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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숲 Jan 12. 2019

우울한 고양이를 본적이 있나요?

고양이의 감정테라피에 대하여

고양이가 누군가를 보고 야옹대는 것은 그 사람에게 할 말이 많다는 뜻입니다.


반려묘가 자기만 보면 쉴 새 없이 야옹-거려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어떤 사람에게 한 동물전문가가 내민 솔루션이다. 그저 수다쟁이 고양이니 그 만큼 관심을 주면 해결 될 일이라는  산뜻한 조언.


딱히 뭘 원하는 것도 없이 키라라가 야옹거릴때마다 스트레스를 받았던 나에게 딱 맞은 솔루션이기도 했다. 키라라는 나에게 할 말이 많은 수다쟁이 고양이었던 것이다. 딱히 뭘 원하는 것도 없이 야옹대는게 아니라, 나와 대화를 나누고 싶었던 것일 뿐.



야옹, 야옹. 놀아달라 야옹. 놀기싫다 야옹. 밥달라고 야옹. 간식달라 야옹. 이제 왔냐 야옹. 기다렸다 야옹. 보고싶었다 야옹. 쓰다듬어라 야옹. 건들지마라 야옹. 이리와라 야옹, 저리가라 야옹. 뭐하냐 야옹, 하지마라 야옹. 좋다 야옹, 싫다 야옹. 일어나라 야옹. 자지마라 야옹. 그냥 야옹. 야옹.


키라라에게서 우울증 증상을 본 적이 있다. 키라라와 함께 미국에 오기 전, 3개월 정도 미국에서 지냈던 적이 있었다. 10년을 함께 살았던 룸메이트에게 키라라를 부탁했다.  10년 동안 함께 지냈으니, 키라라도 심적으로 혼란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3개월 뒤, 다시 만난 키라라는 이상했다. 오랜만에 나를 보는 것인데도 선풍기 밑에 턱을 괴고 누워서 움직임이 없었다. 키라라- 이름을 불러도 눈으로만 홀끔 나를 쳐다볼 뿐 미동이 없다. 키라라가 왜이래? 모르겠어, 요즘 키라라가 계속 이랬어. 놀자고 해도 움직임 없이 무기력한 키라라.


그렇게까지 움직임이 없는 키라라를 본적이 없다. 외출만 하고 집에 들어가도 야옹-야옹- 배를 내보이며 좋아하는 녀석이, 3개월만에 만난 나를 없는 사람 취급을 한다. 낯선 사람 취급이라면 나를 피해 숨기라도 할텐데, 그저 나를 완전히 무시했다. 내가 없어진 이유를 알리 없는 키라라, 그 동안 나를 향한 원망과 상처를 차곡차곡 쌓아뒀던 것일까. 속이 쓰렸다. 설명을 해 줄 수 없어서 마음이 더 아팠다. 키라라가 원래대로 돌아오는 데는 1주일 정도 시간이 걸렸다. 키라라에게 미안하다, 사랑한다 끊임없이 말을 걸며 마음을 많이 썼던 시간이다.




동물전문가는 아니지만, 키라라전문가로서 집사생활 백서, 고양이의 심신 건강을 위한 두 가지 꿀팁이 있다. 바로 관찰과 반응이다.


키라라가 쉴새 없이 야옹댈 때는 나름의 즐거운 해결방법이 있다. 나도 키라라에게 ‘반응’하며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내 할일을 하면서 야옹대는 키라라에게 대답을 한다. 어, 그랬어? 나랑 놀고 싶구나? 그런데 지금 요리를 해야되는데? 지금 요리를 해야돼서 키라라랑 놀 시간이 없는데 어떡하지? 그 대신 뭘 만드는지 알려줄까? 당근을 썰건데 말이야, 이건 말이야…


그러면 쉴 새 없이 야옹대던 키라라가 잠잠히 내 이야기를 듣고 있다. 중간 중간에 키라라의 이름을 부르면서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러면 키라라는 내가 본인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한다. 자신의 이름이 불릴때마다 키라라의 귀가 쫑긋쫑긋 움직인다. 물론 키라라는 무슨말인지 알리가 없다. 중요한 것은 내가 키라라에게 관심을 갖고,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이다. 요리하면서 키라라에게 이야기를 던지는 것은 힘든 일도, 어려운 일도 아니다.  한참을 듣다가 자기보다 더한 수다쟁이 집사에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저만치 물러가는 키라라. 대화가 만족스러웠는지는 모르겠으나, 더이상 불만스러운 야옹은 없다.


