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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즌졍 Mar 16. 2020

플랭크는 정신력의 문제인 이유

[Essay] 정신력이 해이해졌다 이 말입니다.

5분을 못 버틴 지 1주일 이상은 된 거 같다. 심지어 하루씩 건너뛰는 날도 꽤 자주 발생하는 듯 보인다. 플랭크는 체력보다는 정신력으로 하는 건데. 그니까 난 지금 좀 지쳤다. 아니 질린 걸 지도 모르겠다. 난 원래 잘 질리곤 하니까.


켜질 땐 몇 번 타닥거리다 순식간에 파래지고, 꺼질 땐 돌아가는 밸브의 속도에 맞춰 서서히 꺼져버리는 가스레인지 같은 사람이다.


질리는 얘기를 하자면 너무 많아서 사실 잘 기억 못 한다. 켜질 땐 몇 번 타닥거리다 순식간에 파래지고, 꺼질 땐 돌아가는 밸브의 속도에 맞춰 서서히 꺼져버리는 가스레인지 같은 사람이다. 나는. 빼빼로. 메가톤. 막창. 쓰다 보니 다 먹을 거라 좀 그렇긴 하지만 암튼. 뭐 하나 좋아하면 하루에도 몇 번씩 매일매일 좋아하다가, 서서히 어느새 정신 차리고 보면 쳐다도 안보는 인생을 살아왔다. 여태.


그니까 한창 플랭크 5분씩 하다가 요 근래 1분 20초쯤 남으면 포기해버리는 건 어쩌면 그냥 질려서 그런 걸 지도 모른다. 근데 아니다. 이건 정신머리가 느슨해져서 그런 거다. 왜냐면 플랭크는 체력이 아니라 정신력의 문제거든.


앞서 다른 글에서도 말했든 나는 아이유를 향한 유치한 질투심으로 플랭크를 시작했다. 5분 하는 게 목표였는데, 3분 30초밖에 못하던 나날이 반복되던 어느 날 그냥 에라이 5분 해보자. 하고 한번 해봤더니 됐고, 그 이후로 매일 5분씩 했다.


플랭크를 코로나 때매 클라이밍 못하게 된 날부터 시작했으니 벌써 한 달 넘게 해온 듯하다. 평일 주말 가리지 않고 매일 했다. 어쩌다 시간이 애매하게 안나는 날이 생기면 못하기도 했지만, 그런 날은 거의 없었다. 이게 확실한 이유는, 내가 운동한 날엔 탁상 달력에 조그맣고 반짝이는 동그란 스티커를 하나씩 붙였기 때문에, 확실하다.


짐승 소리를 낸다. 거실에서 들리는 소리는 조금 야하다 싶을 정도로.


근데 최근 한 1주일 정도 갑자기 5분 버티는 게 너무 힘들어졌다. 사실 그렇게 힘들진 않다. 원래 한 4분쯤 되면 난 짐승 소리를 낸다. 방문 닫고 혼자 하는데, 거실에서 들리는 소리는 조금 야하다 싶을 정도로. 4분 지나면 진짜 오만 생각이 다 든다.


내 인생 얼마나 긴데 1분 남은 거 하나 못 버티면 어떻게 사냐. 내 삶에서 1분 얼마나 짧은데 이거 결국 지나간다. 지금까지 한 게 아까운데 지금 포기한다고? 끝은 봐야지. 아이유가 왜 성공했는데, 이 마지막 순간에 힘든 거 버텨서 성공한 거야. 나도 성공해야지.


그러면서 앞자리 바뀌어가는 초시계 쳐다보며 입술도 깨물고 이도 악물고 하다 보면 5분이 지나있는 거다. 그렇게 5분 버티고 나면 진짜 숨이 헐떡거리고 한동안은 아무것도 못한 채 아기 자세로 숨을 골라야 한다. 근데 그니까 요즘 중간에 포기할 때는 그 정도로 힘들진 않다고. 근데 그냥 포기하고 싶다.


요즘 중간에 포기할 때는 그 정도로 힘들진 않다고.


사실 어쩌면 요즘 플랭크를 10 분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중간에 포기하고 나면 짜증 나서 못했던 시간보다 30초 정도 더 해서 마저 다시 한다. 그니까 3분 40초쯤에 포기했으면 한 2분 더 하는 거다. 그러고 나서 1분씩 다양한 자세의 다른 플랭크를 한다. 오른쪽으로 누워서도 하고, 왼쪽으로도 하고, 뒤로도 하고, 팔 펴고도 하고, 접고서도 다시 한번 더하고.


5분을 온전히 버티지 못하기 직전 나는, 5분은 팔 접은 정자세로 플랭크를 하고, 그다음 1분씩 팔 펴고,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뒤로, 다시 접고. 그렇게 총 10분을 했다. 그러고 나면 땀이 뚝뚝 떨어진다. 그럼 개운하게 샤워하고 자는 거다. 근데 요즘은 5분 한 번에 못해서 쪼개서 하고, 근데 또 그 뒤의 1분씩 다섯 번은 한다. 그니까 그 뒤에꺼 해야 한다는 생각에 처음 5분이 너무 부담스럽게 느껴져서 포기하는 걸지도 모른다. 근데 아니다.


어디 한 번 코로나 핑계도 대볼까.


어디 한 번 코로나 핑계도 대볼까. 작년에 회사 관두고 사업 준비한답시고 계속 집에서 이런저런 일이라 부르는 일들을 했다. 그니까 원래 집에만 있었던 건데, 괜히 코로나 때문에 이제는 타의로 밖에 못 나가니까 엄청 답답하다. 코로나 땀시 자전거 타고 체육센터 가서 클라이밍 하는 것도 못하니까 요즘 일찍 일어나지도 못하고. 아 그래 뭐 사실 일찍 일어나는 건 상관없긴 하지. 그래 그니까 그냥 요즘 뭐 다 안된다고.


어느덧 퇴사 생활 3달이 다 되어 가는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까지 지랄하고, 그냥 좀 슬슬 지쳐갈 타이밍이고, 내가 왜 퇴사했는지 기억도 잘 안 나고, 돈이 막 줄지는 않고 있긴 한데 그래도 찔끔찔끔 줄고, 애플 주식 샀는데 떨어지고, 새벽에 잘 일어나지 지도 않고, 사업한답시고 한건 왜 한다 그랬는지 잘 기억 안나기도 하고, 플랭크 해도 뭐 뱃살도 안 들어가고, 딱히 먹고 싶은 것도 없고, 재밌는 영화나 TV 프로그램도 없고, 고, 고, 고,


그래도 브런치 글 하나는 쓰게 해 줬네. 내일은 제발 다시 다 원래대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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