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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숲 Jan 07. 2019

고양이 풀 뜯어 먹는 소리


집에는 항상 파릇파릇한 싱그러운 초록이들이 있다. 관상용이 아니더라도 철마다 채소들도 키운다. 봄 되면 흙을 사고, 씨를 사고, 싹을 틔워 금이야 옥이야 키우는 마음. 미국살이, 깻잎이 그리워 씨부터 키운 깻잎은 본잎을 내보인다. 레몬을 쓰고 나온 씨도 틔운다. 꾸물꾸물 잎을 내는 꼬꼬마 레몬트리를 보는 즐거움. 줄기번식을 시도한 스킨답서스가 힘을 내길 바라며 매일 말을 건다. 


‘아그작 아그작  샤각 샤각’


싸-한 기분이 드는 어느 날 아침, 깻잎화분은 바닥에 쏟아져 널부러져 있고, 파릇파릇 레몬이파리와 스킨답서스 이파리는 키라라가 깨문 상처가 여기저기. 향이 강해 싫어할 것만 같았던 바질화분마저도 아침에 일어나면 바닥에 나뒹굴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몇 개월 동안 들인 정성만큼, 키라라에게 치미는 화와 원망! 키라라에게 닿지 않게 치운다고 치운 화분 자리도 고양이의 호기심 앞에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으악, 키라라!”



몇 번 반복됐던 초록이들 쟁탈전에 키라라도 내가 초록이들을 아끼는 것을 알고 있다. 내 목소리가 들리자 후다닥 몸을 숨기는 키라라. 놀아 달라, 관심을 끌기 위한 미운짓 리스트 3위 정도를 차지한다.


자꾸만 사랑스러운 초록이들을 탐하는 더 사랑스러운 키라라와의 티격태격이 준 교훈, 초록이들을 양보할 수 없다면, 키라라를 위한 식물을 키워보자. 




고양이는 주기적으로 헤어볼을 토해낸다. 하루 몇 번씩이나 몸단장을 한다고 그루밍을 하는 고양이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털을 먹게 되는데, 이렇게 소화기관 내 쌓인 털을 주기적으로 토해내는 것. 헤어볼 방지 약도 있고 사료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가장 자연스러운 것은 식물 섭취를 통한 헤어볼 방출이다. 


야생의 고양이는 식물 섭취를 통해 몸 안에 있는 헤어볼을 몸 밖으로 방출한다. 그러니 본능적으로 호시탐탐 식물을 탐하는 키라라를 탓할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키라라는 야외 산책을 할 때도 마음에 드는 식물을 발견하면 아그작 아그작 씹어 댔다. 뻣뻣한 잔디부터 이름 모를 크고 두꺼운 화초들 까지. 괜찮을까, 불안하면서도 이때다 싶어 가열차게 씹어대는 모습이 신나보여서 그냥 두고 보곤 했다. 


고양이 식물, 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몇 가지 식물이 있다. ‘캣그라스’와 ‘캣닢’이다. 캣그라스는 귀리를 말하는데, 귀리를 심어놓으면 며칠 지나지 않아서 쑥쑥 자라난다. 이게 웬일. 무럭무럭 자라난 캣그라스에 관심이 딱히 없는 것이다. 싱그러운 캣그라스를 킁킁거리며 코로 슥슥 식물의 촉감을 느껴보더니 시큰둥, 지나쳐 버린다. 호기심에 한 번 씹는 듯도 했지만, 다시 찾지는 않았다. 추측해보자면, 캣그라스는 키라라가 좋아하는 아삭아삭한 식감이 없이 보드러운 편이다. 캣그라스라도 모든 캣이 좋아하지는 않는구나.



그렇게 또 식물을 두고 키라라와 티격대격 하던 중, 재미삼아 키운 고구마가 넝쿨이 되어 벽을 타고 내려오자 키라라가 야무지게 씹어 대는 것을 발견한다. 오? 고구마를? 그러고 보니, 키라라는 이파리가 넓적한 종류의 식물을 선호했다. 고구마의 넓적하고 아삭아삭한 이파리가 꽤나 마음에 든 모양이다. 다행히도 고구마는 고양이가 섭취해도 되는 식물 중 하나다. 같은 넝쿨이라도 아이비같이 독성이 있는 식물은 고양이에게 좋지 않다. 이렇게 고양이에게 치명적인 식물이 있기 때문에, 고양이가 아무 화초나 채소를 먹도록 그냥 둘 수도 없다. 


고양이마다 선호하는 식물들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관심을 두고 지켜보며 이것저것 시도를 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최근에는 키라라를 위해 캣닢을 키우고 있다. 캣닢 장난감, 캣닢 간식 등 고양이가 죽고 못 산다는 그 캣닢. 향이 강한 마른 캣닢을 바닥에 뿌려주면 키라라는 얼굴을 문질문질 하고 조금 핥아 먹곤 하다가 바닥에 신나게 뒹굴기 시작한다. 온 몸이 캣닢 투성이가 될 때까지 멈추지 않는 향락의 시간. 평소에 시큰둥한 키라라의 흥분된 모습에 이래나 되나 싶은 배덕감 마저 드는 바로 그 캣닢.


싹이 나고 본잎이 나더라도 캣닢의 생장속도가 생각보다 다소 늦다. 캣닢은 이파리가 넓적한 편이라서 키라라가 선호할 수도 있겠다 싶다. 뾰족뾰족, 이제 자라나기 시작하는 캣닢에게는 키라라가 관심을 주질 않는다. 꽤 성장할 올 봄, 여름에는 키라라가 캣닢을 흡족하게 아그작, 샤각, 씹기를 바라며, 열과 성을 다해 일용할 양식을 키우고 있는 집사의 겨울 투잡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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