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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숲 Jan 11. 2019

너의 흥을 끌어주마, 웰컴투 고양이월드!

반려동물과 함께 하는 삶, 교감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긴다. 그러나 그 교감이란 것은, 하루아침에 생기는 것이 아닐뿐더러, 시간이 지난다고 생기는 것도 아니다.


키라라와 처음 만나고 몇 년간의 시절을 회상할 때 마다 마음이 아프다. 20대 초반에 만난 키라라, 학교생활과 알바생활을 병행했기 때문에 시간이 없었다는 핑계는 자기합리화일 뿐이다. 납득할만한 가장 그럴듯한 핑계를 대자면 어린나이, 내가 세상에서 제일 중요했으며,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키라라와 13년을 함께 했다지만, 우리의 초창기 시절에는 쓸 만한 추억이 없고, 교감이 부실했다. 키라라 좀 챙기라는 룸메이트의 말은 귀에 들리지 않았고, 늘 그곳에 있는 키라라는 당연했다.


원룸 단칸방에서 막 서울살이를 시작했을 때는 직장 생활을 한답시고 키라라를 내팽겨 쳤다. 내팽겨 쳤다, 이 말 말고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먹고, 자고, 싼다고 살아있는 것이 아닐 텐데. 내가 없는 사이, 2층 우리집에서 밖으로 나있는 작은 창문으로 키라라가 뛰어 내렸다는 말을 룸메이트로부터 들었다. 서울대입구역에 위치했던 우리집 밖은 유흥가나 다름없는 혼돈의 거리였다. 얼마나, 얼마나 답답하고 외로웠으면, 그 겁쟁이 키라라가 2층 높이에서 뛰어내려 밖으로 나갈 생각을 했을까. 어떻게 그렇게 곁에 있어 줬을까.


번쩍인다, 번쩍이는게 좋다.


내가 20대 중반쯤이 되자, 키라라가 제대로 보였다.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것과 관계가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그저 내가 여러모로 철이 들었던 것일까, 여전히 바쁜 서울살이였지만, 키라라에게 있어 나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원룸에서도 마음만 있으면 키라라와 뛰어 놀 수 있다. 인내와 시간을 들이면, 원룸 옥상에 함께 올라가 키라라에게 따뜻한 햇볕과 하늘하늘한 바람을 보여줄 수 있다. 따뜻했던 어느 주말 오후, 키라라를 데리고 옥상에 처음 올라갔던 날의 기억이 선명하다. 아무도 없이 고요한 옥상에 쏟아졌던 햇볕, 그 아래에서 키라라는 온몸으로 햇볕을 만끽했다. 이리 뒹굴, 저리 뒹굴, 또 뒹굴고, 뒹굴고, 뒹굴고.


“키라라, 그렇게 좋아?”


이게 뭐라고, 이렇게 좋아하는 걸 이제야 해준다. 미안하다. 집고양이라고 집에만 있는 것이 행복했던 게 아닐 텐데. 고양이라고 혼자 있는 것이 즐거운 게 아닐 텐데. 키라라가 그렇게 몽실몽실 사랑스럽게 내 곁에 있어 주는 게 당연한 게 아닐 텐데.





고양이 장난감을 사기 시작했다. 고양이 장난감의 바이블과 다름없는 잠자리 와이어는 웬만해서는 실패가 없다. 이 장난감은 키라라가 어릴 적에 특히 좋아했던 장난감이다. 팔만 조금씩 흔들어도 격렬하게 흔들리는 잠자리를 따라 키라라는 하늘을 날 듯 점프를 해댔다. 잠자리 장난감에는 나이가 들면서 흥미를 잃어갔다. 아무래도 관절에 무리가 갈 것이다. 저거 잡아서 뭐하나, 하는 노묘의 산신령 같은 마음도 보인다.