야옹- 말을 거는 키라라를 무시한다는 인상을 줄수록 키라라는 더욱 집요하게 나에게 달려든다. 직업상 집에서 일을 하지만, 그렇다고 심심해하며 나와 놀고 싶어하는 키라라와 매번 이야기하고 놀아줄 수는 없다. 이럴 때는 관심을 내가 아닌 다른 쪽으로 돌린다. 그렇다면 다른쪽으로 돌릴 키라라의 관심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여기에서 중요한 것이 바로 ‘관찰’이다.



대부분의 고양이들이 그렇듯이, 키라라에게도 창문은 매우 중요하다. 수 많은 창문중에 어떤 창문을 가장 마음에 들어하는지 관찰한다. 마음에 들어할 법한 창문 앞에 몸을 편안하게 뉘일 만한 공간을 마련해 준다. 주로 창문 앞에 캣타워를 두거나, 편안한 의자에 쿠션을 깔아주는 방법을 쓴다. 그러면 키라라는 마음에 드는 창문을 골라, 30분이고 1시간이고 창 밖을 구경한다. 때로는 창문을 바라보다 그대로 잠들기도 한다. 키라라와 놀아줄 수 없을 때는 야옹대는 키라라를 좋아하는 창문 앞으로 데려가 창밖으로 관심을 유도한다. 실패할 때도 있지만, 성공 확률이 더 높다.


창문 외에도 키라라가 평소에 좋아하는 공간을 파악하는데 신경을 많이 쓴다. 잠을 청하는 곳은 일반적으로 키라라가 심적으로 편안해하고 마음에 들어하는 공간이다. 자주 잠을 청하는 곳에는 키라라가 더욱 편안하게 느끼도록 박스안에 이불을 깔아 두거나, 주변을 좀 더 어둡게 만들어 준다. 야생의 고양이는 천적에게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잠을 자는 공간을 주기적으로 바꾸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키라라도 집안에서 주기적으로 잠을 자는 공간을 바꾼다. 그래서 평소에 키라라를 관찰했다가 자주 잠을 청하는 몇 군데 공간을 키라라가 좋아게끔 잘 꾸며둔다.


때로는 내가 좋아하는 공간과 키라라가 좋아하는 공간이 겹쳐서 딜레마에 빠지곤 하지만, 집고양이 키라라가 긴장감 없이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 우선순위다.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나를 더 많이 관찰하는 키라라는 나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둘 다 깨어 있는데, 본인에게 관심이 없는 것을 못견뎌 할 때도 있다. 그럴때면, 나는 키라라를 참여시킨다. 만약 보드게임을 한다면, 키라라를 주변으로 끌고와 구경시켜 준다. 주사위를 굴리고 게임말을 움직이는 모든 것에 호기심을 보인다. 그것들을 발로 건들고 싶어서 안달을 내지만, 몇 번 주의를 주면 가만히 앉아서 구경을 한다. 그러다 스르륵 잠드는 키라라. 



또 컴퓨터로 영화를 볼 때면, 텔레비전 화면에 고양이를 위한 영상을 틀어두곤 한다. 주로 새와 다람쥐가 땅콩을 먹는 영상인데, 키라라는 꽤 관심을 보인다. 타탁타탁 타들어가는 벽난로 앞에 꾸벅꾸벅 졸고 있는 고양이 영상을 보며 키라라는 영상 속 고양이와 함께 졸기도 한다.


키라라가 평소와 달리 외출하고 돌아온 나를 반기지 않거나, 샤워하는 나를 구경하지 않거나, 커피를 내릴때 간식을 요구하지 않거나, 낮잠을 너무 많이 자거나 하면, 키라라에게 먼저 대화를 청한다. 먼저 키라라를 귀찮게 해 보는 나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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