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트코 한우 사태로 끓이는서너 가지국 요리법!
서른아홉에 둘째를 낳고 산후조리를 할 때까지도 나는 국을 제대로 못 끓였다.
산후조리 도우미분이 끓여주고 가는 미역국 한솥을 정말 감사한 마음으로 아껴먹었다.
그렇다고 전혀 뭘 못해먹었다는 건 아니고 고기부터 두드리고 식빵을 갈아 만든 돈가스,
각종 스파게티, 카스텔라 정도의 제빵 등 뭐 나름 이것저것 요리에 매진을 하면서도
국 끓이기만큼은 어쩐지 깨달음이 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모든 사건은 늘 그렇듯 '그러던 어느 날' 시작된다!
동네 마트에서 한우 양지 몇 점(?)을 팩에 담아 파는데 만몇천원인 거다.
으잉? 요리프로에서 봤는데, 이런 걸 참기름에 볶아서 물 붓고... 미역국을 끓이던데 나도 해볼까?
그렇게 나의 국 끓이기는 시작됐다. 맨날 미소된장국만 끓여주던 엄마가 갑자기
고기 미역국을 내놓자, 아이들이 엄청 좋아했다.
"엄마, 나 미역국 좋아하는데!"
국! 국을 잘 끓여야 진정한 밥 고수가 되겠구나!
들인 노동에 비해 결과가 훌륭하다. 속도 든든하고, 남은 국이 냉장고에 있으면
어찌나 마음에 위안이 되던지... 국, 너 굿이다!
이제 적어도 코스트코 한우 양지, 사태 정도는 휙휙 돌리며 카트에 던져 넣고 싶다는 열망이 타올랐다.
그렇게 나는 코스트코 한우 코너에서 사태와 만났다.
솔직히 코스트코에서 쳐다보지도 않고 지나치는 코너가 바로 한우를 파는 곳이다.
진짜 너무 비싸다! 안심 두 덩이 가격이... 후덜덜. 암튼 난 그걸 커플 통닭 사듯 살 수는 없는 지라
구워 먹는 고기는 트레이더스에서 호주산으로 사다 먹는다.
말이 나온 김에
예전에는 코스트코에서 호주산 소고기를 팔았었는데, 지금은 모두 미국산으로 바뀌는 바람에
두 주에 한 번은 트레이더스 장도 봐야 해서 어쩔 땐 좀 불편하다 싶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덕분에 새로운 먹거리를 탐험하게 된다. 색다른 즐거움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비비빅과 메로나 세트 같은 건 코스트코엔 없지 않은가!
비비빅을 먹다가... 깜짝 놀랐다. 통통한 팥알이 이렇게나 많았어?
온 집안의 귀신이 물러간 듯한 이 기분.
오래된 크리스천도 뿌리 깊은 토속 신앙에 가끔 영향을 받는다. ㅎㅎ
하여간 코스트코 한우 코너에서 사태 한 덩이를 집어 들 때 왠지 벌써
국물 요리의 고수가 된 듯 행복감이 밀려온다!
"사태야, 나는 너를 왜 이제 만났을까!"
이 큰 고깃덩이를 사다가 어떻게 가정집에서 소진시킬 수 있을까 그런 우려를 할 분들이 계실 거 같아
오늘의 사태 특강을 한번 기획해봤다. 이미 알고 계신 분들은... 패스하시길!
일단, 4인 가족이라면 사태의 반을 잘라 찬물에 담가 핏물을 뺀다.
그리고 나머지는 한번 먹을 양으로 잘라서 지퍼락에 담아 공기를 쫘~악 빼고 냉동실에 고이 둔다.
고이 둬야 할 만큼 사태 한 덩이는... 얼마나 비싸게요!
이제 큰 냄비에 물을 가득 담고 핏물 빠진 고기를 넣고 냉장고에 있는 통마늘, 양파, 무와 함께 푹 끓여준다.
한동안 끓이면 국물이 뽀얗게 우러난다. 이게 고기를 건지고
국물에서 함께 끓인 마늘 등등 건더기를 걸려 둔다.
