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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지 Sep 09. 2021

[디즈니 특집]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소덕소덕 : 소심한 덕후들의 소소한 덕질 라이프 1화

팟캐스트 1화는 여기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기묘하고도 기괴한 모두를 위한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묘한 영화입니다. (물론 원작 또한 그렇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마냥 그 기묘한 분위기나 꿈결같은 색감과 이미지, 묘한 이야기에 조금 무섭다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채셔 고양이나, 미친 모자장수, 그리고 여왕까지, 마지막에 앨리스를 좇아오는 그 이미지가 기괴하다고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 이후에 꽤나 오랜시간만에 다시 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여전히 기묘했지만, 그 기괴함이 사실은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보여주는 이미지라는 점에서 생각할 만한 포인트들이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루이스 캐럴이라는 수학자가 실제 '앨리스 리델'이라는 소녀를 위해 해주었던 이야기를 모아 만든 동화를 원작으로 합니다. (루이스 캐럴은 본명이 아닌 필명이었고, 실제 이름은 찰스 도즈슨이라고 하네요.)

그 소설을 원작으로 한 것이 바로 디즈니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애니메이션입니다. 앨리스 하면 떠오르는 파란 눈의 금발 소녀의 이미지는 이 디즈니 버전의 영향력으로 굳어졌습니다. 루이스 캐럴의 앨리스 시리즈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거울 나라의 앨리스>인데, 디즈니에서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기본 골격으로 <거울 나라의 앨리스>를 적절히 가져와 만든 거죠 (원작을 잘 담아내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고 하네요.)

'휴 호턴'의 앨리스에 대한 글에서 일부를 발췌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앨리스의 텍스트들은 캐럴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서시에서 말했던 것처럼 정교한 '동화'이기도 하다. 앨리스 책에는 꿈속에서처럼, 수수께끼 같은 즉흥적인 단어들과 말실수, 농담과 자유연상으로 가득하다. 동시에 이 책은 아이들의 매력에 홀린 한 성인이 의미의 문제에 사로잡혀 미학적으로 극도로 정교하게 쓴 수수께끼이기도 하다. 이러한 점에서 이 책은 완벽한 대답을 요구하는, 무시무시하게 문학적인 스핑크스 같은 면모와 현기증 날 정도로 충동적인 즉흥성의 면모뿐만 아니라, 오스카 와일드를 떠올리게 하는 계획적인 면모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

그런면에서 이 작품은 여러 측면에서 다양한 느낌을, 인상을 받을 수 있는 작품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만큼 지금까지도 성인에게 회자되며 다양한 재창작과 전시 등으로 사랑받고, 그만큼 다양한 캐릭터 제품도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떠올려보면 저도 앨리스 전시회에 간 적이 있더라고요. 그만큼 너무나 친숙하고, 여전히 계속 사랑받는 캐릭터와 이야기인 것 같아요.)

어쨌든 그 기묘한 느낌을 받았던 부분들이 인생에 대한 의미를 내포한다고 생각해본다면, 지금까지도 많은 성인들에게도 사랑받는 동화라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마치 <어린왕자>처럼 등장인물들의 대사들이 또다른 느낌과 해석으로 다가온다는 점에서 새로운 감동, 깊은 인상을 남기는 거죠.

휴 호턴은 이어 버지니아 울프의 말을 인용해 설명합니다.  

버지니아 울프는 앨리스 책의 독자층 문제를 또 다른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다. 1939년 울프는 다음과 같이 썼다. "두 앨리스 책은 아이들을 위한 책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아이가 될 수 있는 유일한 책이다." 울프에 따르면 캐럴의 어린 시절은 "그의 내면을 가득 채운 채" 머무르면서, "그의 존재의 중심에 하나의 장애물"을 만든다. 그리고 이 장애물은 "다 자란 어른을 영양 결핍 상태로 만들지만, 동시에 허구의 이야기 안에서 그 어느 누구도 할 수 없었던 일"을 즐, "그러한 유년 세계로의 회귀를, 그러한 세계를 재창조하는 일을 가능하게" 한다. 그럼으로 "우리 역시 아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호기심, 앨리스를 관통하는 주제

다시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보니, 이 작품을 관통하는 큰 주제는 바로 '호기심'에 대한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작품을 따라 앨리스를 따라 이상한 나라를 여행해보면, 그리고 앨리스의 대사들과 노래 가사도 함께 살펴보면 그 호기심과, 호기심을 던지는 삶의 과정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이끕니다.

먼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첫 장면은 역사 공부에 집중하지 않는 앨리스의 모습으로 시작됩니다. 그림도 없는 책에 대해 불평하며 '내 세상의 모든 책은 그림 있는 책으로만 되어 있을 거예요'라는 말을 한다. 여기서 '내 세상(My World)'를 수놓는 단어는 '터무니없는(Nonsense)'입니다. '너의 세상이라고? 터무니없어!'라고 말하는 것에 대해 앨리스는 오히려 상상을 키워갑니다.

나만의 세상이 있다면, 모든 게 터무니없을 거야. 어떤 것도 이 세상하고는 다를 거야.

앨리스는 '나만의 세상'에서는 꽃들도 말을 하고, 동물도 말을 하고, 새들이 다정하게 인사를 건네는 곳일 거라며, 나만이 이해할 수 있는 노래를 들을 거라고 노래한다. 그리고 이내 나타난 "늦었어!"라고 서두르는 시계 토끼를 호기심에 쫓아갑니다. 쫓아가면서도 앨리스는 "호기심이 많으면 문제가 생기기 쉽거든."이라고 덧붙이죠.

