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트코 20년 다닌 아줌마 장보고 집에 오다 울컥한 사연
광활한 매장 이곳저곳 다니며 이런저런 궁리 끝에 카트를 채워 계산대 앞에 도착하면
나는 한숨 돌리고 다시 한번 생각한다.
'필요 없는 데 혹시 들어간 것이 있나?'
코스트코는 영리하게도 딱 이 지점에 반품 카트라는 걸 갖다 놓았다.
환불하는 것보다는 여기서 반품하는 게 낫겠지요? 하는 듯하다.
시스템의 지시대로 나는 꼼꼼하게 카트 안을 다시 살피고 마음을 굳히고
계산대 위에 물건들을 올려놓는다. 삑삑삑...
계산 총액은 늘 생각보다 늘 거액이다. 나는 깜짝 놀란다.
비슷한 느낌으로 다른 마트에서 장을 보면 십만 원대가 나오는 느낌인데,
코스트코에서는 늘... 그 이상이다.
오래 다녔으니 패키지의 양과 구성이 분명 다르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그래도 항상 놀란다.
내가 돈을 안 버니 왠지 모르게 남편에게 미안해진다.
엄마로서의 어떤 희생, 그런 걸 어필하려는 건 진짜 아닌데,
솔직히 나 행복하자고 사는 것들은 별로 없다. 오히려 이 재료들은 모두 내 숙제들이다.
사 먹거나 배달을 시키면 편하겠지만, 그래도 전업주부인 내가 움직여서 가족 건강도 챙기고,
맛있는 걸 먹고 싶은 만큼 먹게 해주고 싶은 것뿐이다.
48000원짜리 족발 시켰다가 나는 두 점 먹었나? 하여간 먹은 것도 아니고 안 먹은 것도 아니라며
모두 허탈해했던 순간이 있었다. 인정해야 한다. 우리 가족은 많이 먹는다.
열심히 장을 보자.
나를 위해 사는 것들이라고 해봐야 운동화, 놀이터 가서 보초 설 때나 재활용 쓰레기 버리러 갈 때 막 입고
다닐 와이드 팬츠(코스트코는 이런 종류 바지를 참 저렴한 가격에 열심히 제공하는 느낌이다),
일 년에 한두 번 피지오겔, 아니면 AHC 크림, 저렴한 스킨류들... 대학생 딸도 착하게 나와 함께
이런 코스트코에서 파는 화장품을 사용해주니 나는 화장품 대량 구매에 주저함이 없다.
어쨌든 다 필요한 것들이다.
주부의 가사 노동에 대한 권리를 모르는 바 아니다.
이 돈을 쓰는 것에 대해 난 정말 미안할 필요가 1도 없다.
하지만 우리는 가족이니까,
돈 버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고된지 모르는 바도 아니고...
작년 말, 우연히 지인을 통해 특성화고 아이들을 위한 교육 콘텐츠 관련 원고 작업이 들어와
며칠간 일을 할 수 있었다. 일 하고 싶다고 노래를 부를 땐 몰랐는데,
하다 보니 생각보다 힘든 거다.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다.
예전에 너무 많은 원고를 써야 했던 시절,
나는 원고가 쓰기 너무 싫다는 글을 써 싸이월드에 올리기까지 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운명처럼 찾아온 또 한 번의 출산과 육아로 '일'은 엄두도 낼 수 없는
상황에 처했고, 마감이 있던 시절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어느 날엔가 너무 슬퍼서 그 글을 찾아 프린트해 부엌 주방에 붙여두고
매일매일 읽었다. 너 이렇게 쓰기 싫어했잖아! 지금은 안 써도 되니 얼마나 좋아!
속으로는 기도했다. 다시 마감이 있는 삶 살게 해 주세요!
막상 쓰면 힘들고, 쓸 수 없게 되면 쓰고 싶은 나는 청개구리인 모양이다.
원고 작업을 하느라 며칠 동안 아이랑 공원도 못 가고, 반찬도 시켜먹고, 빨래는 쌓이고...
식탁의 행복이었던 가족의 긴 수다도 사치, 넷플릭스도 맘대로 못 보고,
낮에 잠깐 졸지도 못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무엇보다 오랫동안 일을 쉬었던 터라 과연 클라이언트가
내 원고를 좋아해 줄지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이렇게 쓰는 게 맞는 걸까? 고민하는 시간이 길었다.
다시 한번 돈을 번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절감했다.
그래도 오랜만에 느낀 성취감은 분명 달콤했다.
원고료를 받고 나니 또 쓰고 싶다는 마음도 들고...
"오늘 코스트코에서 산 것들 중 나를 위한 건 별로 없어...
근데 그래도 어쨌든 고마워... 우리 이렇게 잘 먹고 입을 수 있게 해 줘서...
나는 이제... 엄마로서의 삶만으로도 벅찬 거 같거든... "
자동차 트렁크에 장본 것들을 가득 싣고 집을 향해 출발할 때
나는 유희열의 '뜨거운 안녕'을 반복 재생한다.
라이브 버전이라 환호성이 들린다. 볼륨을 높이라는 가사에 나는 볼륨을 높인다.
차 안 가득 환호성이 울려 퍼진다. 마치... 나를 응원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소중했던 내 젊음아 이젠 안녕...
찬란하게 반짝였던 시간들, 방황하며 두려웠던 순간들,
어둠 속에서 성취했던 순간들, 사라져.
이젠 국을 끓이자! 깨끗하게 청소하자! 가족 건강을 위해!
놀이터에서 보초를 서자! 문제집 채점을 하자! 내 아이를 위해!
바보처럼 울지 말자! 나를 위해서. 또 나를 위해서!
초라하다고 생각하지마
얼마나 대단한 일인데, 얼마나 힘든 일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