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바웃 드라마] KBS 드라마 스페셜 '크레바스'
* '해피엔드', '밀애', '아내의 자격', '밀회', '남과여', '크레바스'에 결말 스포일러 포함.
유부녀의 불륜을 다룬 드라마나 영화의 결말이 늘 마음에 안 들었다.
1999년에 개봉한 전도연 주연의 '해피엔드'.
거의 20년 전에 본 영화지만 그 결말이 너무 충격적이라 기억에 남는다.
그녀는 결국 남편에 의해 죽음을 맞는데, 그 피비린내 나던 마지막 장면이 정말 지워지지 않는다.
불륜남을 만나러 가기 위해 아기 분유에 수면제를 넣은 막장 엄마니까,
그 정도는 해줘도 된다고 생각했던 걸까?
2002년에 개봉한 김윤진 주연의 '밀애'.
지금은 이 영화의 구체적인 줄거리는 생각이 안 나지만 그녀가 하얀 잠옷을 입은 채로
새벽녘에 담장을 뛰어넘던 장면과 그녀의 마지막은 또렷이 기억이 난다.
그녀는 거리의 청소부가 되고 혼자 쓸쓸히 영정사진 같은 것을 찍으며 이 영화는 끝이 난다.
해피엔드의 주인공 전도연을 생각하면 그래도 밀애의 여주인공은 다행히 목숨은 건졌다.
하지만, 불륜의 끝은 저렇게 비참하다고, 길거리를 청소하며 혼자 영정사진을 찍는 불행을
자초하지 말라는 강력한 교훈을 남긴 작품이었다.
그리고, 2012년에 방영한 '아내의 자격'.
너무나 재밌게 본 jtbc의 드라마다. 재방송을 한다면 다시 볼 의향이 100%다.
괜찮은 집안, 그럴듯한 남편의 직업(방송국 기자)에 혹해서 결혼을 했다는 주인공 김희애의 눈물 고백에
나는 할머니처럼 혼잣말을 했다.
"그럴 수도 있지! 그게 그렇게 자책을 할 일이야!
고작 그런 이유 때문에 불행한 결혼이 자신의 탓이라니, 그게 무슨 논리야!"
세상 지질한 거지 같은 남편과 가식에 쩐 인간 군상의 적나라한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그 어떤 거짓, 가식, 악도 어쨌든 불륜보다는 선한 것인가?
불륜만 아니면 다 괜찮은 건가?
질문을 던지는 듯했던 드라마, '아내의 자격'.
주인공 김희애는 시누이에게 머리채를 잡히고 온 동네방네가 떠들썩하게
불륜녀로 망신을 당하지만 그래도 어쨌든 그녀의 마지막은 나름 괜찮았다.
사랑하는 남자와 새로운 가정을 이루는 데 성공했으니까!
끝까지 좋은 엄마의 품위를 지켰으니, 그럴 만했던 걸까? 암튼.
어쨌든 해피엔드 이후 13년 만에 불륜 아내가 새로운 가정을 이루는데 성공한다.
2014년 jtbc에서 방영된 '밀회'에서 여주인공 김희애는 어린 청년 유아인과 사랑에 빠진다.
그녀의 부부관계와 직장생활은 전부 다 매우 나쁨 단계.
그런 그녀에게 찾아온 순수한 소년을 향한 사랑은 어쩌면 거부할 수 없는 그 무엇이었을 거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사랑이 그녀를 구원하고
그녀는 할 수 있는 가장 양심적인 선택을 한다.
물론 그 선택이 모든 악을 소탕할 만큼의 파급력을 갖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뭔가 그들에게 짜증이 날만한 스트레치를 남긴다.
하지만 이 드라마 최종회에 담긴 그녀의 마지막은 너무나 비참했다.
동료 재소자들에게 머리카락을 잘린 후, 쓸쓸히 교도소 담장에 기댄 채 앉아
허탈하게 웃고 있는 그녀의 마지막 모습은 역시나 충격적이었다.
이 불쌍한 여자에게 이렇게까지 했어야 했나?
그럴 만한 이유 뭐였을까? 생각해보면 그녀의 불륜 상대남(유아인)이 너무 어렸다는 거!
아마도 그것이 그녀에게 이토록 큰 벌을 내린 이유인 듯하다.
그리고 2016년에 개봉한 영화 '남과 여'.
배우 전도연은 해피엔드 이후 17년 만에 다시 불륜영화에 주인공이 되었다.
