대해 알아두실 게 있어요, 웬만해서는 말을 안 하는데...

저를 고용하시기 전에 미리 알아두셔야 할 것 같아서요.”

“뭔데요?”

“저는... (속삭이듯) 민주당원이에요.”


그러자 주인공 산드라 블록은 기독교에 회의적이라는 답을 들을 때보다 훨씬 더 당황한다. 이건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듯 그녀의 시선을 피해 먼 곳을 바라본다. 산드라 블록의 가족은 모두 공화당 지지자인 모양이다.

예전에는 출생지, 혈액형, 형제자매 중 몇 번 재인가 그런 것들이 성격을 만드는 것 같았다.

드라마 속 인물을 만들 때도 그런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고 배웠다. 하지만 요즘은 그런 것보다 정치적 성향이 더 중요하게 다가오는 느낌이다. 보수인가? 진보인가? 오른쪽인가? 왼쪽인가? 둘 다 비슷한 말이지만 어쨌든 그렇다. 그래서 나는 차라리 모르고 싶다, 어떤 이의 정치적 성향이 대해. 웬만큼 가까운 사이가 아니면 내 정치적 성향을 말하지 않기로 한다. 아이들에게도 말한다.

아무에게나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지 말 것, 묻지도 말 것.


평소 가깝게 지내던 장로님 한 분이 함께 보고 공감하고 싶다며 카톡으로 시사만화 몇 편을 보내주셨다.

내용을 보니... 아! 궁금하지 않았던 장로님의 정치성향을 알게 되었다. 갑자기 멀어진다. 장로님과의 거리. 10km, 100km... 그렇다고 장로님 가정의 중요한 경조사에 참석하지 않거나 하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거리감은 1000000km! 왠지 모르게 너무 속상했다.


어린 시절 주일학교를 함께 다니며 우정을 쌓은 친구들이 모인 단톡 방이 있다.

어느 날 친구가 뭔가를 올린다. 차별금지법, 그거 통과되면 큰일 난다고. LGBT 절대 안 된다고, 끝까지 저항해야 한다고, 어디 어디로 가서 청원을 하라고 한다. 이번엔 또 다른 친구가 유튜브 채널을 보라고 올린다. 동성애, 이혼, 낙태, 성소수자의 결혼을 인정하는 정부의 성교육 내용이 기독교와 맞지 않는다며 이제 우리 큰일 났다는 내용이다. 지금껏 몰랐던 친구의 정치적 성향을 알게 되었다.

중고등부 담당 목사님의 설교 시간, 동성애자를 바라보는 혐오의 시선이 느껴진다. 불편하다. 우리 아이들이 성인이 된 후 동성애자를 만날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겠지만, 만났다 하더라도 그들을 전염병 걸린 환자 대하듯 할까 봐 걱정스럽다.

주일예배에서 목사님이 설교를 하신다. 차별금지법은 비성경적인 시대의 사상이다. 이 법이 통과되면 우리 아이들이 동성애를 옹호하는 교육을 받게 되어 트랜스 젠더가 양산된다. 하나님의 질서가 무너진다.

결국 제2, 제3의 성을 선택하는 소돔과 고모라 같은 음란한 세상이 온다.


차별금지법 결사반대로 설명되는 정치적 성향이라는 게 있다. 내 생각이 너무 정치적 인가? 온라인으로 접한 다른 교회 목사님의 설교에서도 비슷한 내용을 듣는다. 차별금지법이 통과되면 동성애자와 동성애자의 결혼식에서 사용할 웨딩 케이크 주문을 거부한 가게 사장님이 처벌을 받는다. 엄마가 아빠가 되고, 아빠가 엄마가 되는 창조 질서에 어긋나는 세상이 된다.

동성애와 차별금지법이 기독교의 창조질서를 위협하는 절대 악 인가?

창조 질서를 깨기 때문에 그들을 향한 혐오의 말은 이웃을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계명에도 치외 법권 인가?

왠지 모르게 우리는 저들과 같지 않다고 외치던 바리새인이 생각난다. 마음이 힘들다.

내가 마귀 시험에 빠져 감히 목사님의 설교에 태클을 걸게 된 것인가? 내 마음이 가시밭이 된 것인가?

우리 할머니가 옆에 계셨다면 나에게 뭐라고 말씀하실까? 드라마를 보시다가도 불상에 절하는 장면,

무당이 굿하는 장면만 나와도 우상숭배,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는 죄라며 TV를 끄셨던 할머니다.


“목사님은 하나님의 종이기 때문에 우리가 판단을 하면 안 된다.

하나님이 판단을 하시는 거지!”

“그렇긴 한데... 할머니, 나 속상해. 동성애자를 혐오하는 말 싫어. 내가 사랑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사랑이었잖아. 간음한 여인, 버려진 문둥병자, 모두가 손가락질한 세리, 심지어 십자가에 함께 달린 죄수 바나바까지 예수님은 구원하셨는데, 지금 나와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말 그대로 소수의 그들을 왜 우리가 나서서 정죄하는 건데, 어차피 우리도 다 죄인인데... ”


며칠 전, 온 가족이 함께 ‘더 레이디 인 더 밴’이라는 영화를 봤다.

엘렌 베넷이라는 영국의 희곡작가가 겪은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라고 한다. 부유해 보이는

집들이 늘어선 영국의 어느 동네에 밴을 타고 노숙을 하는 할머니가 함께 살고 있다. 우리 집 막내는 이 할머니가 해리포터 시리즈에 나오는 맥고나걸 교수님이라며 신바람이 났다! 할머니는 괴팍하고 더럽다. 마을 사람들은 그 할머니가 자신의 집 앞에 주차를 할까 봐 두려워 전전긍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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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할머니 인생에 최대 위기가 찾아온다. 바로 주차를 금지하는 노란 선이 마을에 나타난 것이다.

할머니의 밴은 갈 곳을 잃어버린다. 그때 마을에 살고 있던 엘렌 베넷이 자신의 집 마당을 할머니에게

내어준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몰랐을 것이다. 이후 자신이 할머니의 배설물까지 치워야 하는 운명이라는 것을!


보다 보니 뭐랄까? 고품격 ‘실화 탐사대’를 본 느낌이다. 할머니의 사연은 스포일러 하지 않겠다. 마음의 온도를 높이는 따듯한 영화다. 좋다! 영화를 보는 내내 신기했던 건, 할머니를 대하는 동네 사람들의 태도였다. 적어도 할머니를 대놓고 거부하지는 않는다. 좋아한 건 아니지만 분명 혐오하는 말이나 행동은 부끄러워했다. 그렇게 할머니는 최소한의 존중을 받으며 15년, 마을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살다 돌아가신다.


이제 용기를 내야겠다.


“알아두실 게 있어요, 웬만하면 말하지 않는 건데,

저는 동성애자가 너무 싫거나 그렇진 않아요.”

“... 솔직한 말씀 감사합니다.”

“그리고 저와 동성애자를 포함해 누구도 차별받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 그럼 그 웨딩케이크 가게 사장님은 어떡합니까?”

“하나님의 이름으로 핍박을 당하면 천국에서 상이 크다고 배웠잖아요, 우리...”

“그럼, 하나님의 창조 질서는요?”


“하나님의 창조 질서가 그런 법 하나 때문에 무너질 거 같지가 않아요.

솔직히 동성애보다는... 플라스틱이 더 위험해 보이거든요.

그러니까, 그냥... 차별금지법 찬성하면 어때요?”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 기독교인들을 위해서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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