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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작가 May 29. 2020

누가 준영이를 침묵하게 만들었는가

전주국제영화제 한국 단편 경쟁 부문 <나의침묵> 리뷰


"얼굴 봤어?" 자기 전 준영이가 동생에게 묻는다. 동생은 준영이를 바라보고, 카메라는 진득하게 준영이의 얼굴을 클로즈업해서 담아낸다. 오직 스릴을 추구하는 영화라면 '사실은 언니가 범인이었다' 정도의 클리셰적 대사일 테지만 <나의 침묵>에서는 어쩐지 구슬프다. <나의 침묵>은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소녀가 '진짜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서늘하고 아픈 이야기다.

지하실이라는 공간

 <나의 침묵>의 이야기는 대부분을 지하실에 할애한다. 이 공간은 느닷없이 준영이를 덮쳐온 실체 없는 괴물이자, '괜찮다'라고 말해줄 어른의 존재가 부재한 준영이를 둘러싼 사회이다. 놀이터에서 동생과 놀고 있는 준영이에게 학급 친구들이 다가온다. 아이들은 좋은 아파트에 살지 않는 준영이를 무시한다. 급기야 아파트 지하실의 귀신을 증명하라고 말한다. 준영이는 친구들에게 얼떨결에 한 거짓말 때문에 동생과 지하실로 향한다. 그러나 준영이는 으슥한 지하실의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뛰쳐나온다. 동생을 데리고 나왔다고 생각했지만 손에 남은 건 동생의 옷뿐이다. 준영이는 동생을 찾기 위해 지하실로 내려간다. 마지막에 지하실로 향할 때와 성격이 약간 다른데, 이때의 준영이는 동생을 모르고 놓고 온 언니로서의 '도의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혼자가 된 준영이는 더 큰 공포를 마주하고는 의도치 않게 동생을 다치게 한다. 놀란 준영이는 집으로 도망치고, 동생과 먹다 남은 시리얼 그릇을 치우는 듯하면서 흐르는 물에 손을 박박 닦는다. 마치 자신의 잘못이 물에 씻겨 내려가길 바라는 것처럼. 이 모든 일이 원래 없던 일이 되기를 바라는 것처럼. 물이 아닌 다른 것으로는 씻어낼 수 없는 것처럼. 동생의 얘기를 할 틈을 주지 않는 바쁜 엄마와 통화를 끝내고 나자 장난감 핸드폰으로 동생에게서 연락이 온다. 준영이는 다시 지하실로 향한다.


 이때부터 '엄마'는 준영이에게 필요한 존재가 아니며, 온전히 스스로의 의지로 동생을 찾으러 나서게 된다. 해는 저버렸고, 지하실은 더욱 캄캄해졌다. 준영이는 자물쇠로 단단히 잠긴 철장을 부수고 들어간다. 이것은 준영이를 둘러싼 어두운 세계로 걸어 들어가는 행위이다. 그 끝에 어떤 것이 덮쳐올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안고 장난감 핸드폰 소리에 의지한 채 한 발 한 발 내딛는다. 눈에 눈물을 가득 머금고 동생을 찾는 준영이가 애처로워지기 시작한다. 음침한 사운드가 지하실의 체험을 극대화하지만 준영이가 느끼는 외로운 공포가 맞물리고, 관객은 장면과 인물 사이에 괴리감을 느끼게 된다.그 누구도 이 상황을 해결해 줄 수 없다는 불안과 지하실로 자매를 몰아넣은 사회라는 괴물 앞에서, 준영이는 홀로 맞선다. 동생이 준영이의 옷깃을 잡고 나타나면서 나란히 집으로 돌아오고 큰 사건은 일단락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어둠 속에 버려진 기억을 안고 살아갈 자매에게 본격적인 지하실의 악몽은 지금부터일 것이다.


트라우마의 산실, '첫째'의 역할

 태어날 때부터 첫째인 사람은 없다. 태어나고 나니 첫째였고, 그 밑에 동생이 생길 뿐이다. 그런데 많은 부모들은 첫째에게 '태생이 첫째'인 것처럼 대한다. 맏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을 해결해 주길 바라고, 그것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것은 '의젓하지 못한 행동'으로 규정한다. 준영이가 집에 도망치듯 들어왔을 때 정리 안 된 주방에서 엄마의 부재가 여실히 드러난다. 준영이가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전화했을 때 '동생을 잘 돌보라'라는 얘기를 듣고, 차마 동생이 잘못됐다는 이야기를 할 수 없게 된다. 엄마는 전화를 끊을 때까지 준영이의 안부는 묻지 않는다. 아빠에게는 전화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아빠가 아예 부재할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동생과 집에 돌아왔을 때 반기는 건 엄마뿐인 걸 보면 거의 확실시된다. 그런데 문제는 편부모인 것이 아니라 엄마가 동생만 다독인다는 것에 있다.


 준영이가 밤에 지하실로 향할 때 엄마와 딸이 나란히 서있는 것을 보는 장면이 있다. 어디선가 쇼핑을 하고 온 듯한 모녀는 다정해 보인다. 그때 준영이는 무얼 생각했을까. 부러움, 질투, 외로움 등 복합적이겠지만 준영이가 홀로 지하실로 나서기로 마음먹은 순간부터 엄마는 없는 존재가 된다. 지하실의 괴물은 스스로 물리쳐야 하는 것이다. 준영이는 의젓하고 울지 않으며, 엄마를 실망시키지 않는 어른으로 성장할 것이다. 그 길고 긴 어둠 속에서 끝끝내 눈물 한 방울을 흘리지 못하는 준영이가 가엽다.

 준영이에게 지하실의 세계란 사는 곳으로 계급을 가르는 사회이기 이전에, 원치 않은 책임감을 일찍부터 짊어지워 버린 ''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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