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그리고 전부 때려친 이유
2020년 새해 첫 달의 절반이 지나간다. 작년에 나는 총 세 군데의 회사를 다녔다. 그리고 전부 그만뒀다. 2020년 1월 1일부터 다시 나는 자유 아닌 자유의 몸이 되었고, 타이핑하는 지금 양쪽의 전완근과 등에 있는 양쪽의 날갯죽지가 저리다. 왜 나는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세 곳의 회사에 들어갔고 또 뛰쳐나왔는가. 심지어 마지막 회사는 왜 울며 뛰쳐나왔는가.
허리에 묶여있는 줄에 기대어 누운 채로 비스듬히.
겨우겨우 천천히.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마지막 회사를 그만둬야겠다고 결심한 그날, 언제나 회사 가기 싫은 월요일 아침이었다. 새벽 다섯 시 반에 일어나, 여섯 시 반에 집을 나서서, 밤인지 새벽인지 알 수 없는 길거리를 걸어, 지하철을 타고 둥기 둥기, 회사로 향했다. 그렇게 내린 선릉역에서, 평소라면 가능한 한 빨리 걸어 사무실에 도착해, 재빠르게 근태 앱을 켜고, 출근 버튼을 눌렀겠지만. 그랬겠지만. 내 허리에 사무실과 연결된 줄이 있는 것처럼. 그 줄이 나를 사무실로 끌어당기지만. 나는 내 몸의 모든 무게중심을 허리 뒤편에 실어서. 허리에 묶여있는 줄에 기대어 누운 채로 비스듬히. 겨우겨우 천천히.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이제 막 해가 떠서 푸르스름하게 밝아오는 하늘을 바라보다가. 그 하늘을 삐죽빼죽 가리고 있는 그 테헤란로의 건물들을 바라보다가. 눈물이 나버렸다. 그나마 면실로 짜인 니트를 입어서 다행이었지. 소매로 찔끔찔끔 멈추지 않는 눈물을 닦으며 겨우겨우 사무실이 잡아당기는 줄에 끌려 매달려 걸었다.
자리에 앉았지만, 도저히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왜 여기 앉아있는지 모르겠었다.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밖에 없었다.
나도 내가 하고 싶은 거 하고 싶다.
그래서 폰부스에 들어가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가 전화를 받는 순간. 찔끔거리던 눈물은 순식간에 부풀어올라 목구멍을 막아버렸다. 잔뜩 부은 목구멍을 억눌러가며 한마디 한마디 엄마에게 이야기했다.
엄마. 나도 내가 하고 싶은 거 하고 싶어.
엄마 탓을 하고 싶지 않지만. 작년에 한번 깨달은 이후로 나를 놓아주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이야기해야겠다. 20살이 된 이후로 단 한순간도 돈을 버는 행위를 멈추지 않으며 살아온 나는. 내가 엄마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라 생각했다. 내가 생각한 데로 결정하고, 그 결정을 감당하기 위해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 지금껏 하고 싶은데로 하며 살아왔다고 그렇게 믿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아니 맞을 수도 있지만, 진짜 그랬나? 한다면 아니다.
나는 엄마를 굉장히 사랑한다. 세상에서 내가 유일하게 아무 걱정 없이 온 힘을 다해 사랑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동물까지 영역을 확대한다면, 깜통이까지 갈 수 있지만. 암튼. 사람은 엄마가 유일하다.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이다 보니 그 사람이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나는 나도 모르게 사랑 때문에 엄마의 가치관과 말들에 나도 모르는 사이 꾸준히 젖어가며 살아왔고, 정신 차리고 보니 이미 온몸이 무거워질 데로 폭삭 젖어있었다. 툭 건들기만 해도 물줄기가 주르륵 떨어져 버리는 짜지 않은 빨래처럼.
툭 건들기만 해도 물줄기가 주르륵 떨어져 버리는 짜지 않은 빨래처럼.
멋모르고 들어간 첫 직장에서 1년을 일한 뒤, 다시 제대로 해보고 싶은 거 하자! 하고 호기롭게 회사를 그만뒀지만, 집에 있는 내내 땅이 꺼져라 한숨 쉬는 엄마 때문에 나는 매일 하루도 쉬지 않고 새로운 이력서를 썼고 계속해서 이력서를 오만군데에 제출했다. 그러다 오래도록 내가 원한다고 생각했던 외국계 대기업에 합격했다. 하지만 출근 전날까지도, 출근 당일까지도, 알고 있지만 외면했다. 그렇게 두 달을 다녔고 외면한다고 돌렸던 고개가 돌아왔다. 언제든 돌아오고 싶다면 돌아오라는 말을 들었지만, 앞으로 내 삶의 행적에서 외국계 대기업이라는 카테고리를 지웠다.
그만두기로 결정한 순간부터 쉴 새 없이 이력서를 쓰고 제출하기를 반복했고, 결국 일주일 만에 새로운 회사에 합격했다. 이번엔 정말 꿈에 그리던 삶의 이상형을 만났다고 확신했다. 행복에 젖은 손가락은 가까운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고, 두근거리는 입술은 종알종알 내가 얼마나 운명적인 상대를 만났는지 가까운 사람들에게 떠들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곳에서는 좀 더 오래 일했다. 네 달 반.
눈물이나 몸이나 전기장판 때문에 뜨끈뜨끈했을지도 모른다.
세 번째 회사를 그만두고 돌아온 2019년 12월 31일. 우연히 들어간 중고 책방에서 나를 아껴주는 언니가 추천한 '장미와 찔레'라는 책을 발견했고, 소파에 앉아 절반, 침대에 누워 절반을 읽었다. 따뜻한 안도의 눈물이 흘렀고, 몸안에서 부풀어 오르는 뜨거운 파이팅 덕분에 눈뜨고 일어나면 다가와 있을 2020년이 너무나도 기대가 되었다. 눈물이나 몸이나 전기장판 때문에 뜨끈뜨끈했을지도 모르지만.
2020년 새해 첫 달의 절반이 지나간다. 1월 1일의 다짐과는 다르게 조바심이 나고, 불안하고, 초조하다. 하지만 나는 나를 알고, 나를 믿는다. 나는 언제나처럼 잘 해낼 거다. 분명히 잘. 지난주부터 시작한 클라이밍으로 저릿한 전완근과 날갯죽지로 잘 해내 보자. 그래 보자. 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