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길에서 알게된 나에게 맞는 속도, 그 속도와 맞는 인연.
각자에게 맞는 속도가 있다는 말은 흔히 들었던 말이다. 그래서 너무 뻔한 말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새삼 생각해봐야 하는 말이기도 하다. 나는 순례길을 걸으며 '내 속도'는 무엇일지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누구나 되고 싶은 스스로의 모습이 있을 거다. 나는 특별히 나의 소극적이고 내향적인 모습, 낯가림이 너무 심하고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 그리고 쭈뼛대는 모습들이 너무 싫었다. 그래서 나는 산티아고를 준비하며 막연히, '이런 도전을 해보면 그런 나도 송두리째 바꿔버리지 않을까.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되어 지금까지는 경험하지 못했던 것들을 경험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면서 내심, 길을 걷는 혼자 온 아시아 여자 한 명을 많은 사람들이 특별하게 여겨주기를, 특별한 친구들을 많이 사귈 수 있기를 바라기도 했다.
본격적으로 여정을 시작하는 처음, 그 기대는 산산히 깨졌다. 주위 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고, 나 홀로 외롭게 걸어야했기 때문이었다. 매체에서 봤었던 '부엔 까미노!'라는 인사를 활기차게 건내며 스몰톡을 나누고, 자연스레 일행을 만들고 싶었는데, 가장 처음 카페에서 만나 용기내 인사를 건냈을 때 나는, 간신히 건넨 그 인사를 무참히 씹히고 말았다. 그 이후 며칠간은 사무치는 고독감과 외로움과의 싸움이었다. 혼자인 사람보다 이미 일행이 있는 사람들이 많았고, 혼자인 경우라도 나보다 걸음이 훨씬 빨라 모두 나를 빠르게 앞질러 갔다. 그런 상황에서 조바심이 나는 건 너무나 당연하지 않았을까? 저 멀리 앞질러 가버리는 사람들을 계속 경험하면서, 나는 조바심이 나 너무 괴로웠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느린 걸음을 억지로 빠르게 재촉할 수는 없는 터였다. 마음 처럼 속도가 안나는 그 하루하루의 여정에서 자존감은 떨어졌고, 마음은 너무 쉽게 괴로워지곤 했다. 그 이후에 여러 번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짧게 길을 같이 걷기도 했었지만, 그 마음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순례길을 걸으면서도 나는 비교의식과 패배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나는 내가 특히나 걸음이 느리다는 것을, 그리고 다른 사람들보다 하루에 훨씬 짧은 거리를 걷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계속 생각하고 있었는데, 바로 그 시기에 나는 한 친구를 만나게 됐다. 이야기를 나누며 대화가 잘 통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내심 계속 같이 걷고 싶었지만 내가 누군가의 짐이 되고 미안하다는 얼굴로 '먼저 가보겠다'는 말을 듣게된다면 나는 더이상 견딜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같이 걷다가 조금씩 뒤쳐지거나 빠르게 걸으며 그 사람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눈치를 챈 그 친구는 이제 말 없이 자기의 길을 가기 시작했고 나는 애써, '그래 이 정도면 충분해'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다 다시, 여러 갈래로 나눠진 길 앞에서 다시 그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는 내 얼굴을 보더니 반가운 미소를 지으며 어느 길로 갈거냐 물었다.
"어디 길로 갈 거야?"
"무슨 차이가 있는데?"
"잘 모르겠어. 그런데 아마 저 쪽은 빠른 길이지만 도로 길인 거 같아."
"그럼 난 느린 길 쪽으로 가볼래."
그리고 우리는 다시 함께 걸으며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가 택했던 길은 숲속 오솔길이었다. 딱 둘이 걷기 좋은 길이었고, 또 조용하고 평화로운 길이기도 했다. 이때의 초록을 잊을 수 없는 것은, 이 때의 선택을 통해 너무나 소중한 기억을 선사해준 일행이 생겼기 때문이다. 동행은 '안드레'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리고 프랑스길의 처음부터 걸어 지금까지 이르렀다고 했다. 중간에 누구보다 빠르게 가고 싶어서 무리 하다 다리를 다쳤고, 그 이후로 한 구간을 차를 타고 뛰어 넘어 지금은 천천히 무리하지 않고 걷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말을 듣고 나니, 이 만남이 내 걸음에 맞게 걷다보니 만나게 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더 빨리 걸었다면, 혹은 그가 처음과 같이 빠르게 걸었다면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난 네가 혼자 걷고 싶은 줄 알았어."
"...난 내가 너무 느려서,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될 거 같았어..."
"아냐, 나도 딱 너랑 같은 속도인걸."
이런 저런 생각을 나누다 보니 조바심은 낼 필요 없다는 것, 내 속도 대로 걷는다면 만날 인연은 만나게 되고, 또 그 인연은 나의 속도와 '맞는' 인연이라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나에게 맞는 속도 대로 맞춰 가다보면, 나에게 맞는 행복을 찾게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사람의 속도와 그들이 그 속도로 걸었을 때 만나는 행복은 나의 것이 아니라는 것. 또한 나에게 '맞는' 행복이 아니라는 것. 그러므로 나는 조바심내지 않아도 괜찮다. 남들과 같이 빠르지 않더라도 괜찮다. 뒤쳐지더라도 괜찮다. 나에게는 나만의 길과 나만의 속도가 있으므로.
산티아고에서 돌아오고 나서 내가 가졌던 마음은 이런 마음이었다. 비교하지 않는 것. 나만의 속도를 나의 일상 속에서 찾아가는 것. 그것이 가능할 때 나는 나의 일상 속에서 가장 행복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쉽지 않다. 끊임 없이 앞서 나가는 친구들을 볼 때마다 조바심이 나고, 나도 그런 모습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나의 속도가 아니라는 것. 또한 내가 추구하는 길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그를 인정하고 나의 일상을 바라보았을 때에야 나에게 맞게 운명과 같이 찾아온 행복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