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나 행복해 보였던 부부의
이혼 소식을 들었을 때

이혼이 무슨 죄도 아니고.

by 임지원

우연히 아빠 없이 육아하는 관찰 예능 프로를 보게 됐는데 거기 의외의 인물이 있는 거다. 어? 언제 이혼했지?


꽤 오래 방국송에서 아니 방송국에서 (... 오래전, sbs 좋은 친구들 때 되게 웃긴 어떤 선배 작가가 방송국을 방국송이라고 했었는데 문득 기억이) 일했던 시간 때문인지 이런 류의 연예뉴스에 습관적으로 귀를 기울이게 된다. 아! 한 1년 m-net뉴스도 했었다. 뭐 암튼 그렇게 쌓인 지식 아닌 지식은 나의 기억 속에 차곡차곡 쌓여 있다가 가족이 함께 TV를 시청하는 중 문득 연관된 뉴스나 인물이 나오면 툭 튀어나오기도 한다.


"넌 그런 걸 어떻게 아냐?"


그렇다고 대단히 음흉한 정보를 나만 알고 있다는 건 아니다. 현재 일어난 사건을 과거의 다른 사건과 함께 해석하고 내가 받은 어떤 연예인의 특별한 느낌 같은 걸 보태는 정도다. 최수종 씨의 착함을 의심하는 남편에게는 이렇게 말한다.


"그분은... 정말 그럴 분이야."


어쨌든 내가 예상치 못한 그녀의 이혼 소식에 얼른 휴대폰을 들고 검색을 시작했다.

이름만 검색창에 넣었는데, 줄줄이 정보가 쏟아진다. 아... 그랬구나. 그런 일이 있었구나.


그런데, 그 내용들 중에 일부는 그녀가 이혼 전에 행복해 보이는 모습을 부각하며 이렇게 행복해하더니 왜 갑자기 이혼이냐는 투다. 그녀의 과거에 보여준 그 행복을 의심하기도 하고 행복한 모습 어딘가에 숨어 있었던 이혼의 조짐(?) 같은 걸 찾고 있는 거 같았다. 말하자면, 남편의 과거 발언, 모습 재조명.. 뭐 이런 거다.

자신의 이혼이 이렇게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릴 것을 각오하면서 이혼을 선택한 그녀의 심정이 어땠을까 생각해보면 마음이 아프다. 연예인과 정치인 걱정은 하는 게 아니라지만 어쨌든.


지난 토요일 저녁에 남편과 크게 다퉜다. 오랜만에 큰 싸움이 났다. 저 인간, 저 공감능력 없이 자기 기분대로 생각대로 아무 말이나 하면서 자기 잘못이 뭔지도 모르고! 고마운 줄도 모르고! 아내의 기분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TV에서 백종원 아저씨 햄버거 먹는 모습을 보며 침을 질질 흘리길래 요즘 재택을 하며 열심히 가족을 위해 돈을 버는 모습이 고맙기도 안쓰럽게도 해 큰 맘먹고 손수 패티까지 만들어 햄버거를 만들어주려고 준비를 했다. 눈에 차는 햄버거 번이 없어, 그냥 모닝빵이라도 사다 달랬더니 모닝빵은 싫단다. 그래? 알았어. 두꺼운 식빵을 단단히 구워 대체하기로 하고 이번엔 양상추 씻는 것 좀 같이 하자고 했더니 한숨을 쉬며 보던 판타지 소설을 덮는데, 분명... 짜증이 섞여 있는 거다. 뭐지 이 인간? 그리고 생각났다. 결혼하고 지금까지 종종 이렇게 날카로워졌던 순간들. 왠지 모르게 눈치를 보게 만드는 그 이상한 성질머리에 대해!!!


코로나 블루로 가장 취약한 계층이 누구냐에 대해 많은 이견이 있지만 주부도 그중 하나라고 말하고 싶다. 삼시세끼 밥은 말할 것도 없고 갇힌 공간에서 매일매일 똑같은 가족 수발을 들고 있다. 재활용, 청소, 정리... 더 말해 뭐해.


물론 남편 역시 취약계층일 수 있다. 재택근무가 말이 쉽지 풀리지 않는 업무도 있었을 것이고 그걸 동료들과 풀고 대화도 하고 그러면서 잊기도 하고 그럴 텐데 그러지도 못하고 가족 모두 함께 지지고 볶고 있으니 짜증이 날만도 했을 것이다. 돈 버는 가장으로서 다 말하지 못한 어떤 스트레스도 있었을 것이고. 그렇게 아내와 남편의 코로나 블루가 충돌했으니, 우리는 싸울 수밖에. 결혼 20년 차, 우리 부부가 서로의 가슴에 꽂은 말들은 아주 살벌한 것들이었다.



시간을 되돌려 하루 전, 금요일 저녁에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었던가. 일찍 저녁을 먹고 낙조 시간에 맞춰 네 식구가 함께 등산을 갔다. 요즘같이 더울 때는 아침 산행보다 저녁 산행이 훨씬 수월하다는 걸 알게 된 거다.

바람의 느낌이 다르다. 왠지 더 시원한 거 같다. 등산하는 사람들도 없어서 분위기가 고즈넉하다. 전에 남편과 둘이 왔을 땐 산속에서 고라니의 뒷모습을 본 적도 있다. 무섭기도 하고 신비롭기도 한 특별한 기억이었다. 그렇게 저녁 산행의 매력에 폭 빠지게 된 거다. 그날도 우리는 저녁 식사를 일찍 마치고 두 아이와 함께 산에 올랐다. 어스름 저녁 빛이 내려앉은 산은 왠지 모르게 으스스 무섭기도 했다. 너무 늦게 출발했나? 하지만 앞장서서 걷고 있는 남편이 믿음직스러웠다. 힘들다고 찡찡대는 우리 늦둥이 귀염둥이를 끝까지 달래며 앞에서 끌었다 뒤에서 밀었다 책임지고 돌보는 모습이 듬직했다. 붉게 내려온 노을을 찍겠다고 휴대폰을 멀찌감치(노안 때문에)든 남편의 아재 감성 조차 귀여웠다. 이 보석 같은 아이들을 돌보며 함께 늙어갈 우리의 미래를 생각했다. 행복한 마음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후드득 눈물 방울이 떨어졌다.


"엄마 왜 그래? 울어? "

"아니 땀이야."


결혼이 이렇다. 딱 하루 사이에 이렇게 천국과 지옥이 왔다 갔다 한다. 나는 그들이 보여준 그 행복한 모습도 이혼한 모습도 모두 진짜라고 생각한다. 천국이 지옥을 상쇄하지 못할 때, 지옥에서 벗어나는 것이 생존과 직결될 때 이혼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건가. 짐작해본다.


결혼이 그렇다... 그래서 지옥 됐을 때 한 번 참아본다.



햄버거1.jpg 다음날, 모닝빵사다가 또만든 햄버거. 남편은 영원히 못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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