이 고기와 국물! 이것만 있으면 뭐든 할 수 있다.
매운 배추 소고깃국도, 그냥 소고기 뭇국도, 고기국수도, 심지어... 마라탕까지!!!!
푹 끓여 건진 사태고기를 얇게 썰어 한주먹 통마늘을 꽝꽝 다져 넣고,
파 썰어 넣고, 통깨, 고춧가루, 후추, 까나리액젓을 넣고 무친다.
뽀얀 국물에 무친 고명을 넣고 알배추를 송송 썰어 넣고 한소끔 끓여주면 끝.
국그릇에 담을 때 쪽파까지 뿌리면... 비주얼 폭발!
까나리액젓으로 간이 됐긴 하지만 입맛에 따라 소금을 추가해 개인적 입맛에 맞게 조절하면 되는데
이 시점에서 나는 갈등을 시작한다.
집밥에 지친 가족들에게 뭔가 부족한 2%를 채워주고 싶단 말이다!
결국 냉장고 문을 열고 자연한 알을 꺼내... 비밀스럽게 퐁당.. 빠뜨려 준다.
자연이니까.. ㅋ 암튼 큰 냄비에 딱 한 알만 넣어도 정말 효과가 어마어마하다!
물론 넣지 않아도 맛있다!
다음 메뉴로는 고기 썰고, 처음에 끓일 때 함께 넣은 무를 썰고 거기다가
다진 마늘, 다진 파, 까나리액젓 조금, 알배추 송송... 이렇게 넣고 한소끔 끓여 먹어도 맛있고
알배추도 없고 이거 저거 다 귀찮을 땐 클래식한 버전으로
고기 썰고, 무 썰고, 파를 얹어 먹어도 맛있다!
그리고 이 국에 국수를 삶아 넣으면 고기국수가 되는데
고기국수는 무조건 자연한 알이나 참치액젓을 넣어야 파는 맛이 난다는 것. 어쩔 수 없다!!!
마지막으로
달군 기름에 다진 마늘, 송송 썬 파, 버섯류, 알배추... 냉장고에 있는 각종 야채를 썰어 볶다가
마트에서 파는 마라 소스를 넣고 또 볶고..
그리고 만들어둔 사태 고깃국물을 붓고 썰은 고기와 숙주를 얹으면 얼추 마라탕 완성이다!
큰 딸에게 들었는데,
Z세대는 마라탕 먹는 걸 마라탕 수혈한다고 한단다!
너희들은 마라탕을 못 먹으면 죽는다는 거냐?
코로나 블루가 올라왔는지 가끔 얼굴이
어두워지는 딸을 보게 된다.
그럴 때 갑자기 주방을 점령하고 이걸 직접 만들어 끓여먹는데, 다행히 먹고 나면 스트레스가 풀린 듯 속이 후련해 보인다.
어쨌든 음식으로라도 뭔가 풀린다면... 먹어야지! 아니 수혈을 받아야지 ^ ^
사태 국물이 없을 땐 시판 곰탕국물로도 뚝딱 만들어 먹는다. 시판 곰탕국물이 백배 맛있다고 한다.
참고로 나는 양지보다는 사태를 선호하는 편이다.
양지는 삶은 고기를 찢어서 국을 만들고, 사태는 얇게 썰어서 국을 만드는데
사태가 아무래도 식감도 좋고, 변형해 다른 음식을 만들기도 좋다.
혹시 이번 주 코스트코에 가신다면,
일 년 열두 달 매주 한우 사태를 사다 국을 끓인 국 요리의 고수라도 되는 듯
핏물 가득한 한우 사태 한 덩이를 카트로 휘익 던져 넣어보시길!
"저는... 요리의 고수는 절대 아닙니다. 저보다 현란한 방식으로 더 맛있는 국을 끓이실 분들이
이 세상에 어마어마하게 많다는 걸 알지만, 코스트코의 한우 사태 한 팩으로 즐길 수 있는
정말 쉽고 다양한 국 요리법을 알려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