게다가 상대역은 무려 공유다. 와우.
영화 전반부엔 분명 여주인공의 갈등이 더 크게 느껴졌다. 엄마로서의 책임감
그리고 죄책감에 힘들어하는 여주인공을 보니
상대 불륜남이 공유여도 이제 그만 하자! 싶었다. 잠깐 실수로 끝내요 제발! 내 마음이 그랬다.
하지만 끝까지 그녀의 주변을 맴돌며 떠나질 못하는 공유.
결국 여주인공의 가정이 먼저 깨진다.
하지만 불륜남 공유는 ... 의외로 가정적인, 딸바보 아빠였다는 뜻밖에 결말에
난 적잖이 당황했.었.다.
지난주에 KBS 드라마 스페셜 '크레바스'를 우연히 보게 됐다.
여주인공이 어려움에 처한 남편의 후배를 돌보다가 사랑에 빠진다는 뻔한 줄거리 요약에
갑자기 호기심이 생겼다. 단막극이면 결말은 분명 확실할 것이고, 단막극으로 드라마 스페셜에 선정이
됐다는 것은 그만큼 작품성을 인정받은 것일 텐데 이 불륜 드라마는 어떤 결말을 갖고 있을까?
어떤 종류의 불륜 드라마길래 2020년 드라마 스페셜에 선정된 걸까?
주인공 윤세아는 영양사로 일한다. 남편과의 관계는 깨졌고 유학을 간 아들은 집에 오지 않는다.
틈틈이 전자담배를 입에 문 그녀는 너무나 쓸쓸해 보인다. 그런 그녀에게 더 쓸쓸한 남자가 나타난다.
남편의 후배인 그는 갑자기 아내가 죽고 아이와 남겨졌다. 남편은 그 불쌍한 후배를 위해 직장을 소개해주고
곁에서 돌봐준다. 자신의 아내에게 신경을 써달라고 부탁까지 한다.
그녀는 엄마를 잃은 불쌍한 아이를 돌보고, 맞는 옷까지 사다 입히며 다시 엄마가 된 듯 행복감을 느낀다.
그렇게 둘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는다.
자, 이제 이 둘은 어떻게 될 것인가?
-불륜을 저지른 자신을 받아들일 수 없는 유교 걸 윤세아의 방황이 이어진다? 땡!
-남편이 아내와 후배의 불륜 사실을 알게 되고, 사진을 찍고 찾아가 폭력사태가 벌인다? 땡!
(이건 다이안 레인 주연에 '언페이스풀'버전이다. 스노우볼로 쾅!)
-그 남자가 윤세아에게 멀리 함께 도망을 가자고 한다.
그런데, 마침 아들이 유학에서 돌아온다는 소식에 윤세아는 갈등하다 결국은 가정을 지킨다? 땡!
(이건 매릴 스트립의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버전이다.)
-둘이 함께 비행기를 타고 다른 나라로 가서 새로운 인생을 산다! 땡!
(이미숙의 '정사(1998)'버전?)
내 예상을 전부 다 빗나간 이 드라마의 결말은
의외로 그 남자가 여 주인공과의 사랑보다 윤세아의 남편인 선배 형과의 '의리'를 선택한다는 것!
남편과도 이혼을 하고, 불륜남과도 깔끔하게 이별한 여주인공이 새로운 곳에서
혼자만의 진정한 쉼을 찾는다는 결말이 너무나 신선했다!
그렇다! 사랑이 아니어도 우리는 행복할 수 있다.
누구에게나 공감을 잘하는 성격 탓에 불륜에 빠져드는 여주인공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자식 예쁜 거 보면서 좀 참지... 하지만 얼마나 힘들면 그랬을까? 조금만 참았다면 어땠을까?
그래도 저렇게 까지 할 수밖에 없었다면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요즘 예능에서는 바람을 피운 남편을 희화화하는 장면을 자주 보게 되는데,
만약 아내가 바람을 피운 적이 있다면 과연 그 남편이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서 우리 아내에게 원죄가 있어요!
하며 웃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분위기가 싸늘해질 것이다. 많이 당황스러울 것이다.
우리는 확실히 불륜남보다 불륜녀에게 가혹하다.
불륜남보다 가혹하게 처벌받는 불륜녀를 생각하면 왠지 마음이 아프다.
예수님도 간음한 여자를 끌고 와 돌로 치려는 자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이 여인을 돌로 쳐라!"
불륜을 정당화하는 건 절대 아니라는 걸 분명히 밝히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