앨리스는 호기심을 따라 토끼를 쫓으며 여러 이상한 나라의 캐릭터들과 만나 갈등을 겪습니다. 잠겨진 작은 문을 열고자 애쓰고, 자신이 흘린 눈물 바다에서 표류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시계 토끼의 집에서 거대해져 갇히게 되기도 하고, 이상한 애벌레와 수수께끼 같은 대화를 나누고, 미친 모자 장수와 생일이 아닌 것을 축하하는 티타임을 가지기도 하고요.

그리고 이내 앨리스는 터무니없는 일에 질렸다고 말하며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결심합니다.

이제 터무니없는 일도 지겨워! 곧바로 집에 갈 거야. 토끼가 어디로 갔든 무슨 상관이야. 그 토끼만 아니었어도...

호기심에 이상한 나라의 문을 두드려, 여러 이상한 일들과 만났던 앨리스는 그 호기심을 탓합니다. 그 모습은 각자마다의 이상한 나라에 나아갈 때에 누구나 마주칠 수 있는 현실적인 이야기를 보여주는 것 같다는 점에서 기시감을 느꼈습니다. 이는 이야기 앞부분에 나오는 호기심으로 인해 바다표범에게 잡아먹힌 굴 이야기를 떠올리게 만드는 대목이죠.


수수께끼 같은 대사들에 닮긴 삶에 대한 의문들

호기심에 시계 토끼를 쫓아가는 앨리스는 '길'에 대한 질문을 계속 던집니다. 어디로 가야할지를 찾아가는 과정이 담겼기에 당연한 질문입니다. 특히나 인상 깊었던 몇 장면 중 하나는 바로 채셔 고양이가 등장한 장면입니다. 너무나 유명한 앨리스의 질문과 그에 대한 채셔 고양이의 답변은 마치 인생에서 길을 찾아가는 우리들이 던질 법한 질문과 그에 대한 답을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길을 가던 앨리스는 캐셔 고양이에게 묻습니다. "내가 어느 길로 가야할까?" 그에 캐셔 고양이는 답합니다. "네가 어딜 가고 싶느냐에 달렸지." 이에 앨리스는 그건 상관이 없다고 답합니다. 이에 캐셔 고양이는 "그럼 아무 길로 가도 되겠네."라고 답하죠. 이 수수께끼 같은 대화는 마치 인생의 길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듭니다.

즉 우리 인생 길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 우리가 '어딜 가고 싶느냐'는 문제라는 겁니다. 끝없이 고민에 빠지고, 인생의 선택들에 대해서 이게 맞는 길일까? 끝없이 질문을 던지는 우리에게 도리어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 할말을 잃게 만드는 답변이기도 하죠.

이야기의 후반부에는 여왕을 만나기 전 길을 잃은 앨리스의 이야기를 만납니다. 이끼의 도움으로 겨우 길을 다시 찾지만, 또다시 눈 앞에서 길을 지우는 개를 만나 길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이에 앨리스는 "길을 잃었을 때는 그 자리에 가만히 있는 게 좋겠어. 누군가 나를 찾아줄 때까지."라고 말하다, "하지만 누가 여기까지 날 찾아오겠어?"라 말하며 눈물을 터뜨립니다.

난 그게 문제야. 뭐가 옳은지 뻔히 알면서 따르는 적이 거의 없어. 그래서 항상 문제가 생겼던 거야. '인내하라'는 건 좋은 충고야. 하지만 기다리다 보면 궁금해지고, 이상한 일이 생기는 게 좋은 걸. 난 나 좋은 대로만 하고 이성적인 생각을 못했어. 언젠가 후회하게 될 거라고 알지 못했어. 뭐가 옳은지 뻔히 알면서 따르지 않았어. 나는 언제쯤 철이 들까?

자신의 호기심을 원망하며, 자책하는 앨리스는 눈물을 흘리며 위와 같은 노래를 부릅니다. 주변에 등장한 캐릭터들도 같이 눈물을 흘리며 어둠속으로 사라지죠. 이들 모두가 앨리스의 상상, 그 이상한 나라의 캐릭터들이니, 언제쯤 철이 들까 하며 자신을 자책하며 눈물을 흘리는 앨리스 앞에서 사라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을 겁니다.


여자 아이의 호기심을 그린 <이상한 나라>

앨리스의 <이상한 나라>가 여전히 우리에게 익숙한 나라가 아닌, 여전히 <이상한 나라>라는 점은 생각해볼만하지 않을까요. 지금까지 그토록 사랑받았으나 앨리스의 이상한 나라는 여전히 독특하고 이상한 나라로 보입니다. 그 속에 담긴 철학적인 메세지를 차치하더라도, 여자 아이가 상상한 나라에 대한 이야기가 아직까지도 일반적인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 아닐까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여자 아이의 무한한 상상력을 보여주는, 그 이야기의 힘과 영향력을 보여주는 좋은 이야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 작품은 기성세대, 즉 어른의 세계를 바라보는 어린 아이의 시선을 보여준다는 평가도 받는데, 이제는 '왜?'라는 질문 없이 사회의 규율에 맞게 살아가는 어른들을 향해, 어른들의 시선으로는 '터무니없는 세계'를 이야기하며 도리어 어른 세계에 대해 질문을 던지게 만들게 합니다.

저는 그 질문을 던지는 주체가 여자 아이라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특히 작품이 창작된 시기가 빅토리아 시대라는 것을 감안했을 때에 더욱 그렇고요. 빅토리아 시대는 여자는 주체적인 경제활동을 할 수 없었고, 아버지가 죽더라도 상속받기 어려웠습니다. 이런 내용은 이 시대 대표적인 소설가인 제인 오스틴의 작품을 통해서 쉽게 확인할 수 있죠.

그런 시대적인 배경을 감안했을 때, 여자 아이의 호기심 어린 자신만의 '이상한 나라'를 이야기하는 이 이야기는 참으로 시대를 앞서간 이야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더욱 독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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