플라스틱 대 끝에 작은 스펀지가 달린 장난감은 최근까지도 키라라가 좋아했다. 그러나 기술적으로 놀아줄 때 만이다. 여우가 다 된 키라라는 나의 정성에 따라 반응을 달리한다. 고양이와 함께 자주 시간을 보낼수록 어떤 방식으로 놀아줄 때 즐거워하는지 알 수 있다. 설렁설렁 대충 놀아주는 것을 눈치 채면 이내 움직임을 멈추고, 뚱 하게 나를 바라보는 키라라다. 같은 맥락으로 건전지를 넣은 벌레 장난감과 자동으로 움직이는 레이저에도 관심이 없다. 장난감을 움직여 놓고 내 볼일을 보면, 키라라도 건전지 장남감에 호기심을 보이지 않는다. 같은 레이저 장난감이라도 내 손으로 움직여 줄 때 신나게 뛰어논다. 고무줄 하나를 잡고 놀아도, 나와 함께 놀 때래야 신나게 뛰어 논다.


키라라의 스테디셀러 장난감은 방금 퐁, 하고 오픈한 맥주병 뚜껑과 내 머리 고무줄이다. 종종 심심할 때 혼자서도 잘 가지고 논다. 내 침대 맡에 있는 고무줄은 키라라 몰래 몰래 스릴을 즐기며 사냥하는 아이템.


얼굴이 뭉개지게 기대는 용도에 딱이다.
캣닢이랑 간식이 있으니까 들어가 준다.

손톱을 주기적으로 갈아주는 스크래쳐는 고양이에게 필수다. 스크래쳐에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행위는 고양이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다. 또 스크래쳐가 없으면 가구를 뜯을 수 있다. 스크래쳐와 함께 딸린 장난감들을 잘 가지고 놀 것 같아서 비싼 것도 사봤지만, 필요없다. 스크래쳐는 스크래쳐일 뿐.


최근에는 고양이동굴을 사보았다. 고양이들이 아주 죽고 못산다고 해서 사본 아이템인데, 나의 노력이 가상했던지 처음 몇 번 들랑날랑 하더니 영 시큰둥하다. 동굴 안에다가 간식도 넣어보며 놀아주기를 유도해 보았지만 실패한 장난감. 캣닢이 들어간 쥐돌이 장난감도 실패. 바스락거리고 번쩍거리는 공 장난감도 실패.


산신령이 된 여우 키라라를 상대하기란 만만치 않다. 웬만한 장난감을 13년 동안 겪어온 키라라다. 그래서 나는 고양이가 되기로 했다. 하루에 두세 번, 총 20분 정도다. 20분 내어주는 것은 일도 아니다. 나도 어쩔 수 없이 귀찮을 때는 설렁설렁 놀다가, 마음이 동하면 고양이가 되어서 키라라와 뛰어 논다. 키라라를 쫒아 다니며 뛰게 만든다. 침대 위에서 몸을 낮추고 손장난을 치면, 키라라가 내 손을 잡으려고 하다가 냅다 우다다-갑자기 뛰는 행위-를 시작한다. 그러면 또 나는 키라라를 쫒아간다. 키라라 궁뎅이를 톡, 치고 내가 잽싸게 도망가면 키라라가 내 뒤를 쫒아오다가 갑자기 멈춰선 내 다리에 머리를 꽁 하고 박곤 한다. 이쯤 되면 키라라는 헥-헥- 거린다. 입을 벌리고 헥헥거리는 모습을 보는 쾌감! 아, 오늘도 잘 놀았다!


하..하얗게 불태웠다...


나도 헉-헉- 키라라도 헥-헥- 한바탕 땀이 쭉 나도록 뛰어놀고 나면, 키라라도 더 이상 놀아달라고 야옹대지 않고 만족한 얼굴로 느긋하게 앉아 꾸벅꾸벅 졸곤 한다. 노는 시간은 반려동물과의 교감에도 중요하지만 정신건강과 신체적 건강에 가장 중요하다. 동물병원 의사도 키라라의 몸무게를 체크하더니, 운동을 시켜야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다고 했다.


아깽이, 청년묘 시절에야 제 흥에 겨워 우다다를 일삼지만, 노묘의 흥은 집사의 몫이다. 노묘인데도 놀아 달라 야옹하고, 몸을 자주 움직이고 싶어 하는 키라라가 고마울 따름. 너의 흥을 내가 놓치지 않고 끌어 주마. 자, 오늘도 신나게 뛰어놀 준비 됐니?  꿈과 모험이 있는 고양이월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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