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린숲 Apr 10. 2020

미국 집콕생활, 냉장고파먹기는 힐링푸드가 되었다

한 달 전부터 미국에도 코로나가 본격적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자신만만했던 미국정부를 보며 뭐라도 대응책이 있겠거니 했지만, 코로나는 속수무책 덮쳐왔다. 마스크 착용을 권장하기는커녕 되려 마스크를 쓸 필요 없다는 초기 대응은 둘째 치고, 마스크 자체를 구하기 힘든 상황이다. 나는 커피필터 마스크를 직접 만들어서 쓰고 있다. 초기와는 달리 지금 미국인들은 외출 시 마스크를 쓰고 다닌다.     


미국에도 코로나로 인한 사망자들이 속출하고, 내가 사는 메릴랜드에도 감염자들이 나오기 시작하자, 애런과 나는 매주 가는 주말 장보기 횟수를 줄이기로 했다. 그러나 사람들의 생각은 다 비슷했던지, 그날따라 마트에는 식재료를 사려는 사람들이 평소보다 훨씬 많았다.      


마스크를 쓴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나는 한국에서 먼저 벌어진 상황과 한국정부의 대응책을 이미 알고 있었던터라 마스크를 너무 착용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당시에는 마스크를 쓴 사람이 되려 감염자로 오인될 수 있었고, 또 인종차별이 심화되고 있었던 터라서 자칫 사람들에게 해코지를 당할까봐 두려웠다. 바이러스보다 사람들이 더 무서웠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집 주변에 있는 인터네셔널 마트 사장님이 한국사람이고, 다양한 국가와 인종의 사람들이 장을 보러 오는 마트였다는 점이다. 평소에는 미국의 일반 마트에서 주말 장을 보러 갔지만, 최근에는 동선을 최대한 줄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북적이는 사람들 틈바구니 속에서 마스크도 없이 무방비상태인 상황이 무척 괴롭고 무력하게 느껴졌지만, 일단 2주치의 장을 빠르게 보기로 했다. 쇼핑리스트를 체크하며 사람들과 부딪치는 것을 조심하면서 장을 봤다. 냉장보관 기간이 길어도 비교적 싱싱한 양배추와 고수를 많이 샀다. 요리에 다양하게 쓰이는 양파와 감자도 대용량으로 샀다. 집 바로 앞에 있는 작은 마트에서는 못 샀던 달걀과 실온보관해도 오랫동안 싱싱한 줄기가 달려 있는 토마토도 쇼핑카트에 담았다.     


사람들이 많았지만, 필요한 것은 다 샀으니 이제 고기만 있으면 된다. 고기는 냉동보관해놓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쓰면 유용하다. 그러나 웬걸, 고기 코너가 완전히 텅 비었다. 미국에 살면서 그런 장면을 처음 봤다. 고기는 언제나 다양한 종류로 넘치게 있었다. 어찌 보면 미국인의 주식인 고기가 동이 난 모습에 조급증이 몰려왔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식량조달, 생존, 그런 종류의 단어가 떠오르며 심장이 떨렸다. 코로나패닉으로 사람들이 사재기를 시작한 것이다.      


이후 몇 일만에 휴지도 완전히 동이 났다. 고기는 그나마 빠르게 채워져 정상적으로 구매가 가능하지만 휴지는 아니다. 휴지는 몇 주가 지난 지금도 여전히 구하기 힘들다. 자주 가는 마트 직원에게 물어 물품이 들어오는 요일을 알아뒀다가, 그 날 일찍 휴지를 사러 가지 않으면 또 다음 주까지 기다려야 한다. 주말 아침 8시, 큰 마트 오픈 시간에 맞춰 찾아가 봐도 휴지를 구할 수 없었다. 어쨌든 지금은 휴지를 확보하는 방법을 찾았고, 지금은 매주 같은 요일, 같은 시간에 휴지를 사러 간다.               




메릴랜드주는 미국 대부분의 주와 마찬가지로 자택대피 명령에 들어갔다. 사회적 거리를 유지한 동네 산책이나 운동, 식료품을 사는 것 외에 불필요한 야외활동을 할 경우, 벌금을 물거나 유치장에 갇힐 수 있다.      


프리랜서 집순이라 원래도 주말 말고는 야외활동이 거의 없었지만, 자율적 집순이와 강제집콕 집순이의 갭은 큰 모양인지, 처음 한두 주는 별 차이를 못 느끼다가 지금은 꽤나 답답한 기분이 든다. 동네 산책도 사람들의 외출이 없는 틈을 타서 해야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재택근무를 하거나 일시적 휴무상태라, 언제 나가도 몇몇 사람들과 마주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동네 피트니트센터는 문을 닫았지만, 건강을 위해 아침조깅은 최대한 하려고 노력중이다.     


끼니는 재료들을 확인하며 꼼꼼하게 계획을 세우고 있다. 다양한 면 종류를 쟁여놓아서 들어가는 재료들만 달리해 이것저것 만들어 먹는다. 파스타도 먹었다가, 쌀국수도 먹었다가, 비빔국수도 먹었다가, 그냥 라면도 먹었다가, 최근에는 베트남 음식인 ‘분짜’라는 요리도 처음 도전해보았다. 소면과 춘장으로는 늘 궁금했던 소면짜장면을 만들었다.


시계방향으로 분짜, 피자, 소면짜장면, 두부양배추롤 토마토스튜


토마토소스가 없어서 토마토소스를 직접 만들어 피자를 만들고, 냉동 홍합 육수를 내어 토마토스튜도 만들었다. 냉장고에 있는 식재료들을 털어 최대한 맛있게 먹으려는 욕심때문인지, 오히려 평소보다 다양한 요리를 만들고 있다.      


심심해진다 싶으면 냉장고를 뒤적이고, 또 울적해진다 싶으면 복잡한 요리들을 시도하면서 이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요리는 집중하는 시간과 그 결과가 아주 유용하다. 즐거운 마음으로 시간을 들인 다음에는 맛있게 먹으면 된다. 맛이 없어도 일용한 양식이라는 마음으로 섭취하면 그만이다. 요즘은 요리가 취미이자 개인적 유흥이라서 다행이다.     


한국은 상황이 좀 나아지고 있다는데, 이곳은 아직도 먼 것 같은 기분이다. 사랑하는 친구의 결혼식이 6월에 있어 한국행 표까지 끊어놓았는데 그 중요한 이벤트를 놓쳐 버릴까봐 걱정이 된다.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이 까마득해져 버린 일상이란 것은 참 무겁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