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없는 국가의 존재가능성 & 국기에 대한 맹세 & 만장일치 사회
1. 군대가 없는 국가는 존재할 수 있는가?
군대: 국가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공인된 무력 사용이 가능한 군인으로 구성된 국가 조직이다. 군대는 물리적 폭력수단을 합법적으로 독점하고 있는 최상위의 권한을 가진다.
존재 목적: 국가와 국민의 안전 보장, 위기로부터의 보호
국민으로부터 파생된 국가와 ‘사회적 사실’의 개념에서 보았을 때의 군인이 보호하는 국가는 사회적 사실 개념의 국가에 가깝다. 두 나라의 국민들 간의 갈등해소를 위해 군인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보다 두 국가의 갈등해소를 위해 군인이 존재한다는 말이 더 잘 어울리는 이유이다. 먼저 군대의 필요여부를 평가하는 기준을 생각해봐야 한다. 1. 필요의 당위성 feat. 군대의 개념자체가 존재 의미이다. 2. 필요의 효율성 feat. 경제적 논리, 유지비, 효율성
사실 두가지 기준 모두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국가의 존속을 위해 당위적으로 필요하다면, 이 1번의 질문 에 대한 답은’ 군대 없는 국가는 당연히 존재할 수 없다’ 이다. 효율성으로 평가할 수 있는 문제라면, 국가안전보장을 위해 군대가 아닌 더 효율적인 방법이 존재한다면, 당연히 군대는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 문제의 답도, 사실 정해져 있다. 지금까지 더 효율적인 방법이 없었기에 지금까지 존재가 유지된 것이기 때문이다. 안전보장을 담보할 수 있는 대안이 없다면, 국가가 없는 군대는 존속할 수 없다. 군대라는 개념은 미시적으로는 폭력, 거시적으로는 패권이라는 개념과 연관된다. 합법적인 폭력의 수단이자 폭력을 억제하는 방파제이며, 패권의 도구이자, 또 다른 도전자의 등장으로 인한 혼란을 막는 방파제이다. 명백한 부작용과 명확한 필요가 있다.
역사적으로도 군대의 발전은 인권의 발전과 그 궤를 같이한다. 다수의 선진국들 중 대한민국 만큼 자국민이 자국 군대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는 나라는 많지 않다. 독재의 수단이었던 지울 수 없는 역사가 그 명예를 훼손했다고 생각하지만, 어디까지나 현대의 군대는 헌법의 가치아래, 국민의 권익을 위해서만 움직이고 희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직에게 보장된 합법적인 폭력의 권리는 성숙한 민주주의를 기대하는 일반국민들에게 불안한 요소로 보일 수밖에 없다. 그 불안감을 해소시켜 주지 못하고 있다면 그 책임도 군대에게 있을 것이다. Feat. 전두환. 조금 더 멀리 보고, 합리적인 군축, 외교능력의 배양, 책임과 전문가들로 구성된 군대의 모습이 이상적이라고 말할 수는 있어도, 아직까지 군대 없는 국가가 존재할 수 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우리나라는 1907년 군대해산 이후 강점이 끝나는 그날까지 군대를 가지지 못했다. 어떻게 보면 군대는 주권국의 상징이다. 아마 짧은 역사속에서, 군인의 가치에 대한 논의가 부족하고 성숙한 민주주의와 합법적인 폭력적기구간의 완력싸움으로 실망한 국민들의 생각이 결국 군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으로 자리잡았다고 생각한다. 아니면, 인간 개인 과 조직이 배타성이라는 개념을 머리속에서 지울 수 있을 때, 폭력이 아닌 대화와 타협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거나, 상대방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라도 믿는 순간이 오면 개인적 자위적 수단이 필요하지 않고, 조직의 자위수단도 필요하지 않기에 자연스레 군대가 필요 없게 될 것이다.
2. 국가는 폭력적인가? – 국기에 대한 맹세 고치기 & 국민을 대체할 말 찾아보기
국기에 대한 맹세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 합니다.
한국사람의 선서
나는 스스로의 바람직하고, 평화로운 삶을 추구하고 존중과 공감을 통해 타인을 이해하며, 이를 통해 오늘 보다 더 나은 대한민국을 만들 것이다.
국민을 대체할 개념을 생각해보면, 그간 등장했던 인민, 시민 모두 사실 주권자의 개념보다 결국 소속감을 강조하는 말이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인민은 국가가 아닌 집합적인 존재의 소속감, 시민은 분화된 지역사회, 중심적이지 않은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개념이 강하다. 통용가능한 개념 중에 고르자면, 시민이란 말이 그나마 가장 마음에 든다. 만일 아예 개념적으로 바꿀 수 있다면, 사람이라는 말을 쓰고 싶다. 인간이라는 종족적인 개념보다 사람이라는 사회적 개념이 더 부드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한 개체의 독립성과 개체성을 보장하며 그에 따른 개체적 주권의 개념을 확립하는 단어이다. 주권을 가진 개체는 행위의 책임과, 권리를 모두 가지며, 자주성이 극대화된다.
3. 만장일치 사회는 유토피아 인가 디스토피아 인가? 이상사회란 무엇인가?
만장일치 사회는 완전한 디스토피아 라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일치되지 않음이 가지는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지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장일치 사회를 유토피아로 보는 입장은 아마, 다름 속에 발생하는 혼란과, 폭력의 필요하지 않음을 말할 것이다.
기본적으로 사람은 완전히 같을 수 없고, 대의 민주주의 라는 말도 안되는 큰 집단으로 나누어 그 집단끼리 의견을 합치라고 해도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같은 사람들끼리 사는 것은 물론 편하다. 그러나 같음은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앞으로 나아가는 방향이 같다면 그 이유는 모두의 의견이 같아서가 아니라, 다름을 존중할 줄 알고 서로가 포기한 것이 조금씩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을 포기할 수 있는 이유는 다른 의견도 존중될 수 있다는 믿음, 어느 순간에 내 의견 또한 고려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그런 각각의 다른 의사결정 과정 속의 판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만장일치는 모든 문제를 YES or NO 의 문제로 바꾸어 버린다. NO는 완전히 배제되며, YES 는 칭송된다. 브레이크 없는 바퀴 이거나, 매 결정이 큰 산을 넘어야 하는 비효율의 극치일 수 밖에 없다. 이상사회는 다름의 존중을 바탕으로, YES 와 NO 가 아니라, 스펙트럼의 영역에서 최대한 각각 모두의 피해를 줄이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을 고려하는 사회일 것이다. 충돌과 혼란은 필수적이며, 분열과 갈등도 수반할 것이다. 그러나 충돌을 위한 충돌, 갈등을 위한 갈등을 경계한다면, 선택과 결정은 극단적이지 않을 것이고 적어도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할 수 있는 사회를 담보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