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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즌졍 Jun 01. 2020

욕심이 감당되지 않는 이유

[Essay] 하트시그널 시즌2 보다가 생각났다고 하면 비웃으실건가요.

일단 이게 연애 얘기만은 아니라는 걸 먼저 밝히고 싶다. 이러니까 괜히 더 연애 얘기 하는거 아니냐 싶을 수 있지만, 아니다.


난 매사 뒷북 치는데 도가 튼 사람인데, 그래서 지금 시즌3를 방영중인 하트시그널 시즌2를 보고 있다. 아니 사실 얼마 전에 신나서 한참 보다가 괜히 결말 검색해서 알아버린 뒤에 재미없어져서 안봤는데, 왠지 그냥 갑자기 다시 뒷부분을 보고 싶어서 잠도 안자고 봤다. 평소에 다른 해야할일은 밤잠 줄여가면서 하지도 않으면서 이걸 잠 잘 시간 한참 지났는데도 보고 있는 내가 한심해, 마지막 편 보다가 꺼버렸는데, 잠은 안오고 이 생각이 났다. 요즘 내 욕심을 내가 감당하지 못하는 것 같은 이유.


그 무엇보다도, 게으르다.


난 진짜 욕심이 많다. 세상에 하고 싶은 일은 너무 많고 몸은 하나고 시간은 제한되어 있는데 그 무엇보다도, 게으르다. 그 모든 욕심을 감당하기엔 너무나도. 그래서 짜증나지만 결코 부지러진 해질 생각은 없다. 아니 없는 것 같다. 아니 없는게 분명하다.


백수가 된 이후로 난 하고싶은게 정말 너무너무 많았다. 사업도 하고 싶고, 유튜브도 하고 싶고, 브런치도 쓰고 싶고, 소설도 쓰고 싶고, 주식 투자도 하고 싶고, 영어 문체랑 단어 어원도 공부하고 싶고, 운동도 하고 싶고, 12주 아티스트 웨이도 하고 싶고, 코딩도 공부하고 싶었다. 그래서 전부 다 깨작깨작 해보았다. 전부 다 잘하고 싶었는데 결론은 깨작깨작이었다는 거다. 깨작깨작.


단 하나도 제대로 끝낸게 없다.


전부 다 잘하고 싶은데 하고 싶은게 너무 많다보니 전부 매일 조금씩 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그래서 1년 뒤에는 저거를 전부 다 잘할 수 있게 되자! 싶었는데, 벌써 5개월이 다 지난 지금... 저 중에 단 하나도 제대로 끝낸게 없다. 아니 당연히 목표가 1년이었으니까 그랬을 수 있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지금 아직도 진행중인 것들이 있긴 하지만, 성에 안찬다. 그리고 1년 뒤에 저 중 단 하나라도 만족할 만큼 제대로 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근데 이 이유가 다 내 욕심 때문인 것 같다. 한꺼번에 전부 다 잘하고 싶은 욕심. 사람이란게 당연히 하나를 하고 있으면 다른 하나는 할 수가 없다. 기회비용 다들 알지 않나. 근데 난 그게 너무 아깝다. 세상에서 기회비용이 제일 아깝다. 그래서 자꾸 이거 하다가 저거 하는거다. 소설 쓰다 보면 영어공부 못하는게 너무 아깝고, 운동 하다보면 주식 투자 못하는게 너무 아깝다. 그래서 하루에 저걸 다 조금씩 하려고 하는데, 그러다 보면 일단 지치고, 그거 중 단 하나도 제대로 못하는 기분이 든다.


다른 사람이 생각나는거다.


지금까지 내 연애도 똑같았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연애라 부를만한 연애를 제대로 해본적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가 전부 저 기회비용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이 사람이랑 연애해볼까? 싶다가도 이 사람의 부족한 점을 보완해줄 수 있는 다른 사람이 자꾸 생각나서, 자꾸 이 사람에 대한 마음이 식고. 그렇다고해서 다른 사람이랑 연애해볼까? 싶으면 또 그 사람의 부족한 점을 채워줄 수 있는 다른 사람이 생각나는거다. 진짜 어이없지 않나.


기회비용 아까워 하다가는 그 무엇도 해내지 못할거란 생각이 든다. 갑자기. 글쓰다 보니까. 글 쓰는거 진짜 짱이다. 뜬금없지만. 나는 지금까지 계속 기회비용을 아까워하는 방식으로만 살아온 듯 하다. 근데 딱 한번, 안 그래 본 적이 있다. 교환학생 가겠다고 토플공부 하고, 알바했을 때. 토플공부랑 알바 때문에 사람들도 하나도 안만나고 오로지 집에 박혀서 토플 공부하고, 알바만 했다. 근데 사실 그때는 그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내가 이렇게까지 다른걸 다 포기하고 이것만 하는게 맞나... 근데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랬던 덕분에 영어도 지금 이정도까지 할 수 있게 되었고, 결국 교환학생도 무사히 잘 다녀왔지 싶다.


기회비용 아까워 하다가는 그 무엇도 해내지 못할거란 생각이 든다.


지금도 결국 기회비용을 포기하고 무언가 하나에 집중해야하는 순간이지 싶다. 물론 기회비용이 너무 아깝겠지. 그 순간에 몰입했던 그 하나로 제대로된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하게 되버린다면, 그 모든 시간과 노력이 아까워지겠지. 그래도 전부 이도저도 아니게 되는 것 보단 백배 나을거라 생각한다. 그러니 열심히 고민해서 잘 선택해봐야지. 근데 너무 한개만 선택하면 좀 그러니까, 두 개 골라보자. 세... 개...? 네... 아니다. 두 개 하자 두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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