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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지원 Apr 10. 2021

오늘도 이혼 안 하고
코스트코 다녀왔다.

코스트코 20년 다닌 아줌마, 천국지옥 왔다갔다 하며사는 사연

 결혼하고 살면서 이혼은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다? 하늘에 맹세코?        


 천국과 지옥이 한순간에 왔다, 갔다 하는 게 결혼생활이다. 

지옥불이 활활 타는 데 이혼을 생각 안 했다고? 그럴 리가. 뭐 아주 드물게 있다 치고!

 

수없이 많은 순간, 이혼을 생각을 했다. 결혼 7년 만에 집을 사고 집들이를 하는 행복한 날에도 

이혼을 생각했다. (*코스트코 초밥 무죄 선고 사건 참고) 


신혼 때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첫 아이 낳고 거의 미쳐 있었을 때도 남편은 그렇게 따뜻하지 않았다. 

그 시절 싸웠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너 일 그만둬. 더 이상... 이러면 나 너랑 이혼할 거 같다.”      


그 당시 나는 출산을 하러 가면서 방송 4주 분 원고를 미리 준비해 녹화를 해둘 만큼 복귀 의사가 명확했다. 결혼 후, 우연히 연결된 교양 프로그램에서 내 길을 찾은 기분이었는데... 연애를 하면서도 먼저 헤어지자고 말한 적은 없었던 남편이 이혼 얘기를 꺼내자 나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남편도 이혼을 생각한다.

           

어떤 날엔가...  시댁 가족 행사에 가야 하는 날이었는데, 너무 가기가 싫었다. 

그 많은 사람 들 속 며느리, 나 하나. 나에게 너무나 당당하게 요구되는 그 굴욕적인 설거지를 

절대 하고 싶지 않았다. 아마도 내가 설거지하는 거 힘들다고 짜증을 냈을 거고, 

남편은 차 막힐 시간까지 고려해  빨리 출발해야 하는데 내가 서두르지 않자 ‘나 골났다!’ 

그 특유의 표정으로 내 화를 돋았을 거다. 

우리 시아버님, 누구라도 마주 앉기만 하면 말씀을 시작하신다. 

수신제가 치국평천하. 그중 제일은 ‘제가’ 니라! 

우리 부부가 싸워서 가족 모임을 망친다? 상상도 못 할 일이다. 

하지만 나도 그날은 확고했다. 모두 함께 디저트를 먹으며 가족의 추억담을 호호 깔깔 나누는 동안 

싱크대에 머리를 쳐 박고 “언니도 와서 과일 드세요~” 그런 형식적인 멘트나 들으며 하는 설거지만큼은 

절대로, 절대로 하지 않을 거야! 마음먹었다.


남편은 그런 내 결심 따윈 안중에도 없었고, 머릿속엔 온통 아버지를 어쩌나 그 생각뿐이 었을 거다. 

속이 훤히 보였다. 우리는 크게 싸웠다. 싸우다 보니 더 가기 싫어졌다. 어떻게 이렇게 사람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까? 강아지 목줄 당기는 것도 아니고, 어쩜 이렇게 어쩜!!!

 

나는 끝까지 버텼고 결국 남편은 어깨를 툭 떨어뜨리고 아이만 데리고 집을 나섰다.

       

 텅 빈 집에 나 혼자 남았다. 

아이방 침대에 앉아 있는데, 창 밖으로 해가 지는 모습이 보이는 거다. 

빨간 해가 조금씩 조금씩 작아지고 있었다. 멍하니 바라봤다. 

작은 빛이 아주 조금 남았는데도 완전히 사라지는 데는 한참이 걸렸다. 

점점 작아지고 사라지고 그렇게 어둠이 내려왔다. 나는 그 모습을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바라봤다. 

그리고 어둠 속에 남겨진 내 모습은 후회와 눈물로 범벅돼 있었다. 

차라리 그냥 따라나설 걸, 아니 왜 결혼을 했나... 혼란스러웠다. 


결혼을 하면서 이런 작은 순간들이 나를 지옥으로 안내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꽃길만 걷자? 그런 길은 있기는 한 걸까?      


 그렇게 20년이 흘러 아직 이혼하지 않고, 살고 있고 있다. 

이혼 안 한 게 무슨 벼슬이라고 자랑하는 건 아니다. 내 주변에 이혼 후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지인도 있다. 

내가 이혼하지 않은 건, 그래도 가끔... 우리에게 천국이 있었기 때문이다. 

      

 첫 아이 신생아 때 황달에 패혈증까지 와 어려운 순간이 있었다.

신생아실로 남편과 아이를 보러 갔는데, 아이가... 너무나 형편없는 모습으로 집중 치료하는 곳에 

누워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남편의 눈에 눈물을 차오르는 걸 봤다. 

그때 나는 남편과 내가 정말 가족이라는 생각을 했던 거 같다.  


 둘째 아이는 27주 만에 1kg 남짓 이른 둥이로 출산했다. 

그 시절 남편은 병원에서 싸인을 참 많이 했다. 나와 내 아이의 삶에 대한 보증은 

남편의 몫이었다. 한 여름에  태어나 신생아실에 들어간 둘째 아이가 세상에 나온 건,

크리스마스 즈음...  여름부터 가을 겨울까지. 우리는 함께 기다렸다. 

아이를 만나러 병원으로 가는 길 우리는 '시월에 어느 멋진 날에'를 들었다.


널 만난 세상, 더는 소원 없어 바램은 죄가 될 테니까. 

... 이 부분에서 나는 많이 울었다. 


큰 아이 대학 수능을 앞두고 우리는 함께 새벽예배를 다니며 기도했고,  

아! 중학교 때 맹장 터져 갑자기 수술하게 됐을 때, 그 수술실 앞에서 의자에 얼굴 묻고 

힘들어하던 남편 얼굴이... 좋았다. 여섯 군데 논술 시험을 보러 갈 때도 남편은 

아이 손을 잡고 달렸고...  

    

예전에 보던 신문에서 주간지를 하나를 공짜로 보내주는 게 있었는데

그 안에는 명품 광고들이 즐비했다. B발음 계열의 명품 코트 광고였는데 가격이 상당했다.  

 

"오빠 이 코트 가격, 얼마 같애?"

"... 백만 원?"

"이백칠십구만 원."     

"... 합리적이네." 

"오~ 재밌었어! 이혼하고 싶을 때 한번 참아줄게!" 



 어제 코스트코 가서 장본 것들이 냉장고에 꽉 차 있다. 베이컨, 탕종 식빵. 

그리고 어제 동네 마트에서 산 양상추, 토마토까지. 

오랜만에 우연히 샌드위치 재료가 갖춰져 토요일 오늘 아침은

샌드위치를 준비해야겠다.      


이제 일어난 남편이 나를 보며 한마디 한다.      


“너무 열심히 사는 거 아니야?” 

“그러게... 우리 얘기 쓰니까 재밌네. 앞으로도 우리 이렇게  천국, 지옥을 왔다 갔다 하며 살겠지?”

     

“...... ”      

“오늘 아침 샌드위치 어때?”

“좋지”     


2021. 4.10. 토요일 아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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