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린숲 Feb 13. 2020

미안하지만, 적당한 온도의 커피가 좋아서요

커피가 맛있는 미국카페 추천


“커피가 어떠신가요”     


“맛있어요. 다 좋은데요.”     


“불만인 점은 있으신가요?”     


“음...커피가 너무 뜨겁네요.”     


즐겨 찾는 프렌차이점 카페에서 어느 날, 설문 조사 나온 본사 직원인 듯한 사람의 질문에, 잠시 머뭇대다 커피가 뜨겁다는 불만 사항을 말했다. 직원의 한쪽 눈썹이 슬쩍 올라간다.      


커피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커피에 입맛도 까다롭지 않다. 산미보다는 고소한 맛을 더 선호한다, 정도다. 커피 고유의 크림층이라고 불리는 크레마가 많은 커피를 그저 최상으로 친다. 한국에서나 미국에서도 커피는 거기서 거기고, 크림층이 풍부한 커피를 만난 날에는 아주 행운인 것이다.     


그런 내가 커피의 온도를 따졌다. 온도를 지적하면서도 나 참, 커피가 따땃하면 좋을 일이지 뭐래니, 블랙커스토머냐.     


멋쩍은 마음이 들어 나의 고객 불만사항 접수를 옆에서 구경하고 있던 남편에게 커피가 너무 뜨겁지 않냐고, 동의를  구했다. 그러자 그 미국인 남편은 미국사회 팽배한 고소의 역사를 들먹이며, 주문한 뜨거운 커피에 데인 여성이 해당 카페를 소유한 기업을 고소한 사례가 있다며 가까스로 내 의견에 동의를 한다.     


스스로도 ‘뭐래니’ 했던 커피온도에 대한 불만이 막상 흔쾌히 받아들여지지 않자, 요 간사한 마음이 상대방을 설득하기로 마음먹는다.      


다음의 대화 내용은 하오체로 각색한 커피 토론이다.     


“이보시오, 남편. 이성적으로, 인간적으로, 이 커피는 너무 뜨겁지 않소?”

     

“여보오, 아내. 미지근한 커피보다는 뜨거운 커피가 나은 게 아니오?”     


“그렇다고 이렇게 갓 나온 커피가 이렇게 손도 못 댈 정도로 뜨거우면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이오?”    

 

“갓 나와서 뜨거운 게 당연하오. 홀더를 끼우면 될 일 아니오.”     


“아니 지금 요점이 그게 아닌 것을 정녕 모르시오? 입을 갖다 대면 혀가 데일 정도라오. 이게 정상적인 커피의 온도라고 생각하시오?”     


“기다렸다 들이키시오.”     


커피 온도에 대한 원론적인 토론이 오갔다. 과학시간에 배웠던 논증의 두 가지 방법이 불현 듯 떠오른다. 주제의 옮고 그름을 정하지 않고 논리적인 추론을 통해 결과를 내는 연역법은 실패로 돌아갔다. 남편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렇다면 역시 ‘답정너’ 귀납법다. 우리의 경험을 일반화하기로 한다.     


“그렇긴 하오. 커피가 뜨거우면 기다리면 될 일이긴 하오. 그렇다고 내가 그렇게 까다로운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그대도 알지 않소. 다만, 갓 나온 커피를 들이키면서 온도가 참 좋다고 했던 카페를 기억하시오?”     


“어디 말이오?”     


“저어기, 버지니아주에 아주 유명한 2층짜리 벽돌 카페 말이오.”     


“아하, ‘노스사이드소셜’(northside social)! 기억나오.”     


“그 집 커피가 참 맛있지 않았소? 온도가 적당한데 크레마도 아주 풍부했단 말이오. 크레마는 고온에서 추출되는 되는 것이 일반적인데, 그 집 커피는 어떻게 그렇게 적당한 온도에도 풍부한 크레마를 구현해 낼 수 있었는지 감탄스럽지 않았소?”     


“그러고 보니 그랬던 것 같소.”     


커피가 참 맛있었던 ‘노스사이드소셜' 카페&와인바

크레마가 고온에서 추출되는 것이 일반적인건지 어떤건지는 사실 우리 모두 잘 몰랐지만, 일단 자신의 경험을 부정할 수는 없었던 남편이 반쯤 동의를 했다.      


“아니, 또 워싱턴DC에 있는 책방 아래 카페도 기억나시오? 그 ‘폴리틱스 앤드 프로즈 북스토어’(Politics and prose bookstore) 말이오.”
 

“그 정치서적 관련 책방에 딸린 카페 말하시오?”     


“내가 그 집 카페에서 카라멜마끼아또를 주문했는데, 크레마가 풍부한 형태로 에스프레소 잔에 담겨 나와 당혹스러워했던 것 기억나시오?”     


“오호, 그렇지. 일반적인 카라멜마끼아또가 아니라서 좀 당황하지 않았소.”     


“그런데 막상 한 입 먹어보니 어땠소? 너무 뜨겁지 않은 온도에 부드러운 크레마가 입안을 감싼다며 감탄을 하면서, 그날 내가 에스프레소에 눈을 뜨지 않았겠소?”     


“그렇지, 당신이 그랬었소.”


“그래서 내가 그 뒤에도 우리 단골집 ‘코피카페’(coffy cafe)에서 세상 관심도 없었던 카레멜마끼아또 에스프레소를 주문하며, 아주 꼬숩고 맛나다고 했소, 안 했소?”     


“그랬지. 그랬소.”     


자, 다 됐다.      


“분명 바리스타 대회 뭐 그런 거에도 커피의 온도가 매우 중요하다고 들었는데? 아, 그 노스사이드소셜 직원들이 모두 바리스타라고 하질 않았소! 그렇다는 것은 커피의 온도가 커피의 맛에 매우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 아니겠소? 소비자가 한 입 했는데 아뜨, 하는 커피가 좋은 커피는 아니질 않겠소?”     


바리스타 대회 어쩌고는 어디서 주워들은 거긴 하지만, 잘 모르는 정보를 우리가 아는 정보 뒤에 갖다 붙여 마치 신빙성 있는 정보로 교묘히 위장해 보았다. 아뿔싸! 이것이 바로 가짜뉴스 생성의 방법인가!     


“듣고 보니 그렇구려. 온도가 적당하면 좋겠지.”     


만족스러운 대화를 끝내고, 그사이 식어 적당한 온도의 커피를 미소를 지으며 홀짝였다. 커피 뭣도 모르지만, 따땃한 커피를 내어주는 카페에게도 미안하지만, 아무래도 나는 적당한 온도의 커피가 좋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