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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숲 Aug 13. 2019

미국에 온 친구와 나선 새벽 6시의 피크닉

대학생부터 사회 초년시절까지, 무려 10년을 함께 한방을 쓰며 볼꼴 못 볼꼴 다 본 고딩 친구 녀석이 내가 사는 워싱턴D.C에 여행을 온다고 했다. 미국에 살면서 한국에서 누군가가 날 보러 오는 것이 처음인지라 설레면서도, 왠지 고객 맞춤형 시티투어를 완벽하게 진행하고 싶은 서비스 마인드가 나를 초조하게 만들었다.


친구의 여행 취향을 사전조사하고 기호에 맞는 일정을 날짜별로 짜두었다. 그날의 메뉴도 정하여 요리해 줄 음식과 맛집을 꼼꼼하게 표시해 두었다. 애런에게 이거봐라, 친구 오면 이렇게 데리고 다닐거다? 일정표를 보여주니, 약간 흠칫하며, 친구가 숨막혀 하지 않겠니? 조심스럽게 비관적인 의견을 제시한다. 순간 나도 움찔했지만 애써 대수롭지 않은 척, 친구가 여기 관광 정보가 없어서 내가 리드하라고 했어, 변명하며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그 중에서도 내가 아주 치밀하게 준비한 특별한 스케줄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새벽 산책이었다. 친구는 완벽한 저녁형 올빼미 인간이라, 평소라면 결코 새벽 6시에 일어날 일이 없겠으나, 미국에 오면 시차로 인한 잠설침 때문에 틀림없이 새벽에 깨어날 것을 예상하고 만든 일정이었다.


그래도 혹시 몰라서 친구가 미국에 오기전에 사전예고를 하고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을 주었다.


“야, 너 오면 그 다음날 시차 때문에 일찍 일어날 거니까 새벽 산책을 할 계획이니 그리 알아두렴.”


“피곤해서 그럴일 없어.”


친구의 아주 확고하면서도 부정적인 대답을 듣고도 나는 속으로 음흉하게 웃으며, 요놈아, 두고 보자.




친구는 미국에 온 당일 저녁 8시까지 겨우 눈을 뜨고 있다가 새벽 3시에 일어나 잠을 설쳤으며 뜬눈으로 밤을 지샜다. 내가 미국에 있다가 한국에 갈때마다 겪는 시차로 인한 잠설침 루틴과 똑같았다.


새벽 6시에 어슬렁 일어나 거실 소파에서 눈을 땡글땡글 뜨고서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고 있는 친구와 조우했다. 나는 키킥거리며 친구가 호언장담했던 잠루틴을 비웃었고, 녀석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그래, 산책이나 나가자고 했다.


친구가 오면 아침마다 만들어 주려고 샌드위치 재료들을 냉장고에 넣어두었었다. 새벽 산책에 샌드위치까지 싸갈 계획은 없었지만, 너무 일찍 일어나 잠을 설친 친구는 그 새벽부터 배가 고프다며 쾡해 있었고, 그래서 샌드위치를 싸가기로 했다. 새벽 산책은 한 단계 격상되어 새벽 피크닉이 되었다.


토스트한 통밀빵에 마요네즈를 살짝 발라주고, 신선한 로메인, 토마토, 오이 그리고 샌드위치용 칠면조 슬라이스를 겹겹이 올려 먹기 좋게 반으로 잘라 컨테이너에 담았다. 달달한 아이스 믹스커피가 찰랑거리는 텀블러도 챙겼다.


우리는 새벽부터 소곤소곤, 한 껏 사부작 거리며 집 문을 나섰다. 한 여름이라 밤새 시원하게 맞춰둔 집안 온도보다 새벽녘 공기가 훨씬 시원했다. 공기의 온도보다 더 좋은 것은 새벽 향기다. 미국까지 온 올빼미 친구의 여행일정에 굳이 새벽 산책을 끼워 넣은 가장 큰 이유다.


운동에 게을렀던 내가 아침 조깅에 빠져 버린 이유, 이 곳 하루 중 가장 대수롭지 않으면서도 가장 행복한 시간을 친구와 공유하고 싶었다. 집 문을 나서자 마자 친구는 흠, 하- 하고 새벽 공기를 음미했다.


“와, 공기는 진짜 좋다.”


“그렇지?”


매일 아침 혼자 뛰던 동네 조깅 코스를 친구와 천천히 걸었다. 빌라 단지를 지나 작은 공원에 다다르자, 선선한 새벽 공기를 타고 새파란 잔디향이 우리를 맞이했다. 이제 막 떠오르기 시작한 태양은 아직 잔디밭과 나무의 초록 능선을 넘지 못하고 그 언저리를 붉그스레 물들이고 있었다. 아침과 밤의 기막힌 경계에 우리 둘만 앉아 샌드위치를 까먹었다.


여기 저기서 새소리가 들렸다. 요즘은 새소리에 깨는 일이 일상이 됐지만, 처음에는 어느 누가 TV를 켜놓은 줄 알았던 비현실적인 소리라고 느꼈었다. 쉴새 없이 바쁘고 스타일리쉬한  내 친구의 서울 생활이, 촌스럽지만 고요한 나의 아침 일상으로 잠시 쉬어가길 바랐다.


이런 여행, 저런 여행, 해외여행 경험도 참 많았던 친구에게, 한국의 사계절과 유럽의 건축양식을 닮은 워싱턴은 딱히 특별할게 없었다. 야심차게 준비했던 고객 맞춤형 시티투어가 35도 폭염으로 인해 아주 대차게 실패를 해버리는 바람에 눈물이 찔끔나도록 시무룩했지만, 친구는 여행의 마지막 날, 시차 노림용 새벽 산책과 샌드위치가 제일 좋았다고 말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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