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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지원 Apr 06. 2021

코스트코 장 보고 오는 길
'뜨거운 안녕'을 듣는 이유

코스트코 20년 다닌 아줌마 장보고 집에 오다 울컥한 사연


 광활한 매장 이곳저곳 다니며 이런저런 궁리 끝에 카트를 채워 계산대 앞에 도착하면

나는 한숨 돌리고 다시 한번 생각한다. 


'필요 없는 데 혹시 들어간 것이 있나?' 


코스트코는 영리하게도 딱 이 지점에 반품 카트라는 걸 갖다 놓았다. 

환불하는 것보다는 여기서 반품하는 게 낫겠지요? 하는 듯하다. 

시스템의 지시대로 나는 꼼꼼하게 카트 안을 다시 살피고 마음을 굳히고  

계산대 위에 물건들을 올려놓는다.  삑삑삑... 

계산 총액은 늘 생각보다 늘 거액이다. 나는 깜짝 놀란다.  

비슷한 느낌으로 다른 마트에서 장을 보면 십만 원대가 나오는 느낌인데,

코스트코에서는 늘... 그 이상이다. 

오래 다녔으니 패키지의 양과 구성이 분명 다르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그래도 항상 놀란다.

내가 돈을 안 버니 왠지 모르게 남편에게 미안해진다. 


 엄마로서의 어떤 희생, 그런 걸 어필하려는 건 진짜 아닌데, 

솔직히 나 행복하자고 사는 것들은 별로 없다. 오히려 이 재료들은 모두 내 숙제들이다. 

사 먹거나 배달을 시키면 편하겠지만, 그래도 전업주부인 내가 움직여서 가족 건강도 챙기고, 

맛있는 걸 먹고 싶은 만큼 먹게 해주고 싶은 것뿐이다.

48000원짜리 족발 시켰다가 나는 두 점 먹었나? 하여간 먹은 것도 아니고 안 먹은 것도 아니라며 

모두 허탈해했던 순간이 있었다.  인정해야 한다. 우리 가족은 많이 먹는다. 

열심히 장을 보자.


나를 위해 사는 것들이라고 해봐야 운동화, 놀이터 가서 보초 설 때나 재활용 쓰레기 버리러 갈 때 막 입고 

다닐 와이드 팬츠(코스트코는 이런 종류 바지를 참 저렴한 가격에 열심히 제공하는 느낌이다), 

일 년에 한두 번 피지오겔, 아니면 AHC 크림, 저렴한 스킨류들... 대학생 딸도 착하게 나와 함께 

이런 코스트코에서 파는 화장품을 사용해주니 나는 화장품 대량 구매에 주저함이 없다. 

어쨌든 다 필요한 것들이다.

주부의 가사 노동에 대한 권리를 모르는 바 아니다. 

이 돈을 쓰는 것에 대해 난 정말 미안할 필요가 1도 없다.   

하지만 우리는 가족이니까, 

돈 버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고된지 모르는 바도 아니고...


작년 말, 우연히 지인을 통해 특성화고 아이들을 위한 교육 콘텐츠 관련 원고 작업이 들어와 

며칠간 일을 할 수 있었다. 일 하고 싶다고 노래를 부를 땐 몰랐는데, 

하다 보니 생각보다 힘든 거다.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다. 


예전에 너무 많은 원고를 써야 했던 시절, 

나는 원고가 쓰기 너무 싫다는 글을 써 싸이월드에 올리기까지 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운명처럼 찾아온 또 한 번의 출산과 육아로 '일'은 엄두도 낼 수 없는 

상황에 처했고, 마감이 있던 시절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어느 날엔가 너무 슬퍼서 그 글을 찾아 프린트해 부엌 주방에 붙여두고

매일매일 읽었다. 너 이렇게 쓰기 싫어했잖아! 지금은 안 써도 되니 얼마나 좋아! 

속으로는 기도했다. 다시 마감이 있는 삶 살게 해 주세요! 

막상 쓰면 힘들고, 쓸 수 없게 되면 쓰고 싶은 나는 청개구리인 모양이다.  

 

원고 작업을 하느라 며칠 동안 아이랑 공원도 못 가고, 반찬도 시켜먹고, 빨래는 쌓이고...

식탁의 행복이었던 가족의 긴 수다도 사치, 넷플릭스도 맘대로 못 보고, 

낮에 잠깐 졸지도 못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무엇보다 오랫동안 일을 쉬었던 터라 과연 클라이언트가 

내 원고를 좋아해 줄지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이렇게 쓰는 게 맞는 걸까? 고민하는 시간이 길었다.

다시 한번 돈을 번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절감했다.     


그래도 오랜만에 느낀 성취감은 분명 달콤했다. 

원고료를 받고 나니 또 쓰고 싶다는 마음도 들고... 


"오늘 코스트코에서 산 것들 중 나를 위한 건 별로 없어... 

 근데 그래도 어쨌든 고마워... 우리 이렇게 잘 먹고 입을 수 있게 해 줘서... 

 나는 이제... 엄마로서의 삶만으로도 벅찬 거 같거든... "


자동차 트렁크에 장본 것들을 가득 싣고 집을 향해 출발할 때 

나는 유희열의 '뜨거운 안녕'을 반복 재생한다. 

라이브 버전이라 환호성이 들린다. 볼륨을 높이라는 가사에 나는 볼륨을 높인다. 

차 안 가득 환호성이 울려 퍼진다. 마치... 나를 응원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소중했던 내 젊음아 이젠 안녕...

찬란하게 반짝였던 시간들, 방황하며 두려웠던 순간들, 

어둠 속에서 성취했던 순간들, 사라져.


이젠 국을 끓이자! 깨끗하게 청소하자! 가족 건강을 위해!

놀이터에서 보초를 서자! 문제집 채점을 하자! 내 아이를 위해! 

바보처럼 울지 말자! 나를 위해서. 또 나를 위해서! 


초라하다고 생각하지마 

얼마나 대단한 일인데, 얼마나 힘든 일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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