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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포쟁이 뚱냥조커 Mar 08. 2024

흉노 제국은 정말 서쪽으로 가서 아틸라 훈족이?

유목 민족의 미싱링크...


지난 글에서 말했듯이 우리 한국은 농경민족의 후예이고 문자와 역사를 남긴 대부분의 국가도 그러하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역사를 농경민족의 입장에서 생각하게 되고 흉노나 거란족 등은 그저 변방 초원의 이민족 중 하나로 생각하며 그들의 역사에 대한 사고를 멈춰버리는 습관이 있다...


 하지만 사실은 중국 최초의 통일제국 진시황의 진나라가 있을 시점에 흉노 유목민들 또한 진나라의 침공 이후 위기감을 느끼고 흉노선우 묵특의 지도 아래 진나라와 정면대결도 가능할 만큼 중앙집권화하여 흉노 제국이 성립 중이었다. 이는 국가는 국가에 대항해서 성립한다는 일본의 철학자 가라타니 고진의 통찰을 떠올리게 한다. 심지어 이 흉노 제국은 초한지의 전란을 끝낸 고조 유방의 한나라 정예군 수십만과 정면충돌하여 상상 이상의 성과를 내버렸다.




'평성의 수치' 나도 나름 고등학생 때부터 세계사를 좋아해서 여러가지 역사책들을 많이 섭렵했음에도 처음 보는 이름이었다. 아마 중화 민족의 정통 역사서 입장에선 그저 고조 유방이 북방민족 정벌에 나섰고 큰 성과없이 흉노와 화친했다 정도로 마무리한 문장이리라. 우리 한국 역사에선 고구려 을지문덕의 살수 대첩이나 강감찬의 귀주 대첩을 '대첩'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이지만 중국 역사 입장에선 그저 제국의 동방 정벌 실패 정도로 서술을 마무리 하듯이.


30만 대군을 끌고 친히 원정을 나갔으나 한겨울의 산에서 포위되어 일주일을 갇혀있다가 뇌물로 겨우겨우 적장 묵특의 배려로 포위망을 빠져나왔다는 굴욕, 심지어 그 뒤에 '화친'이란 이름의 평화조약을 맺지만 한나라 공주를 흉노왕에게 시집을 보내고 매년 흉노에게 옷감과 음식을 보낸다니 이건 누가봐도 이름만 화친일 뿐 그저 패배 후 패배의 대가로 조공을 보내겠다는 불평등조약, 강하게 말하면 항복조약에 불과하다. 고려도 원나라의 침공 이후 조공을 바치고 공주를 원나라로 보냈기에 외국 학자들은 이 시기의 고려를 원나라의 속국으로 해석하는 학자들이 적지 않듯이...


이제 굳이 이전처럼 약탈, 전쟁을 하지 않아도 한나라와의 교역 독점으로 안정적인 물자를 확보하게 된 흉노 제국은 농경민족처럼 성을 쌓지만 않았을 뿐, 서쪽으론 알타이 동쪽으로는 지금의 베이징 근처인 상곡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에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물론 이 강대한 몽고 이전 유목민들의 로망 흉노 제국도 영원하진 않았다...






한의 대장군 곽거병이 이끄는 십만군의 흉노 정벌과 삼국지 시대 조조가 원소를 격파한 후 직접 주도한 북벌 등등 한나라에선 이후 북방 유목민을 견제하기 위해 수차례 군사를 일으켰고, 모든 제국이 그렇듯이 큰 영광의 시절 뒤에는 내분과 자리다툼으로 지리멸렬해지는 시기가 온다...


흉노 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묵특 이후 한나라의 계속된 이간책과 회유로 그정도의 중앙집중된 선우는 나오지 못했다. 그래서 흉노는 한나라를 피해 멀리멀리 수천 킬로를 말타고 달려서 서쪽으로 간 걸까?그래서 뜬금없이 등장해서 유럽 전체를 공포에 떨게 한 훈족의 왕 아틸라가 바로 흉노의 후손인 걸까?? 이는 아직 흉노와 훈족의 역사적 연속성이 명백하지는 않은 역사의 미싱 링크라 아쉬운 부분이다... 추후 더 많은 유물과 연구가 나와서 이 흥미로운 가설을 이론의 영역으로 올려놓기를 기대해 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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