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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숲 Jan 09. 2019

이웃과 아침인사하는 길고양이가 있는 풍경

아침조깅을 하러 가는 길, 비슷한 자리에서 자주 보는 까만고양이가 있다. 열 발자국 정도, 일정한 거리만 유지하면 까만고양이는 도망가지 않는다. 나를 위험인물로 의식하지 않는 까만고양이, 내가 녀석을 본 횟수보다 이 녀석이 날 관찰한 횟수가 더 많았을 것이다. 뭘 쫒는지 잔디밭을 이리 저리 뛰어다니다가, 내가 가만히 쪼그리고 앉아 녀석을 바라보자, 까만고양이도 하던 일을 멈추고 나를 바라본다. 


아침 조깅 길에 만나는 까만고양이.


안녕, 소곤거리는 인사에 까만고양이는 잔디밭에 몸을 낮추고서는 나를 주의 깊게 바라보기 시작한다. 도망가지는 않지만, 거리를 좀체 좁히지 않는 녀석의 마음이 불안하지 않도록 천천히 일어나 가던 길을 갔다. 뒤를 힐끗거리며 바라보니, 내가 가는 방향대로 까만고양이의 시선이 따라오고 있다. 귀여운 녀석, 아침조깅의 시작이 고양이파워로 행복해졌다.


어떤 날에는 버려진 가구 옆에서 느긋하게 누워있다. 저벅저벅, 내 발소리를 저 멀리서부터 들었을 터인데, 가구에 제 얼굴과 몸을 비벼대고 바닥을 이리저리 뒹군다. 이번에도 역시 나와의 안전거리는 열 발자국 정도. 안녕, 인사를 건네도 보는 둥 마는 둥, 지금은 버려진 가구에 제 몸을 비벼대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일이다. 고양이파워 충전!


날씨가 꽤 쌀쌀해 진 뒤, 한 동안 보이지 않았던 까만고양이를 다시 만났다. 이른 아침 외출을 위해 이제 막 문을 열고 나온 사람의 다리 주변을 맴돌며 제 몸을 비벼대고 있다. 얼마나 반가운지 꼬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몸을 비벼대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만면 가득 미소를 짓는 여자는 익숙한 일인 양, 까만고양이를 쓰다듬으며 녀석의 환대에 정성껏 답한다. 헬로우, 키티, 헬로우. 그 뒤로도 몇 번은 더 여자와 까만고양이의 격렬한 조우를 행복한 마음으로 바라보곤 했다.  




내가 사는 빌라 단지에는 길고양이들이 많다. 한국에서와는 다르게 길고양이들이 많이 보인다. 고양이들이 숨고자 마음먹으면, 사람들의 눈에 절대 띄지 않는다. 길고양이가 느긋하게 걸어가는 모습을 보았다면, 그것은 녀석들이 그 장소에 위협을 느끼지 않는다는 뜻이다. 내가 길고양이와의 거리를 좁혀 녀석을 바라본 것이 아니라, 녀석이 나를 허락한 것이다. 


거실 책상 앞에 나 있는 큰 창문으로는 사람들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어슬렁거리는 회색고양이를 자주 목격한다. 큰 몸집에 그 시간의 이 주변 영역을 장악했을 녀석은-일반적으로 길고양이는, 다른 고양이와 마주치지 않기 위해 시간별로 활동하는 영역이 정해져 있다고 한다-사람이 지나가도 숨으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다. 언제는 집 앞 슈퍼를 갔다 오는 길에 회색고양이를 만났다. 터프해 보였던 회색고양이는 나와 다섯 발자국 정도의 거리에도 여유롭게 총총총 걸어간다. 그 모습이 귀여워 뒤를 밟아 보아도 도망갈 기색이 없다.


