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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포쟁이 뚱냥조커 Oct 03. 2023

스포츠란 무엇인가?-페이커 이상혁이 던지는 철학적 전환

책을 읽고 사유를 거듭하는 사람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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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금 늦었지만 먼저 축하부터 하는게 맞을 듯하다. 한창 진행중인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4강에서 중국, 결승에서 대만을 깔끔하게 둘 다 2대0으로 잡은 LOL대한민국 대표팀이 롤 국제전 최초의 금메달리스트가 되었다. 주장 페이커 이상혁은 금메달을 받기 전부터 사실 아시안게임 최고의 셀럽이고 슈퍼스타였으나, 20년 넘게 E스포츠를 중계중인 리빙 레전드 전용준 캐스터님이 금메달 수여식후에 감격스런 마음으로 울먹거렸던 것은 결코 방송사고나 프로의식 부족이 아니다.



 그 전용준 캐스터님의 그 울분은 이 뉴스의 허은아 의원의 말처럼 그저 게임을 하찮은 애들장난이나 심지어 질병으로 분류하려는 기성사회의 여전히 곱지않은 시선에 대한 마음과, 그 시선을 극복하고 기쁜 사자후를 토해내려다가 공적 방송인이기에 겨우 참아낸, 오히려 훌륭한 프로페셔널의 자세 그 자체라고 보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그리고 마치 이에 상응하듯 주장 이상혁선수는 인터뷰에서 많은 곳에서 회자될 자신이 생각하는 스포츠에 대한 정의를 남겼다.


인터뷰의 핵심은 당연히 마지막이다. 페이커 이상혁의 말을 조금 내 식대로 풀어낸다면 고대 그리스 올림픽때부터 내려져온 기존의 스포츠에 대한 정의, 관념은 신체를 움직여서 보여주는 결과물이었다. 허나 21세기에는 그보다 중요한 것은 경쟁을 위해 준비하고, 경기하는 과정 자체다. 이 과정의 모습이 다른 이들에게 영감을, 새로운 동기부여나 마음의 변화를 이끌어낸다면 그 자체로 스포츠의 중요한 의미가 아닌가. 바둑 또한 아시안게임 정식종목이고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에 사람들이 열광했듯이.


그리고 이미 롤은, lck 한국 롤 리그는 축구 야구와도 비견될만한 수십만의 고정 시청자를 확보하고 있는 명백한 프로 리그다. 롤드컵 월즈 8강 4강같은 경기는 전세계적으로 수천만명이 그 과정과 승패를 지켜본다. 그 중에서도 최고의 인기는 당연히 개발사 라이엇에서도 인정한 goat 페이커의 팀 티원이다. 그것은 분명 우리가 축구 국가대표팀의 월드컵을 응원하며 지켜볼때의 마음과 다르지 않다. 승리를 응원하며 설령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끝까지 분투하고 포기하지 않으려는 마음에 선수와 팬은 일심동체가 된다. 작년말 최고의 유행어였던 월즈 우승자 데프트의 중꺽마, 중요한 건 꺽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다 회자되었듯이 이상혁의 이 인터뷰도 앞으로 많이 기억되고 전해질 것이라 기대해본다.




그런데, 평상시 하루에 10시간 이상의 시합 또는 연습과 광고촬영 등으로 바쁜 슈퍼스타 페이커는 어떻게 이런 난감할 수도 있는 민감한 인터뷰 질문에 똑 부러지게 답변할 수 있었을까? 혹시 감독이나 다른 사람이 미리 이렇게 답변하라고 예상 질의응답이라도 해본걸까? 아마 평소 페이커의 팬이라면 그런 의문에 쉽게 답할 수 있을 것이다. 조용한 성의 INTP로 알려진 이상혁의 취미는 바로 여가를 독서로 보내는 것이고, 그가 자기가 사서 읽은 책을 종종 인스타 등을 통해 인증하는 것은 팬이라면 당연히 알고 있는 페이커의 습관 중 하나다.


 게다가 그 독서목록엔 침묵의 봄이나 정의란 무엇인가처럼 수준높고 어려운 책도 적지않다. 이런 독서와 깊이있는 사유, 그리고 프로팀 주장으로서의 오래된 경험 덕분에 이상혁은 롤같은 게임이 스포츠가 맞냐는 질문에 오히려 지금 시대의 스포츠란 신체보다 과정이라는 멋진 답변을 내놓은게 아닐까. 물론 나를 포함한 팬들의 열광적인 응원도 그 과정 속에 포함해서. 현대 프랑스 철학의 롤랑 바르트가 더이상 과거처럼 작가가 주제를 한정할 수 없다며 작가의 죽음 테제를 천명했듯이, 페이커는 스포츠는 선수나 감독이 정의하는게 아니라 바로 응원해주시는 팬들과 같이 만들어나가는 '과정'이 바로 '스포츠'라고.



2018년엔 시범종목이었고 그때는 강적 중국 국가대표에게 패배의 쓴맛을 봤지만 이번 대회에 드디어 정식종목이 되어 당당하게 금메달을 목에 걸고 금의환향하는 주장 페이커 대  혁. 그의 목표는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스트리트파이터5 종목에서 40대 우승자가 나온 것처럼 오래오래 프로생활을 이어나가는 것이라고 작년이었나 이전 인터뷰에서 들은적이 있다. 언젠가 올림픽에서도 e-sports가 정식종목이 되고 롤 국가대표로 또다시 이상혁이 나가는 그 날까지, 위대한 프로게이머이자 멋진 주장 페이커의 건승을 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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