밤마실을 나갔다가 마주친 새끼고양이도 있다. 야옹-야옹- 연약한 웃음소리에 주변을 살펴보니, 차 밑에 몸을 숨 긴 채 애타게 울어댄다. 한 눈에 봐도 어디가 아픈 녀석이다. 그 옆에는 형제인 듯 새끼고양이와 털색은 같지만, 몸집이 조금 큰 까만고양이가 거리를 두고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가까운 슈퍼에서 새끼고양이용 사료를 사다가 그 자리로 다시 갔다. 길고양이에게 사료를 주는 것도 이웃눈치 안보고 줄 수 있어서 다행스러운 마음이다. 그 자리 그대로 도망가지 않는 애처로운 녀석, 아픈 몸을 하고 겁을 먹은 듯해 보여 사료를 주변에 뿌려두고 자리를 피해줬다. 30분 뒤에 다시 가서 확인해보니, 사료는 다 먹고 없다. 새끼고양이와 까만고양이의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그 뒤로도 일주일간 매일 같은 자리에 사료를 뿌려뒀지만, 언제부터 먹지 않자 사료를 주는 것을 멈췄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밤마실을 나갔던 또 어떤 날, 새끼고양이를 발견했던 같은 자리에서 야옹-야옹-야옹- 우렁차게 울어대는 고양이 소리가 들렸다. 어? 뭔가 다르다. 너무나 가깝게 들려오는 야옹- 소리에 걷는 것을 잠시 멈췄더니, 어둠속에서 까만고양이가 잽싸게 뛰어나와 내 주변을 맴맴 돌고 비벼대는 것이다! 내 신발이고 다리고, 얼굴을 문질문질하는 것을 멈추지 않고, 내가 손을 대면 너무 좋아 펄쩍펄쩍 뛰며 손에다가 얼굴을 갖다 댄다. 너 누구니? 혹시 전에 새끼고양이 옆에 있었던 고양이니? 동생은 괜찮니?


1시간 넘게 놀았던 블랙빈.


발걸음을 집으로 향해도 계속해서 졸졸졸 따라온다.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인도를 고양이들이 걷거나, 심지어 사람을 따라오는 것은 흔하지 않는 일이다. 내 옆을 낯선 사람들이 지나가면 잠시 경계하다가도 나를 따라오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100m 정도 따라왔을 것이다. 새끼고양이를 주려고 사두었던 사료를 집에서 잽싸게 들고 나와 까만고양이에게 주었다. 빌라 단지 뒷편에 있는 넓은 잔디밭까지 녀석을 유인하자, 녀석은 졸졸졸 잘도 따라온다. 한 구석에 사료를 더 뿌려두고, 굿바이 인사를 건네며 집으로 향했지만, 녀석은 사료를 버리고 나를 따라온다. 먹는 것보다 나를 따라오는 녀석의 선택에 마음이 찡하다. 이렇게 반겨주는 길고양이를 처음 만났다. 우리는 1시간 정도 함께 놀았다. 녀석에게 블랙빈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까만콩처럼 귀엽고 작은 녀석. 


다음 날 아침에는 눈이 펑펑 쏟아졌다. 추운 날씨에 블랙빈이 염려됐다. 한편으로는 오늘 이렇게 눈이 올 줄 알고 나를 따라온 건가 싶어 마음이 아팠다. 행여 그 뒤로 블랙빈을 만나면 집으로 데려올 마음으로 입양 전, 간단한 건강진단을 해주는 몇 군데 시설을 알아봤지만, 그 뒤로 블랙빈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빌라 단지 내에 까만고양이가 많이 보여서 그 고양이들 중 하나가 블랙빈일 수도 있지만, 나에게 다가오지 않는 이상 그 녀석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일까, 생각할수록 코끝이 찡해지는 소중한 경험. 내가 더 고맙다. 


요즘에는 고양이가족들이 자주 보인다. 꼬물꼬물 뛰노는 꼬물이들과 그 곁을 지키는 큰 고양이 두 마리. 이 고양이가족들이 같은 현관문 앞 잔디밭에서 놀고, 그 현관문을 발로 긁는 것을 보았다. 아마 그 집에서 돌보는 녀석들일 터다.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꼬물이들은 노느라 정신이 없고, 큰 고양이 두 마리는 다가가는 나를 늘 예의주시한다.


아침조깅을 하러 가는 길, 동네 슈퍼를 다녀오는 길, 밤마실을 나가는 길, 나에게는 까만고양이, 회색고양이, 새끼고양이, 고양이가족 그리고 블랙빈, 길고양이 친구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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